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2>도 혼자 읽어볼게요.

D-29
그들을 심각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의 몸이다. 수화기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고 복도에 앉아서 나는 그들의 몸을 듣는다. 나는 말보다는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 이 침묵 속에서 이 몸들은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나에 의해 창조되며, 형태를 갖추게 된다. 남자아이들이 없어 심심할 때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들의 몸이다. 나는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담배를 들어 올리는 그들의 손을, 어깨의 경사를, 엉덩이 각도를 관찰한다. 곁눈으로 살펴보며 그들을 여러 관점에서 점검한다.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시각적인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움직이지 마. 그대로 있어. 내가 가질 수 있도록.' 나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은 눈을 통해 유지된다. 내가 그들에게 싫증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신체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시각적으로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고양이 눈 2 p.86,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여성이 남성을 시각적으로 탐하는 소설을 잘 본 적이 없어서 새롭고 와닿았다.
우리는 다리 위 가로등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 아래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댄다. 그들의 팔은 내 몸을 감싸고 내 팔은 그들의 몸을 감싼다. 우리는 서로의 옷을 들추고 서로의 등뼈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나는 상대방의 등뼈가 부서질 듯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몸 전체의 길이를 느끼고 얼굴을 만지고는 경탄한다. 남자아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많이 변한다. 그들은 부드러워지고, 활짝 열리며, 아파한다. 그들의 몸은 순수한 에너지, 결정화된 빛이다.
고양이 눈 2 p.8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협곡 아래쪽에서 한 소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쪽이 아니라 벽돌 건물을 지나 협곡이 남쪽으로 넓게 뻗어 나간 곳이다. 그곳에는 양쪽에 버드나무가 서 있고, 쓰레기가 마구 버려져 지저분한 돈강이 호수를 향하여 천천히 굽이쳐 흐른다. 뒷문을 잠그지 않은 채 두고 밤에도 창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 토론토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사건은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한다. 그 소녀는 우리 또래다. 근처에서 그녀의 자전거가 발견되었다. 그녀는 교살당했으며, 외설 행위를 당했다. 우리는 '외설 행위를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신문에는 그녀가 살아 있을 때의 사진들이 실려 있다. 그녀의 사진에는 몇 년이 지난 사진에나 생기는 사로잡힌 듯한 표정, 회복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사라져 버린 시간의 표정이 서려 있다. 그 옆에는 그녀가 입고 있던 옷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녀는 앙고라 스웨터와 요즘 유행인 털방울이 달린 작은 털 깃을 입고 있었다. 나는 이런 깃이 없지만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녀의 것은 흰색이지만 암갈색도 구할 수 있다. 그녀는 스웨터에 빨간 보석 눈이 달린 두 마리 새 모양의 핀을 달고 있었다. 어느 소녀나 학교에 달고 다닐 만한 것이다. 옷에 대한 이러한 자세한 묘사를 보면서, 비록 그 묘사를 탐독하면서도, 나는 그녀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평범한 옷을 입고 밖에 나갔다가 아무 경고 없이 살해당한 후,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나를 점검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살해는 보다 엄숙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고양이 눈 2 p.88-8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87쪽에 일레인과 남자아이와 섹슈얼한 스킨십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웠는데, 바로 다음 장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살해 당한 소녀다. 여자아이들은 마음 놓고 남자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지. 공존하는 현실이다.
코딜리어도 남자아이들과 사귀기는 하지만, 나와는 다른 식이다. 이따금 나는 내가 사귀는 아이를 통해 더블 데이트를 주선하기도 한다. 코딜리어의 상대는 항상 매력이 덜하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남자 친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고양이 눈 2 p.9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그러나 코딜리어가 지닌 그 무엇인가에 남자아이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에게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지나치게 공손하거나, 계산적이거나, 정도가 지나치게 행동해서 그런 것 같다. 코딜리어는 남자아이들이 농담을 했다고 생각하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 재치가 있는 걸, 스탠." 남자아이들이 웃기려고 하지 않은 때조차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녀가 자기를 조롱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때로는 조롱하는 것이고 때로는 아닐 수도 있다. 부적절한 단어들이 흘러 나오는 경우도 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다 먹고서 코딜리어는 남자아이들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너희들 충분히 포복했니?" 그러면 그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쳐다본다. 그들은 냅킨 고리를 사용하는 부류의 아이들이 아닌 것이다.
고양이 눈 2 p.9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포복 2 抱腹 1. 배를 그러안음.
마지막 문장 냅킨 고리를 사용하는 부류의 아이들은 무슨 뜻이지.. 일단 앞에 부분은 재밌었다. 어릴 때 나도 그랬던 거 같다. 남자아이들이 낯설어서 낯을 많이 가렸다. 초등학교 중학교 땐 고장 나서 굳어 있었고, 고등학교 땐 발전했는지(?) 수줍음으로 발현돼서 오히려 인기가 생겼다. 갓 성인이 됐을 무렵엔 편해지면서 예쁨 받고 싶음에 발랄하게 다가갔고, 지금은 잘 보여야 할지 말지 고민하며 간 본다.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듯하지만 뇌가 팽팽 돌고 있다. 다가가야 할지, 거리 둬야 할지. 혼내줄지, 감싸줄지.
코딜리어 같은 거. 이거다. 이거. '그들에게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지나치게 공손하거나, 계산적이거나, 정도가 지나치게 행동'.
코딜리어는 남자아이들에게 유도성 질문을 던지며, 어른들이 하듯이 그들을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들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만의 침묵 속에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고 곁눈질로만 살짝 훔쳐봐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코딜리어는 그들을 꾸밈없이, 정면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그녀의 눈초리에 눈이 부셔서 전조등에 비친 토끼들처럼 꼼짝 못하고 얼어 버린다. 그녀가 남자아이와 차 뒷좌석에 앉아 있을 때면,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헐떡이는 숨소리를 통해 그녀가 그 방면에서도 역시 도를 넘은 행동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애는 좀 이상해, 네 친구 말이야." 남자아이들은 내게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는 말하지 못한다. 나는 그녀가 남자 형제 없이 자매만 있어서라고 판단한다. 코딜리어는 남자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주고받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자들 침묵의 복잡함을, 그 미묘함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고양이 눈 2 p.9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남자들 침묵의 복잡함과 미묘함을 배워야 하나 의문. 그들의 침묵은 권력이 아닌가. 물어보지 않아도 되고,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 그렇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가 거슬려서 나는 요즘 불쑥 질문하며 대화에 참전시킨다. 어떤 사안에 영향권에 있으면서 한발 빼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싫다. 그래도 나는 코딜리어처럼 이상하게 보여지진 않은 거 같은데 모르겠다.
그러나 코딜리어가 남자아이들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녀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는 남자들이 아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과 대화하려는 그녀의 노력은 하나의 공연, 모방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코딜리어의 웃음소리는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여성의 웃음처럼 세련되고 나직하다. 물론 자제심을 잃지 않는 한 말이다. 자제심을 잃게 되면 그녀의 웃음소리는 지나치게 커진다.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역할이나 영상을 모방하고 있다.
고양이 눈 2 p.93-9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찔림.
동정을 느끼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사실 나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말한다. "통탕통탕 통, 털썩." 코딜리어가 말한다. "아, 제발 그러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활기 없고 풀이 죽었다. 농담이 아닌 것이다. 나는 한순간 의아해한다. 어떻게 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렇게 야비하게 굴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정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말이다.
고양이 눈 2 p.9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일레인이 코딜리어처럼 그녀를 괴롭히게 하는 시초일까. 코딜리어도 이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더 나이가 들고, 가장 높은 13학년이 된다.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 한때의 우리처럼 아이에 불과한 그들을 업신여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양이 눈 2 p.98,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국적 불문 학년제 특징인가..
아버지는 포크를 휘두르며, 인류라는 종이 지나치게 번식하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일들은 사람들이 과학의 기본적 가르침을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과학 대신 사람들은 정치와 종교와 전쟁에 열중하면서 서로를 죽일 광적인 이유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과학은 그와 반대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과학은 유일한 보편적 언어다. 그 언어는 숫자다. 결국 죽음과 쓰레기 더미에 빠진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 혼돈을 정리하기 위해 과학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고양이 눈 2 p.101-10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과학이 종교보다 굳건해져서 권위가 높아진 요즘이라 과학이 청렴결백하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지점에 반대한다고 생각해서 메모 했는데 과학 科學: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보편적인 물리 법칙 이런 거 생각하면 맞나..? 문외한이라서 모르겠다. 평소 일반적인 사람들이 과학으로 증명된 거라고 근거를 들면 바로 수긍되는 게 좀 싫은 거 같다. 뭔가 사람들이 과학은 완전하게 생각하는 그런 태도가 싫달까.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천천히 읽어요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웰다잉 오디세이 2분기의 여정
[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나누고 싶은 책 이야기 by 꼬모
편지들이 알려주는 먼 시절의 인생역정낙담과 희망이 뒤섞인 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편안하게 명랑하고, 평범해서 비범한 일상과 성장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김빠지는 시리즈 신간추리로 양념 친 러브스토리 연작집
조선과 한국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김영사/책증정] 다니엘 튜더 소설 《마지막 왕국》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어크로스/책증정]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과 함께 진짜 한국 탐사하기!
우리 아버지는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4. <아버지의 시간>[도서 증정] 《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마케터와 함께 자유롭게 읽어요~! <책방지기의 인생책> 좋은 날의 책방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함께 읽기
한 출판사에서 나온 이토록 다양한 책들의 향연, 오늘 당신이 고를 이야기는?
[김영사/책증정]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함께 읽기[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 무작정 퇴사하기 전에, <까다로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 함께 읽기[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김영사/책증정]수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함께 읽기
같이 연극 보실 분들, 구합니다.
[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그믐연뮤번개] 2. [독서x관극x번역가 토크]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지킬앤하이드』[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우리의 노동 일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그믐연뮤클럽] 6. 우리 소중한 기억 속에 간직할 아름다운 청년, "태일"[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일을 즐기고 있나요?[그믐밤]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기 @국자와주걱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한국 희곡 낭독이 이렇게 재밌다니!
<플.플.땡> 4.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8.신의 화살,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