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D-29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오랜만에 혼자 읽습니다. 20대에 읽은 후 한참만이네요. 혼자읽기 방은 처음 만들어보는데 무사히 완독할 수 있길. :-)
대지는 우리 자신에 대해 그 어떤 책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는 대지가 우리에게 만만치 않은 상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장애에 맞서면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렇게 맞서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고무래 또는 쟁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농부는 밭을 갈면서 자연으로부터 비밀을 조금씩 캐내는데, 이때 캐낸 진리는 보편적인 진리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항로의 도구인 비행기를 통해 온갖 오래된 문제에 휘말린다.
인간의 대지 006,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칠흑 같은 어둠의 바다에서 그 불빛 하나하나는 의식이라는 경이가 존재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불이 밝혀진 저 집에서는 누군가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고 은밀한 속내를 털어놓고 있었다. 또 다른 저 집에서는 누군가 우주를 탐색하고 안드로메다 성운을 관측하는 데 몰두해 있었을 것이다. 또 저쪽에서는 어떤 이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들판 군데군데에서 불빛들이 저마다 먹을 것을 달라며 반짝였다. 시인, 교사, 목수의 불빛처럼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빛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대지 007,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하지만 이 살아 있는 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창문이 닫혀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별이 꺼져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었을까....
인간의 대지 007,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우리는 서로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들판에서 드문드문 타오르는 저 불빛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인간의 대지 007,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동정 없는 세상, 자신밖에 모르는 세상, AI가 득세하는 세상에 고전이 주는 울림은 크구나. 우리는 서로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빛과 불빛이 만날 수 있을까? 점이 선이 될 수 있을까? 네가 나에게 다가오고 내가 너에게 다가가고 그리하여 우리가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까?
<인간의 대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생떽쥐페리가 이 소설을 쓰면서 <어린 왕자>를 내면에 잉태했구나란 생각이 든다. <인간의 대지>가 있었기에 <어린 왕자>가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떠돌이 행성에 살고 있다. 비행기 덕분에 이 행성은 가끔 우리에게 자신의 기원을 드러낸다. 연못이 자신과 달 사이의 숨겨진 혈연관계를 보여주듯이. 그런데 나는 이런 숨겨진 관계에 대한 다른 표식은 본 적이 있다.
인간의 대지 97페이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잠에서 깨었을 때, 오로지 밤하늘만 눈에 들어왔다. 십자로 팔짱을 끼고 별들의 양식장을 마주한 채 언덕 꼭대기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심연과 나 사이에 몸을 지탱할 나무뿌리도 지붕도 나뭇가지도 하나 없었기에, 나는 끈에서 풀려나 마음껏 떨어져 내리는 잠수부처럼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인간의 대지 103페이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하지만 나는 조금도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목덜미부터 발뒤꿈치까지 대지에 묶여 있었으니까. 대지에 나의 무게를 내맡긴다는 데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중력이 마치 사랑처럼 지상 최고의 가치로 다가왔다.
인간의 대지 103페이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대지가 내 허리를 떠받치고 나를 들어 올려 밤의 우주 속으로 데려간다고 느꼈다. 마차가 급회전을 할 때 밀려나가는 힘과 비슷한 힘으로 내가 지구에 달라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멋지게 떠받쳐주는 힘, 그 견고함과 안정감을 맛보면서, 내가 타고 있는 배의 갑판이 이루는 곡선을 몸 아래로 느꼈다.
인간의 대지 103페이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내가 실려 가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의식했기에 자재들이 힘겹게 다시 끼워 맞추어지며 내는 탄식과 오래된 범선이 기울어지며 내는 신음, 거룻배가 역풍을 받으며 내는 날카롭고 긴 비명이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온다 해도 놀랍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대지의 깊숙한 곳에서는 침묵만 이어졌다. 그래도 일정하고 조화롭게 밀어붙이는 그 힘이 내 어깨에 계속 작용하고 있었다. 납덩이에 매달려 가라앉은 갤리선 도형수의 시신이 바다 밑바닥에 있듯 나는 진정 이 행성에 살고 있었다.
인간의 대지 103페이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벌거벗은 채 지나친 정적으로 인해 내 삶의 중심에서 멀어져 위협받고 있었다. 만일 그 어떤 비행기도 나를 찾아내지 못하고 무어인들이 나를 무참히 죽이지 않는다면, 삶의 중심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몇 날, 몇 주, 몇 달을 보내야 할 것이었다. 여기 있는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나는 오로지 감미로운 호흡만을 의식하면서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헤매다 죽을 운명에 불과했다...
인간의 대지 103페이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 옮김
셍떽쥐베리가 사막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을 쓴 구절들이다.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동시에 대지의 자비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도서 증정] 정재승, 김경일 추천 도서『집단 망상』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비공개 PDF 제공] 미출간 신간 <슈퍼 아웃풋 공부법> 먼저 읽고 이야기 나눠요! [도서증정][번역가와 함께 읽기] <전차 B의 혼잡>[도서증정] [발행편집인과 함께 읽기] 《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코스모스> 꼭 읽게 해 드리겠습니다!
2026년 새해 첫 책은 코스모스!
내 맘대로 골라보는《최고의 책》
[그믐밤] 42. 당신이 고른 21세기 최고의 책은 무엇인가요? [그믐밤] 17. 내 맘대로 올해의 책 @북티크
🎨책과 함께 떠나는 미술관 여행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그믐 앤솔러지 클럽에서 읽고 있습니다
[그믐앤솔러지클럽] 3. [책증정] 일곱 빛깔로 길어올린 일곱 가지 이야기, 『한강』[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
듣고 이야기했어요
[밀리의서재로 듣기]오디오북 수요일엔 기타학원[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팟캐스트/유튜브] 《AI시대의 다가올 15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같이 듣기
⏰ 그믐 라이브 채팅 : 최구실 작가와 함께한 시간 ~
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매달 다른 시인의 릴레이가 어느덧 12달을 채웠어요.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 12월] '오늘부터 일일'[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11월] '물끄러미'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어두운 달빛 아래, 셰익스피어를 읽었어요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
독서모임에 이어 북토크까지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1일 오프라인 북토크 예정!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책증정] 저자와 함께 읽기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오프라인북토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AI 에 관한 다양한 시선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결과물과 가치중립성의 이면[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AI 메이커스> 편집자와 함께 읽기 /제프리 힌턴 '노벨상' 수상 기념[도서 증정] <먼저 온 미래>(장강명)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AI 이후의 세계 함께 읽기 모임
독자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이희영
[도서 증정] 『안의 크기』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이희영 장편소설 『BU 케어 보험』 함께 읽어요![선착순 마감 완료] 이희영 작가와 함께 신간 장편소설 《테스터》 읽기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피프티 피플> 인물 탐구
피프티피플-이기윤피프티피플-권혜정피프티피플-송수정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