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클럽-나와 해방을 위한 글쓰기

D-29
비 아카시아들일 언제 흰 두레방석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산비 산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닌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
비를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을까요!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 문득 궁금해지네요. 저의 시 읽기는 여기서 멈춰 있는데 요즘 시인들의 좋은 시를 보고 싶어져요
백석의 생애를 그린 김연수의 소설 ' 일곱 해의 마지막 ' 을 올려 주셔서 오래 잊었던 백석을 떠올리고 그의 시 몇 편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의 학창 시절엔 월북 시인들의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상황이라 겨우 시인의 존재만 알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백석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 시인들이 말하는 가장 뛰어난 시인 "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
아울러 백석과 같은 시대에, 가히 쌍벽을 이루는 이용악이라는 걸출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물론 월북하여 남한에서는 역시 잊혀진 인물이 되었지요. 시인 감태준이 그의 시를 재조명한 글들이 눈에 띱니다. " 그리움 " 이라는 시를 올립니다. 즐감요 ^^ 눈이 오는가 북쪽에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추운 겨울, 개나리색 표지의 작은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만났다. 그리운 사람에 대한, 소중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나 애틋할 수도 있다는 걸, 그 마음이 시로 표현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까만 겨울 밤 남몰래 내린 하얀 눈을, 뽀드득 뽀드득하고 조심스레 한 발 또 한 발 내딛는 것 같은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 기억이 있다. 신간 리스트를 체크하던 어느 날 우연히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발견했다. “팔월의 한여름, 계속해서 기억한다. 어떤 기억은 발 밑의 자갈, 하늘의 색채, 그 날의 나뭇잎까지도 머리에 남는데 그게 의지에 의한 것인지 순전히 사랑 때문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저 기억한다. 그날의 마디마디를.” 참 신기하지. 글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하얀 눈이 내리는 순백의 그리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사소한 것 하나도 쉬이 놓치지 않는다. 일상에서 만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단어들이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건지. ‘포로롱 퐁퐁. 요정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 예측할 수 없는 알알의 귀여운 리듬.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드는 과정은 소리 때문에 귀가 귀엽게 간질거린다.’ 아! 고작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드는 그 찰나를, 어떻게 이렇게 표현해낼 수 있는 건지. 어! 나는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들면서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귀가 귀엽게 간질거리는 건 어떤 느낌일까?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오븐 속의 빛과 열이 반죽에 닿을 때 무성한 봄의 볕이 기억난 건 아닐까. 일어나야 해. 얼른 커서 푸르러야지. 그렇게 밀의 기억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라서 온갖 빵은 노을빛으로 물드는 게 아닐까.’ 동네 빵집 사장님이 오븐 앞에 서서 부풀어 오르는 빵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주말 아침, 나는 그 빵을 먹을 때가 참 행복하다는 걸 빵집 사장님도 눈치 채셨을지도 모른다. ‘가끔 바늘에 찔린 듯 눈이 아파서 그렇게 병간은 병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솔잎 같은 한 사람의 끝을 눈에 담는 일.’ 일상에서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경험, 그 시간을 표현해내는 작가의 문장이 참 좋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기억. 나는 산문을 좋아한다. 참 시시하지. ‘인생은 ‘너무’와 ‘정말’ 사이에서 춤추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부차적인 것들 때문에 울고 웃으니까요.’ 어쩌면 너무 특별하지 않아서, 정말 예쁘게 쓰려고 꾸미지 않아서, 그래. 그래서 글들이 좋았다. 너무 사소한 일상이라서. 정말 작은 이야기여서.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글의 곳곳에 따뜻한 색채로 드러난다. 남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만큼, 딱 그만큼만 가족에게도 예의를 갖추면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작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내 모습을,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참 이상하지. 책을 읽는 내내 누군가 건드리면 눈물이 툭 터질 것만 같았다. 진한 그리움의 노을이 내 앞에 펼쳐진 날, 윤슬을 마주하고 있으면 이런 기분이 들까. 작가의 글은 잊고 있었던 지난 기억들에 대한 시간을 기어이 끄집어내게 한다. 내 기억 속의 시계를 찬찬히, 그리고 느리게 또각또각 되돌려 버린다. 그리고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를. 삶을 마주하는 시선이 이렇게 말갛게 빛날 수도 있구나 라는 울림이 내 마음까지 전해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가장 그리운 존재를 떠올려보게 되는 참 좋은 글을 만났다. “가장 그리운 존재가 안에서 부푼다. 볕을 쬐고 자란 밀이 금빛을 낸다. 나도 그랬어.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나 역시 기억으로 부풀고는 해. 그렇게 죽은 이들은 사라졌지만 함께한다. 존재는 폭죽이니까. 언제든 내 안에서 같이 살아가다가 유품이라도 보면 활짝 빵처럼 피지.” (추신) 책 속에는 ‘참 신기하지’, ‘참 시시하지’, ‘참 이상하지’라는 표현이 있다.
주말입니다. 간혹 생각날 때 그믐에서 당신의 문장을 만나세요. 독서일기클럽의 세 번째 책과 글이 올라갔습니다. 오늘도좋은날님이 쓰신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정말 이렇게 무더울 땐 그냥, 마구 눈이 펄펄 내려주면 안 될까요.
오늘도 좋은날님 글이 너무 좋은데요. 마치 한편의 시 같이 산문을 쓰셨네요. 글을 읽고 느낀 그 감정이 오롯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꼭 읽어보고 싶도록 만드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몽글몽글..하네요.너무 보고 싶어서 눈이 오는 걸까요?^^♡
대구에서 영천으로 향하는 출근 길, 매미의 합창 소리가 커지는 시간이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신 비닐하우스 풍경이 꼭 흰 눈이 내린 것 같아 괜히 시원해지는 기분 좋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이 초복이네요. 올 여름도 다들 시원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보내시길 응원합니다.
고명재 시인의 산문은 참 좋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읽으시면 마음에 하얀 눈이 조용히 내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
그래서 저도 오늘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처음, 비 오는 날 읽었을 때 막걸리 부분이 눈에 바로 들어오던데 이번에는 또 어느 부분에서 머뭇거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고시인의 위 아름다운 산문을 읽고 댓글을 살짝 주저했던 게 그의 시집과 산문집을 아직 탐독하지 못한 상태에서 뭐라 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 단 하나, 섬세하고 여린 감성이, 어쩜 부러울 정도의 여성적인 것에 가까운 사소한 시어의 율동이, 시인 특유의 차별인지, 아님 가속화되는 개인주의라는 작금 문학의 젊은 트렌드인지 ..
오 뭔가 예리하신 것 같아요. 시인 특유의 차별인지 가속화되는 개인주의의 트렌드인지 하는 부분 눈길이 가네요
어떤 대상을 미세하게 다룰 줄 안다면 그건 사랑도 섬세하게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루약은 섬세한 배려. 약절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 이를테면 아이들과 병든 노인들,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콩콩 약을 빻는 사람들. 백사장보다 고운 세계를 너에게 줄게. 더 작아지자. 미미해지자. 얼른 녹아서 몸속으 로 잠속으로 사해로 퍼지자.
나와 해방을 위한 글쓰기 p24. 가루약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中
문장 하나로 모든 걸 말할 수 없지만, 제가 밑줄을 그은 몇몇 문장들을 소개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자면 작아지고 부서져라... 참 아름다운 말인데 어쩌면 잔인한 것일지도요.
고명재 시인의 시집은 못 보고 산문집은 봤어요. 섬세하고 맑은 감성을 타고난 것 같아요. 훈련으로 어디까지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렇게 맑은 심성으로 타인과 사회를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훈련으로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 질문을 읽으니 얼마 전 '읽세'에서 읽은 로마제국쇠망사가 생각나는군요. <명상록>을 쓴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의 경우. 악행으로 얼룩진 그의 짧은 생을 보노라면... 어릴 때부터 훌륭하다던 교육들을 모조리 다 받았어도 그 모양으로 살았으니 말이죠. 도대체 교육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며 또 무엇일지
책이 있으면 어느 구절이라도 옮기면서 마음을 정화하고 싶은데 당장 옆에 책이 없어 아쉽습니다ㅜㅜ
고명재 시인의 북토크에서 문장을 가만히 낭독해주셨던 것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 수업도 아주 기대가 됩니다.
훈련일까 타고 난 심성일까? 일단은 심성이겠지만 훈련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눈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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