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과 함께 시집 <가능주의자> 읽기

D-29
대왕만두님, 반갑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동안 우리의 대화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안녕하세요! <가능주의자> 같이 잘 읽어보겠습니다 :) 아침에 <붉은 거미줄> <입술들은 말한다> <그날 이후> <다락방으로부터> 읽었습니다. <붉은 거미줄> 읽으면서 피와 눈물을 흘리며 사는 존재들이 마지막에 도착하는 장소 같이 느껴졌어요! 거미줄에 걸려 다시 다른 존재의 피와 물이 되는 느낌도 들었어요. <입술들은 말한다> 왜 나는 말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니지만 잘 맞는 누군가와는 엄청 오랫동안 떠들거든요. <그날 이후> 살면서 수많은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어요. 방 안에 혼자 있는 것을 제일 즐기지만, 방 안에도 과연 시선이 없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어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방 안에서 방 안에 있는 나를 보는 시선... 너무 말장난 같으려나요 ㅎㅎ. <다락방으로부터> 동굴 혹은 알 속에서 사는 존재가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자신을 꺼내줄, 혹은 껍질을 깨어줄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면서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는 내게 시선을 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요. 하지만 그 갇혀진 공간 속에서 내게로 향한 노래가 거울이 깨진 이후에 나타나다니! 내게로 향하는 나의 시선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잠수부님, 안녕하세요? 밤 늦게야 올리신 글을 읽었어요. 한 편 한 편에 대한 생각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그 시들을 쓸 때의 느낌이나 이미지에 가깝게 읽어주셨어요. <붉은 거미줄>은 고통 받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잉크를 몸 속의 피처럼 끌어올려 시를 쓰는 여성시인의 내면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거미-여자의 자화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서시 역할을 하도록 제일 앞에 배치했지요. <입술들은 말한다>나 <그날 이후> 은 말씀하신 대로 말하기의 고통 또는 말할 수 없음의 고통, 그리고 폭력적 시선 앞에서 느끼는 어떤 수치와 연관되어 있어요. 1부의 시들은 그렇게 '나'를 가두고 억압하는 공간이나 체제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락방으로부터>는 그 유폐된 공간으로부터 스스로 세상을 향해 걸어나오는 과정이지요.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일종의 독립선언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2부와 3부는 그렇게 해서 만난 세상의 풍경들을 담고 있지요.
안녕하세요. 아침 저녁으로 날이 조금씩 쌀쌀해 지고 있는 요즘 함께 시집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일단 손에 종이책을 들고 읽기 전에 찬찬히 느껴보려 했어요. 문학동네시인선의 경우 색깔만 다르고 표지 디자인이 다 동일한데요, 제목 보시면 시인 이름 다음 시집이 나오는데 이 때 '집'이라는 글자를 다음 줄로 넘기는 게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시인 이름 다음에 '시' 가 바로 붙는데 이 디자인 자체가 시적(?)으로 느껴집니다. @가능주의자 혹시 시집 색깔은 시인님께서 고르신 건가요? 아니면 그건 이미 출판사에서 다 결정이 되어 있고, 순서대로, 예를 들어 160번 시집은 무슨 색, 161번 시집은 무슨 색 이렇게 사전에 다 정해져 있는 걸까요?
시를 어려워 하는 독자로서 이런 기회가 생가 넘나 반가운 마음에 댓글 답니다. 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읽어도 된다지만 도무지 읽어도 읽어도 모호할 때 어렵다 좌절하는 편이라. 시인님과 다른 독자분들의 감상으로 힌트를 얻고 싶어요.
고쿠라님, 안녕하세요? 궁금해하시는 표지에 대해 잠시 답변드릴게요. '시'와 '집'의 행을 분리한 것은 말씀하신 대로 '누구의 시'라는 뜻과 한 권의 시집이 시들이 모여있는 '집'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듯해요. '시집'이라는 말이 자동화되는 걸 잠시 낯설게 만드는 효과도 있겠고요. 출판사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제 짐작으로는... 그리고 시집 색은 시인의 선택이예요. 편집자가 어떤 색으로 할까 묻길래 '"죽은 피 색깔로 해주세요."라고 대답했지요. 시인의 말에 썼듯이, 피, 땀, 눈물이 자주 등장하고, 선혈보다는 죽음의 기억이 말라가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어요.
와! 제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말이 자동화되는 걸 잠시 낯설게 만드는 효과'로 멋지게 설명해 주셨어요. 맞아요! 의례히 별 생각 없이 사용하던 단어들이 시에서 저의 기대와 다르게 쓰일 때 자동화가 잠깐 멈추고 그 단어와 문장을 가만 들여다 보게 될 때가 있거든요. 시집, 소설집. 별 감흥 없던 단어들인데 생각해 보니까 너무 예쁩니다. 시들이 모여있는 '집' 소설들이 모여있는 '집' 시집 색깔은 시인의 선택이군요. 이것도 몰랐던 사실이에요. 내친 김에 갑자기 궁금해져서 저희 집에 있는 문학동네시인선을 다 찾아보았습니다. 시인님이 선택한 색상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달리 보이네요. 그런데 전부 단색 표지인데 제32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인님 시집은 꽃무늬 배경이에요. 특별판이라 저희 집에 있는 버전만 표지가 다르게 제작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까지 시집의 대문 구경을 실컷 했으니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준 시인님의 그 시집 원래 표지는 갈색이에요. 아마 고쿠라님 가진 책이 특별판인가봐요.
그런 거 같아요. 엄청나게 화려한 꽃 그림이 있어서 다른 문학동네시인선과 너무 느낌이 달랐거든요. 일부러 특별판은 이렇게 대조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식으로 만들었나 봐요.
바나나님도 반갑습니다. 요즘 난해한 시들이 많긴 하지만, 제 시들은 아주 어렵지는 않을 거에요. 소재들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이나 풍경들이 많고요. 얼핏 단순해 보여도 여러번 읽으시면 또다른 의미나 감각을 읽어내실 수 있겠지요. 읽으면서 막히는 대목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요,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시는 나희덕 시인님과 함께 시를 읽는 가을날을 보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 학생들도 시를 어려워 하고, 저부터도 시가 아주 쉽게 다가오지는 않아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천천히 한 편씩 읽어나가 보겠습니다:)
시집은 보통 제목이 길고 거의 문장 형태를 많이 봤는데요, <가능주의자>는 제목이 짧습니다. 이런 단어가 있었던가? 묘한 느낌에 갸우뚱해 하다가 시집 읽기 이제 시작합니다. 제목이 독특한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스케쥬리님, 반갑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서 7년 정도 국어교사를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문학과 입시를 위한 교사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었지요. 내일과 모레 먼 지방에 다녀와야 해서, 우선 인사 나누고 갑니다. 일요일 저녁에 돌아올 예정이니, 그 사이에 몇 편씩이라도 생각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쿠라29님, '가능주의자'라는 말은 제가 만든 단어예요. 그 함축적 의미는 표제작을 읽어보시면 아실 것이고요. '---주의자'라면 흔히 어떤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에 갇히기 쉽지만, '가능주의자'는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말이라 독단적 폐해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팬데믹으로 세계 전체가 답답하고 힘든 시기를 넘어왔는데, 그 속에서 ' 낙관적 가능성' 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었어요.
100페이지에 실린 '가능주의자' 표제작을 읽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제가 고민하고 생각했던 지점과 이 시가 많이 맞닿아 있어 조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시절이, 시대가 그러했던 것일까요... 마치 꼭 제 마음 속에서 꺼낸 것만 같은 '가능주의자' 시구절을 이 곳에 조금 옮겨 적어 봅니다. --------------------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안녕하세요 시인님! 한동안 시집을 읽지 못했는데 시인님 덕분에 오랜만에 시집을 펼쳐보았네요. 저는 시를 필사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아주 느리게 읽게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시인님과 이렇게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저는 필사는 해 본 적이 없지만, 시를 방에서 소리 내어 가끔 읽곤 하는데요, 눈으로 읽을 때와 너무 다른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플레인송> 함께 읽기 독서모임에서 정용준 소설가님이 '시를 읽어내려고 하지 말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듯 언어를 감각적으로 통과시키길'이라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글을 읽고 어쩌면 저도 모르게 이미 그렇게 목소리라는 형태로 시를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승언 님처럼 필사를 하시는 분들은 언어를 손가락으로, 손바닥의 감각으로 통과시키는 방식을 쓰시는 걸까 싶기도 하고, 시를 읽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네요.
@승언님, 반갑습니다. 시를 필사하면서 천천히 읽으시는 것이 좋은 독법입니다. 글씨체가 궁금하군요.
@고쿠라29님, 표제작 <가능주의자>가 평소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니 다행입니다. 지난 몇 년 우리가 지낸 몇 년이 그러했지요. 그리고 시를 읽는 방식 중에 낭독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종의 목소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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