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야구방망이는 얼굴을 겨냥했지만 마지막 순간 운전석 문에 기대고 있던 강형모가 앞으로 살짝 기울어지는 바람에 어깨 끝자락에 떨어졌다. 쿵하는 충격과 소리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고, 튕겨 나간 야구 방망이가 광대뼈에 만만찮은 충격을 주었지만 강형모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문짝이 움푹 파일 정도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강형모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서욱철은 쓰러진 강형모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꾹 찔렀다. 머릿속을 떠돌던 아픔이라는 벌레가 야구방망이에 눌린 옆머리로 모여드는 것 같았지만 찡그릴 기운조차 없었다. (중략) 툭툭거리는 충격에 머리가 차츰 앞바퀴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코와 머리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차에서 흘러나온 기름처럼 도로를 적셨다. 축 늘어진 강형모의 두 다리를 끌어낸 서욱철이 야구방망이로 무릎을 내려쳤지만, 이번에도 아픔 대신 파도 같은 출렁거림만 머리에 닿았다. (중략)
찌그러진 운전석 문짝에 기댄 채 겨우 몸을 일으킨 강형모는 콜록거리며 문을 열었다. 충격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아픔이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뼈는 거대한 못으로 긁어 대는 것 같이 욱신거렸다. 깨진 유리 조각이 수북이 깔린 운전석에 앉자 통증에 못 이긴 목이 뒤쪽으로 휘청거렸다. 침과 함께 섞여 나온 피가 이미 피로 얼룩진 턱을 흘러 내려갔다. 겨우 제자리로 돌아온 목이 받쳐 준 시선이 멀리 도망치는 서욱철의 모습을 잡아냈다. 갑자기 격렬한 복수심이 아픔을 제압했다. 그르렁거리는 신음 소리와 함께 시동을 걸자 상처 입은 제네시스가 복수를 욕망하면서 살아났다. 뒤틀린 발로 엑셀을 밟자 차는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중략) 브레이크가 잡아 두고 있던 속력이 얹힌 제네시스는 먹이를 쫓는 사냥개처럼 그대로 서욱철을 덮쳤다. 이빨로 변한 범퍼가 서욱철의 뒷무릎을 잡아챘고, 앞발 같은 보닛이 뒤로 넘어진 서욱철을 강타했다. 보닛에 얹힌 서욱철의 머리가 쭉 미끄러지면서 제네시스의 앞 유리창을 강타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제네시스의 앞 유리창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축 늘어진 서욱철의 몸이 보닛 옆쪽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차를 세운 강형모는 뒷덜미를 짓누른 통증에 못 이겨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었다. ”
『추락 - 한 사내가 72시간 동안 겪는 기묘한 함정 이야기』 p.127-128/p.129-131, 정명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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