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X교보문고sam] 20.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읽고 답해요

D-29
때문에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들은 어떤 면에서는 생각만큼 사정이 나쁜 게 아니다. 그들의 삶은 그럭저럭 정상이라 할 수 있으며 생각 이상으로 그렇다. 수많은 가족이 빈궁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 제도가 깨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긴축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운명에 발악하기보다는 생활 수준을 낮춤으로써 상황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실업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를, 특히 여자보다는 남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무기력감은 아무리 지성이 뛰어나다 해도 떨쳐버리기 어렵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5장 실업수당으로 사는 사람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실업으로 인한 끝없는 비참함은 계속해서 고통 완화제를 필요로 하며, 그런 차원에서 차야말로 영국인의 아편이다. 차 한 잔이나 아스피린 한 알이 통밀 식빵 한 조각보다 훨씬 나은 일시적 흥분제가 되는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영국에선 2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지만, 말 그대로 누구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먹는 것에서 생긴 결핍을 전기로 채우는 셈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전부 강탈당한 상당수의 노동 계급이 생황의 표피만을 누구러뜨리는 값싼 사치로 부분적인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C-2. 정말 필요한 것은 전부 강탈당한 상당수의 노동 계급이 생활의 표피만을 누그러뜨리는 값싼 사치로 부분적인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안은 절망의 고통을 이어 나가는, 신만이 아는 무엇일 터이다. p119
C-2. 전쟁 이후로 시장은 제대로 못 벌고 못 먹는 사람 들의 수요에 맞춰 적응해야만 했고, 그 결과 오늘 날 사치품은 거의 대부분 생필품보다 저렴해졌다. 수수한 구두 한 켤레 값이 엄청나게 세련된 신발 두 컬레 값과 같다. 정식 한 끼 값이면 싼 사탕과 자 두 파운드를 살 수 있다. 3페니로 고기는 얼마 못 사지만 피시 앤드 칩스는 충분히 살 수 있다. 우유 한 파인트가 3페니고 '순한' 맥주도 4페니나 되지만, 아스피린은 1페니에 일곱 알이며 차는 4 분의 1파운드 한 다발로 40잔을 짜낼 수 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모든 사치 중에서도 가장 값 싼 도박이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 해도 당첨금에 1페니를 걸어봄으로써 며칠간의 희망을(그들 말대로 삶의 이유가 되는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조직화된 도박은 이제 거의 주 요 산업의 지위로 올라섰다. 예를 들어 축구 도박 같은 현상을 생각해보자. 이 사업이 올리는 한 해 600만 파운드 가까운 매상고는 거의 다 노동 계 급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중략) 이 모든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보시는가? 나는 아 니라고 본다. 그러나 노동 계급이 겉으로나마 보 이고 있는 적응은 그들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 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혁명적으로 변한 것도 자존심을 잃은 것도 아니다. 단지 노여움을 참고, 피시 앤드 칩스 수준에서 그럭저럭 견더 나 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안은 절망의 고 통을 이어 나가는, 신만이 아는 무엇일 터이다. (중략) 값싼 사치가 발달한 것은 우리의 통치자들에겐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피시 앤드 칩스, 인조견 스타킹, 연어 통조림, 할인 초콜릿, 영 화, 라디오, 진한 차, 축구 도박 같은 것들이 혁 명을 막은 게 사실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 실업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게 전부 지배 층의 교활한 술책이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본 바로는 우리 지배층에게 그만한 머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말하자면 시장을 확대할 필 요가 있는 제조업자들과 값싼 고통 완화제가 필 요한 배고픈 사람들의 형편이 그럭저럭 맞아떨어 졌다는 것이다. p. 120~ 122
그 과정(신체적 조건의 퇴보)은 그보다 일찌감치 시작된 게 분명하며, 궁극적으론 건강하지 않은 생활양식, 즉 산업화 때문임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무엇이든 대체할 수 있는 값싼 대용품을 제공해주는 근대의 산업 기술 때문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결국엔 통조림 음식이 기관총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예컨대 노동 계급은 실업수당 을 받는 처지이면서도 결혼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남부의 브라이턴에 사는 노부인들에겐 당치도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노동 계급의 분별을 단적으로 잘드러내주는 증거다. 즉.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임을 갈 알고 있는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몹시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중 많은 사람들이 실직한 것을 '수치스러워' 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실업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실업이 계속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여전히 '실업수당이나 타먹고 사는 게으름뱅이'란 말을 썼으며 '그런 자들은 원하기만 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노동 계급 자신에게도 스며들었다. 실업은 당신 '개인'에게 닥친 재앙이었으며, 그것은 당신 '자신' 탓이었던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물론 전후에 값싼 사치가 발달한 것은 우리의 통치자들에겐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피시 앤드 칩스', 인조견 스타킹, 연어 통조림, 할인 초콜릿, 영화, 라디오, 진한 차, 축구 도박 같은 것들이 혁명을 막은게 사실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 실업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게 전부 지배층의 교활한 술책이라는 (일종의 '빵과 서커스'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본 바로는 우리 지배층에게 그만한 머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말하자면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제조업자들과 값싼 고통완화제가 필요한 배고픈 사람들의 형편이 그럭저럭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자산 조사’가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 제도 때문에 노인들이, 그중에도 때로는 병석에 누워 있던 노인들이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 이를테면 홀아비인 노년의 연금생활자는 대개 자녀들 중 하나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경우가 많으며, 그가 매주 받는 10실링은 가계의 생계비로 쓰이고 그는 그럭저럭 보살핌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자산 조사’라는 제도는 그를 ‘하숙인’으로 보며, 그가 자녀의 집에서 함께 살면 자녀의 실업수당을 삭감해버린다. 때문에 일흔이 넘은 노인이 진짜 하숙집으로 나가 살면서 하숙집 주인에게 연금을 다 넘겨주고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여러 번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자산 조사’ 덕분에 그런 일이 지금 이 순간 영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독뿐 아니라(노동 계급의 집에선 고독하기도 어렵다) 마음의 평화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업이라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는, 무엇엔가 전념한다는 것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기대감’을 발휘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C-3. 오웰은 ‘전후의 값싼 사치’들의 예시로 피시 앤드 칩스, 인조견 스타킹, 연어 통조림, 할인 초콜릿, 영화, 라디오, 진한 차, 축구 도박 등을 열거합니다. 당시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는 그런 값싼 사치가 혁명을 막고 있으며, 그런 값싼 사치재들을 내놓은 것이 지배계층의 모략이라는 주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웰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제조업자와 값싼 고통 완화제가 필요한 배고픈 사람들의 형편이 그럭저럭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하지요. 2020년대 한국에도 고통 완화제가 필요한 저소득층을 위한 ‘값싼 사치재’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예시를 들어주세요.
커피가 아닐까요? 무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1,500원이면 마실 수 있고, 커피믹스도 앵간한 회사 탕비실에 쌓여 있고요. 레쓰비도 1,200원(편의점을 잘 안 가서 800원이 마지막 기억인데요 천 원이 넘군요 ㅜㅜ)으로 살 수 있네요. 제 주변에 현생에 허덕이는 많은 분들이 대체로 커피 없이 못 살더라고요. 커피를 안 먹는 저는 아이스크림을 엄청 먹습니다... 돼지바 누가바... 최근에는 요맘때 딸기맛 콘에 빠져있어요.
요즘은 워낙 고물가 시대로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는데 @도리 님이 쓰신 글을 읽으니 커피, 맞는 것 같습니다.
영상물? 유튜브든 넷플릭스든 원하면 뭐든지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면서 내가 컨텐츠를 선택했다는 만족감을 주는..... 그러나 사실은 중간광고와 ppl을 소비하고 있는....
C-3 6장의 먹거리에 대해 읽으면서 스마트폰이 떠올랐습니다. 정작 고소득층의 IT 개발자들은 자녀에게 유아기에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꽤 오래 전에 들었는데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이 질문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도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요샌 다이소에서도 스페셜티 커피 캡슐을 팔더라고요. 카페에서 한 잔 6천원에 파는 게이샤 커피를 10잔이나 마시고도 천원이 남는다니. 이런 값싼 사치재가 또 어디 있을까요.
저는 다이소가 생각이 납니다. 과거에는 단순한 문구류나 생활용품 등을 주로 팔았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유명 뷰티 브랜드나 패션 브랜드 등이 중심으로 해서 물건을 판매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사치재'라는 말에 어울리는 물건들이 많아지고 여전히 값은 싸서 현대의 '값싼 사치재'들의 공간이 다이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C-3 한동안 법원 발 뉴스가 사회를 뒤덮었습니다. 학원 폭력부터 대기업 회장의 이혼 소식까지. 저는 이 양상이 오늘날 값싼 사치재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웰이 예시로 든 예시들은 고통을 완하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오늘날에는 예시등은 그 역할을 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대신에 저는 사회가 분노하는 데 그 역할을 대체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타인에 대해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 나의 흠보다 타인의 흠집에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람들, 조리돌림을 하는 여론, 시시비비를 가려 나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것 들까지. 날카로운 분노를 통해 사회의 불만을 표출하는 대신 모두가 모두에게 겨누는 시대. 그 끝에는 모든 사건이 법정으로 끌고 가는 양태가 오늘날의 값싼 사치재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지도층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맞아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사회 진보를 이룰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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