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발트 읽기] 『공중전과 문학』 같이 읽어요

D-29
[#2차 시기 ~143P] 3부는 취리히 강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논평합니다. 저자는 전후 독일 문학에서 공중전이 다뤄지긴 하였으되, 그것이 다뤄지는 방식이 지나치게 '질서정연한 독일'의 모습이었다는 점을 문제 삼습니다. 즉 공중전의 참상은 이성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비참한데도 전후 독일 문학이 공중전을 기술하는 방식은 전과 다름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억들이 일반적으로 또 문학적으로 표현되는 형식을 신뢰하지 않는다"(112쪽)는 저자의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앞서 1,2부에서도 내내 다뤘던 내용이며, 공중전이 한창이던 때에도 적지 않은 독일인들이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차를 마시며 일상을 영위했다는 것이죠. "오히려 보통 명랑한 회고담, (무심결에) 특정한 사회적 지지나 정신 상태를 드러내는 표현이 두드러진 회고담이라는 것이 문제이고, 나는 그런 표현들을 마주칠 때마다 굉장히 큰 불편함을 느낀다. 거기에는 장엄한 산악 풍경이 있고, 별 걱정 없이 고향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편안한 시선이 있으며, 크리스마스가 있고, 도를레 브라이트슈나이더가 산책을 가려고 여주인을 데리러 오면 기뻐하는 셰퍼드 알프가 있다." ⏤본문 115쪽. 요약하면, 저자는 공중전의 참상이 합당한 형식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전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그려진 것을 보면서 과연 반성이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의문하는 듯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롭게 보았던 점은, 저자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는 'H박사'의 주장이었습니다. 편지에서 H박사는 공중전에 대해 음모론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연합군이 공중전으로 독일인들의 도시를 파괴함으로써 독일인들에게서 그들 자신의 유산과 전통을 자라내버린 뒤, 전후에 실제로 있었던 문화적 침략과 보편적 미국화를 예비하려는 목적을 따랐다"(135쪽)고 H박사는 주장합니다. 강박적일 정도로 질서정연한 서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서 음모론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듯합니다. 왜냐면 현실은 전혀 정연하지 않고 때때로 너덜너덜하며 불필요해보이는 우연과 의아한 필연이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나치 세계관의 지지자들은 민족적으로 '완벽하고 강하고 순수한 독일인'이라는 환상을 이루기 위해서 불순한 의도를 지닌 침략자로서 '외국의 유대인'을 상정해야만 하는데, 그러한 유대인의 '음모' 하에서만 독일은 순수함과 완전함을 잃고 핍박받는다는 식의 서사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음모론자들은 '나는 상대의 음모를 간파하고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내면화하고, 또 '음모를 꾸미는 상대를 간파하는 나르시스트적인 자기 이미지'에 심취해 있는 듯합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식 추리 애니메이션(명탐정코난)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고 잘 보지도 않습니다. 그 내용과 논리와 트릭의 탁월함과 별개로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뒤틀려 있으며, 상대에게 음모를 꾸미기를 종용하는 듯한 태도가 깔려 있는 것 같아서 꺼림칙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을 인용하면서 2차 시기 마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막사의 잔해에서 죽은 채 발견된 코끼리들은 며칠 뒤에 그 자리에서 토막을 내야 했고, 그 작업을 위해 두꺼운 가죽으로 둘러싸인 코끼리의 가슴팍을 열고 산처럼 덩어리진 내장 뭉치를 후비고 들어가야 했다. 이런 끔찍한 이미지들은 인간이 견디는 고통에 대해서 보통은 한번 걸러지고 정형화된 형태를 따르게 마련인 기존의 경험담 형식을 깨부수기 때문에 우리를 특히 경악에 휩싸이게 한다. ⏤본문 127쪽.
화제로 지정된 대화
[#3차 시기 시작합니다] 3차 시기는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를 읽습니다. 저자는 전후 독일문학을 일으켜세웠다고 일컬어지는 작가 중 한 명인 '알프레트 안더쉬'를 상당히 강한 논조로 비판하는데요, 앞서 다룬 취리히 강연과 비슷한 맥락에서 글이 전개됩니다. 알프레트 안더쉬의 대표작인 '진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는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로 한국에 번역되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573292). 마지막 3차 시기 시작하겠습니다:)
[#3차 시기 ~194p] 제가 보기에, 저자는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에서 일관되게 재현 문제, 즉 쓰여진 것과 실재하는 세계 사이의 불일치를 명민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때 동원되는 예시로서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구요. 글을 읽는 내내 알프레트 안더쉬가 서사를 구현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이 나치라는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폭력을 내장한 세계관처럼 보였습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전후 독일의 집단적 망각 속에서 유년을 보낸 한 명의 동일인으로서 이전과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원했을 테구요. 이젠 유명해진 말이지만,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로 서정시가 쓰여질 수 있는가?' 물었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성의 바닥이 직접적으로 드러났다고 하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문학에 대한 환멸감을 한탄하는 말만은 아닙니다. 홀로코스트 이전과 같은 방식의 서정, 2차세계대전 이전의 서사 전개 방식이 '나치'로 귀결되었다고 한다면, 그 이전의 '문학의 기법' 자체를 반성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문제의식을 내포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제발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조금 이상한(?) 서술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이로써 3차 시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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