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좌절의 시대>를 읽으며 생각을 나눠봐요.

D-29
형식은 무제한입니다.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셔도 좋고, 인용구를 남기셔도 좋습니다.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보아요.
내가 만약 한국의 외로움 담당 총리가 된다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장관을 휘하에 두고 '외로움 재분배 태스크 포스 팀'을 만들겠다. 우리 사회 어느 구석은 외로워서가 아니라 반대로 너무 부대껴서 탈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면, 사람이 될 수 있을 만큼은 각자 외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 아닐까. 야근에 시달리는 회사원, 육아에 지친 부모, 학원 다니느라 바쁜 학생들을 나는 가슴검은도요새가 지켜보는 물가 갈대숲으로 데려가고 싶다. 때가 되면 산그림자가 내려오고,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순간 그들이 홀로 됨을 벅차게 느끼도록 하고 싶다. 그런 그윽하고 감미로운 고독을 선사하고 싶다.
미세 좌절의 시대 p.20, 장강명 지음
안녕하세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와 봤습니다. 책은 <미세좌절의 시대>인데, 모임 제목은 <나쓰메 소세키 기담집>이네요. ^^;
안녕하세요 또 뵙는군요. 급하게 텍스트를 복붙하고 수정하는 걸 깜빡했었네요..ㅎㅎ;; 이번에도 즐거운 대화 기대하겠습니다. ^^
현대문명은 점점 더 정교하고 복잡하고 자체적인 작동 원리를 지닌 기계가 되어간다. 우리는 생존과 안전에 대한 걱정을 더는 대가로 그 회색 기계 속 부품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변덕쟁이 신과 사나운 야생보다는 그편이 좀더 우리의 이치에 가까우리라 민고.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다른 부품들 사이에 옴짝달싹 못한 채 서서, 이 무표정한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리자가 있기나 한 건지를 궁금해한다. 그러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 기계는 늘 어딘가 고장이 나 있는 것 같아.'
미세 좌절의 시대 p.24, 장강명 지음
사실 무력감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면 고전적인 영웅서사다. 가진 게 없었고, 시련을 겪었으나, 결말은 창대한, 미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소재로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므로 희망이, 목표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과거가 보잘것없고 현재가 힘들수록 더 대단해진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비극적 영웅이 되지, 무력한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미세 좌절의 시대 p.36, 장강명 지음
수전 케인은 내향적인 사람들을 다룬 책 『콰이어트』(김우열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2)에서 외향적인 사람들을 찬양하는 문화가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이웃이 아닌 모르는 이들과 일해야 했다.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호감을 주는 사람들이 유리해졌다. 낯을 가리고 수줍음을 타는 사람들은 '성공하려면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이때부터 그들은 타고난 제 모습을 혐오하고 부정하며 끝없이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미세 좌절의 시대 p.44, 장강명 지음
적어도 현시점까지의 인터넷은 빠르고 짧은 정보를 선호한다. 디바이스도, 플랫폼도, 매체도, 이용자도 그렇다. '빠르고 짧다'는 표현은 어쩌면 동어반복인데, 인터넷 세상에서 어떤 정보가 빨리 전파되려면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지식은 대개 짧지 않다. 지식이란 정보들이 논리에 따라 연결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깊은 지식일수록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하다. 따라서 문맥이 중요하다. 책 한 권을 문장 단위로 분리해서 마구 흐트러뜨린 뒤 순서 없이 읽는다면, 그 책의 모든 글즈를 다 본다 해도 제대로 이해하는 내용은 아주 적을 게다. 그게 인터넷이고 소셜 미디어다.
미세 좌절의 시대 p.50-51, 장강명 지음
너무 나간 상상인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한국사회가 좌우로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족으로 갈라지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정치인 팬덤 현상은 한국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나. 미성숙한 '부족주의' 문화 속에 건강한 회의주의는 사라지고 단순주의와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것은 아닌다. 이렇게 세계가 파편화하는 걸까.
미세 좌절의 시대 p.65, 장강명 지음
도박장에서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세상 전체가 카지노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미래세대의 가치관을 진심으로 염려한다. 검소한 생활과 자기 절제, 노동, 꾸준한 노력이 보답받고 또 찬미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인간이 비로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 거품이 언젠가 꺼지면 그때는 또 얼마나 파괴적인 절망과 환멸이 우리를 휩쓸 것인가. 그렇다고 거품을 꺼뜨리지 말고 이대로 놔둬야 하나? 한데 그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기는 한가.
미세 좌절의 시대 p.92, 장강명 지음
앨빈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을 쓴 것이 1970년이다. 그는 세계가 점점 빠르게 변할 것이고, 어느 지점에 이르면 변화의 내용이 아닌 속도 자체가 사람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간의 적응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세기가 지나 드디어 토플러가 우려한 세상에서 살게 된 기분이다.
미세 좌절의 시대 p.95, 장강명 지음
그간 사회성 짙은 소설을 써왔다. 과업이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에 빠진 청년들,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가는 세태, 인터넷 여론 조작 등. 최근에 펴낸 단행본에서는 2010년대 한국의 경제 현실과 노동문제를 다뤘다. 이런 책들을 내고 언론 인터뷰를 하면 한두 번씩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하면서 왜 이런 소설을 썼느냐?"는 것이다.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당황해서 할말을 잃었다. '설마 보수는 청년문제,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그 설마가 맞았다. 요즘은 간편하게 '보수는 악'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가끔은 그런 명쾌함이 부럽다. 내가 이해하는 보수와 진보는 방향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속도에 대한 것이다. 가야할 방향은 명확히 정해져 있다. 경제의 역동성을 잃지 않으면서 사회안전망도 튼튼한 사회. 잠재력을 펼치고자 하는 이들이 기회를 얻고, 경쟁의 최전선에서 한발 물러나도 미래가 두렵지 않은 세상. 그것이 가능한가 하고 물으면 북유럽을 보라고 답하겠다. 우리와 여건이 다른 북유럽의 제도를 직수입하자는 것은 아니다. 북유럽 사람들이 해낸 일은 우리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미세 좌절의 시대 p.119-120,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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