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과 닮은 꼴이니까 마저 읽어보자.

D-29
무언가 강력한 비밀이 베르크와 빈덴 사이 어딘가에 있다. 사건이 벌어진 시점은 과거지만, 사건의 끝은 언제나 더 먼 미래를 향한다. 그렇기에 현재 그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느냐, 오직 그것이 중요하다.
새벽의 그림자 p.61 , 최유안 지음
해주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입에 넣은 김치 조각을 우걱우걱 씹는 용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마음으로 살겠구나. 자신의 상황을 너무 탓하지도 않고, 처한 상황에 너무 매몰되지도 않고, 주어진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문득 그러자 용준에게 주어진 삶도, 해주에게 주어진 삶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앞에 놓인 걸 해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니까. 무엇보다 해주에게 별로 궁금한 게 없었던 용준이 고마웠다. 그것이 바로 용준이 해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새벽의 그림자 p.68, 최유안 지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꼿꼿하게 상체를 세우고 죽을 떠먹는 심성 바른 용준을 보고 있으면 문득 반성이 되었다. 용준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어떤 가족에게서 태어났느냐보다 중요한 건 용준이 그저 지금 저 모습으로 내 앞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만으로도 지금 용준은 제 몫을 잘 하면서 살고 있는 거라고, 해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생각은 의지에서 비롯되는 법이었다.
새벽의 그림자 p.70, 최유안 지음
"죽을 때가 되어야 세상이 아름답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해주는 그렇게 말하는 노인을 바라보다 시선을 멀리 풍경쪽으로 돌렸다. 해주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어둠, 아무것도 아님, 그 뒤가 없는 것이었다. 즐겨 듣던 노래를 부른 사람이 죽고,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죽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삶이 아닌 것. 끝인 것. 해주에는 그것이 죽음이었다. 구급차에 실려나가던 젊은 남자와 밀대를 밀고서라도 움직여 바깥 산책을 나온 노인과의 만남에 대해, 이곳이 낯선 나라의 요양원이라는 사실에 대해 떠올리다가, 해주는 기이한 쓸쓸함에 사로잡혔다. "바쁘게 살던 때에는 안 보였던 아름다움이 이제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지요. 죽음이 물처럼 자연스럽듯이." 모든 것이 때가 되어 의식되는 것. 해주에게 죽음이 다가올 때, 죽음의 다음은 여전히 끝으로 인식될까. 노인은 한참 걸려 밀대를 고정시키며 일어나더니, 또 한참 걸려 밀대를 밀어 한 걸음 걸어나갔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가 아름다움을 안고 죽음을 향해 걸어나가는 장면을 해주는 바라보고 있었다. p.72
작가님, 두 번 읽기 고되셨을텐데, 잘 읽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해요!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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