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정진영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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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으로는 지역의 기업엔 지역출신 인재가 많이 입사하고, 입사해서는 공정하게 경쟁해서 우수한 직원이 출신과 상관없이 주요직에 근무한다... 라고 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이 바뀌긴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언론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 작동한다면 대놓고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겠죠. <젠가>는 지역 기업의 현실을 다룬 소설이기도 하지만, <침묵주의보>처럼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지역에 뿌리를 잘 내린 국공립병원들은 그 지역 출신 성골 비율이 높은 것 같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다만 그런 곳에서도 철저하게 서열화가 이뤄진다는 게 문제죠. 언젠가 제 앞에서 한 지역거점국립대 출신 인물이 같은 지역에 있는 사립대를 '똥통'이라고 표현하며 멸시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 지역 사립대는 해당 지역에서 꽤 입지가 있는 대학인데도 말이죠. 그런데 그 지역 사립대 출신 인물이 그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다른 지역 사립대를 '똥통' 취급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서울과 달리 지역에선 이런 현실이 잘 공론화되지 않아 문제죠. 그 문제의 근원에 제 역할을 못하는 지역 언론이 있습니다. 지역 언론은 몇몇 매체를 제외하면 사실상 감시와 견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앙 언론은 지역 현실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계속 사각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죠. 제가 기자 경력을 지역지 기자로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현실을 더 답답하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직마다 성골, 진골, 6두품을 나누는 기준이 모두 달라 흥미롭더라고요. 지방에선 고교 인맥이 꽤 여러 분야에서 유용하게 작용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언론계에선 조선일보를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서울대 출신(그중에서도 법학과, 정치학과)이 아니면 그 자리에 앉지 못하더군요. 반세기 넘게 그래왔습니다. 다른 중앙 언론사도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이 지나치게 권력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이런 인적 구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작가님! 젠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 구상은 어떻게 하셨나요?
우리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일인데 시끄럽지 않은 사건을 소설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때 제가 떠올린 사건이 2013년 원전비리 사건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만큼 위험한 일인데 지나치게 조용하게 넘어가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 기자는 아니지만 소설로 르포 기사처럼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 집 근처 공원에서 걸으며 소설을 구상했습니다. 걷다 보니 소설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더군요. 정읍에 있는 권번문화예술원이 제게 집필실을 마련해줘 그곳에서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치밀하게 설계도를 그렸고, 그 설계도에 따라 소설을 써 내려갔습니다. 마치 블록을 짜 맞추듯이. 이런 식의 소설 집필은 저도 처음이어서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중에서 쓰면서 가장 즐거웠던 소설입니다.
작가님 인터뷰나 블로그에 쓰신 걸 보면 매번 소설을 쓰실때마다 집을 떠나서 글을 쓰시는 걸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집필하실 때보다 낯선 환경에서 집필하시는 것이 더 집중에 도움이 되나요? 저도 논문을 쓸때 집에서는 절대! 안 써지고, 직장에도 잘 안써지고, 스터디카페나 카페에 가야 써지더라고요. 물론 장편소설 집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업이긴 하지만요.
일단 저는 집이 아니면 다 좋습니다. 집에선 눕고 싶고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도저히 저를 제어할 수 없더라고요. 히트 작가와 중견 작가 대부분 따로 작업실을 두고 집필합니다. 저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기에 작가들을 대상으로 집필공간을 지원해주는 레지던시에 지원하고, 운이 좋아 선발되면 들어가서 작품을 집필합니다. <젠가>를 비롯해 <침묵주의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등의 작품을 모두 외부 집필실에서 작업했습니다. 집에서 작업이 가능하신 분을 존경합니다. 저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소설 시작할때 습관 같은거 있으세요?
대단한 습관은 없습니다. 가능한 한 집에서 먼곳으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래야 글을 쓸 수 있어서요. 집에 있으면 유혹이 너무 많아요. 드러누워 자고 싶고, 술을 마시고 싶고,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보고 싶고. 일이 급하다 싶으면 무조건 나갑니다!
직원들과 청렴 독서토론회를 나누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장강명 작가님의 북콘서트를 봤었거든요. 처음부터 균열은 예상되어 있고 젠가에 빠져들수록 겉잡을수 없이 위태로움은 커져가죠 부패와 붕괴로부터 나를 지키기란 쉽지 않아요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기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흥을 되새길수 있어 좋네요
이 작품 덕분에 청렴과 관련한 모임에 자주 불려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감사 업무를 맡는 분들과 종종 뵙는데, 작품의 내용이 자기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해주실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집니다. 이 소설이 소설로 끝날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현실과 다를 게 없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거든요. 이 소설이 소설로만 읽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겠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50쪽 쯤 읽으니 제목이 왜 <젠가>인지 알겠습니다 반드시 붕괴되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뜻인가봐요 제목이 장남감 명칭인데 왜 사회부조리와 연결되는가 했거든요 잠깐 읽었는데도 몰입감이 뛰어나고 왠만한 스릴러물보다 긴장되네요~ 저도 서울에 살다 직장 때문에 오랜시간 지방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서울만의 지연 학연이 있지만 지방은 더 끈끈한 지연 학연이 있지요~~~ 너무 실감나고 무섭게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22쪽 김원용 대표의 대사' 인생은 절대 한방에 꼬이지 않아요 서서히 잔잔하게 꼬여가지 살아남기 위해 눈을 가리고 앞으로만 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꼬여있는 게 인생이야' 음~~혹시나 저의 생활에서도 그런 지점이 있을까봐 무서워지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에 관한 뒷이야기가 있는데 원래 제가 지은 제목은 <아비지옥>이었습니다. 제목이 좀 세다 보니 출판사가 난감하게 받아들였는데, 그때 제가 제안한 새로운 제목이 <젠가>였습니다.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무너지는 젠가였거든요. 보통 제목은 편집자가 짓는 경우가 많은데, 어쩌다 보니 이 작품의 제목은 제가 짓게 됐습니다. 인생은 절대 한방에 꼬이지 않는다... 제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왜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추적하다 보면 그 이유가 한둘이 아니었어요. 인생은 서서히 잔잔하게 꼬이는구나. 저를 보며 한 반성의 말이었습니다.
와! <젠가>소설 제목에 대한 뒷이야기까지! 알려주시고 정말 감동입니다~^^ 보통 소설을 읽으며 궁금한 점들이 있는데 이렇게 작가님을 직접 대면하듯이 말씀을 듣다니 너무 조으네요~~~ 보통 사느라 정신없이 살게 되는데 인생이 꼬이는 일 없도록 서서히 잠식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겠네요~~~
저는 젠가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소설 내내 젠가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나오는데 제목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아비지옥은 무간지옥하고 다른건가요? 제목을 아비지옥으로 했으면 영화 무간도가 떠올랐을 것 같긴 합니다.
아비지옥과 무간지옥은 같은 의미입니다. 불교의 팔열지옥 중에서 가장 아래층에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이라더군요. 무간지옥은 아무래도 영화 <무간도>가 떠오르는 제목이어서 피했습니다. 출판사는 지옥이라는 표현이 너무 세다는 의견을 내서 <젠가>라는 제목을 제안했는데 다행히 마음에 들어하더라고요. 저는 <젠가>라는 제목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서희철의 이야기도 와닿았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학업을 마치고 서울에서 그런데로 살 수 있으리라 꿈꾸었지만 그렇지 못했지요 내일전선에 입사하면서 미래전선에 가기위한 징검다리라 생각했지만 그 위에서 13년이나 머물렀구요~ 연고없는 지방에서 서희철의 삶은 서서히 꼬이기 시작하고 이사람의 잘못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서희철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이 실은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이럴 때 어떻게 살아가는게 좋을지 궁금해지네요~ 내일전선의 조직생활이 너무 살벌하네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의문스럽네요~~~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정의로우며,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비겁한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 대한민국 사회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니, 비슷한 조직 문화가 대한민국 조직을 지배합니다. 소설이 해결 방안을 마련해 줄 순 없습니다. 그럴 의도도 없고요. 그래도 소설에 의의가 있다면, 그런 조직 사회의 모습과 문제점을 한 번쯤 되새기게 하는 데 있을 겁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의식하고 사는 게 변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지 않을까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네~ 작가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빨리 해결방안을 찾기보다 그런 조직사회에서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 부터가 시작이겠지요~'예전부터 그래왔어'와 같은 타성에 젖어 지내기보다 힘들지만 그 안에서 깨어있기!! 혹시 누군가가 문제점투성이 인 곳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려면 막고 짖밟기보다 함께 찾아보기 등등이 있겠죠~~ 솔직히 살다보면 지쳐서 그냥 눈 감고 싶을 때도 많은데 그렇게 타협하다보면 '내일전선'(아비지옥) 이 눈 앞에 펼쳐질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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