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는 징역 오 년을 구형받은 것보다 비참함을 느꼈다. 남자의 죄명은 결혼 사기였다. 불기소돼 곧 출소했지만, 남자는 그때 검사의 미소를 생각하면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하며 역시 우아하게 탄식했다. ”
『다자이 오사무×청춘』 p.15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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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등롱>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올라왔어요. 첫눈에 반한 연하의 남자를 위해(?) 물건을 훔친 주인공, 그 와중에 구구절절 자신의 사연을 읊는 장면에서 뻔뻔스럽지만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죠.
(사실 소-올-직하게 말하자면 이번 등장인물 다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상대에게조차 "교육이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심정은 어떤 심정일까. "사키코 씨도 앞으로는 행실을 바르게 하고, 저지른 죄의 만 분의 일이라도 속죄하고, 사회에 깊이 사죄하세요."라는 이 문장은 또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거기다 종지부를 찍죠. "(읽은 뒤에는 반드시 태워 버리세요. 봉투도 함께 태워 주세요. 반드시)"
당신과는 조금도, 단 하나도 얽히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은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때의 허탈감 같달까요. 차가운 현실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도 들었어요. 미즈노에게 사키코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모임지기님이 말씀하셨던 다자이 오사무의 징징거림, 그 징징거림이 화자에게도 느껴졌어요. 이건 소설과는 상관없는 말인데요. 저는 싫다는 사람 붙잡는 사람들 정말 싫어합니다(나는 사랑 아니라고, 니 감정은 니가 책임 지라고 쫌). 그나저나 제목은 왜 등롱일까요.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어요.
연해
“ 저란 여자는 한눈에 사랑에 빠져 버립니다. 저처럼 왼쪽 눈에 하얀 안대를 끼고 언짢은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작은 사전을 이리저리 넘기면서 공부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가여워 보였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청춘』 p.16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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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저를 감옥에 가두시면 안 돼요, 저는 스물네 살이 될 때까지 나쁜 짓을 한 게 하나도 없어요. 나약한 부모님을 성심껏 보살펴 드렸다고요. 싫어요, 싫어요, 저를 감옥에 가두면 안 돼요. 제가 감옥에 왜 가야 하나요. 스물네 해 동안 애쓰고, 또 애썼는데, 고작 하룻밤 손을 잘못 움직였다고 해서, 고작 그런 일로 스물네 해의, 아니 제 평생을 망쳐 놓으시면 안 돼요. 잘못된 일입니다.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평생에 단 한 번, 무심코 오른손이 한 뼘쯤 움직였다고 해서 그것이 손버릇이 나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너무하십니다, 너무하십니다. ”
『다자이 오사무×청춘』 p.16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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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우리의 행복은 고작 방의 전구를 바꾸는 것 정도구나, 하고 속으로 저를 납득시키려했지만, 그리 쓸쓸한 마음도 들지 않고 도리어 이 소박한 전등을 켠 우리 가족이 아주 아름다운 주마등처럼 느껴져서, 아, 훔쳐볼 거면 보라고, 우리 가족은 아름답다고, 하고 마당에서 울어 대는 벌레들에게까지 알려 주고 싶은 조용한 기쁨이 가슴속에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청춘』 p.170,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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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ㅅㅈ
<한심한 사람들>
첫 번째 남자 보면서 뜨끔 했어요. 남 일 같지 않아.. 맹세할 땐 진심으로 지킬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탁 고삐가 풀리면 여기 아가씨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거죠.
나를 바꾼다는 게 정말 힘들고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닌데 맹세는 쉽게 턱 내놓을 수 있으니까 ,버릇처럼 꺼낼 때가 있어요. 이런 맹세를 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진심으로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 하더라고요.
연해
말씀하신 부분 공감합니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약속(?)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그 흔한 밥 먹자는 말도, 정말 먹을 사람 아니면 대답을 안 합니다).
흔히 썸을 탈 때도요.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약속을 쉽게 하시는 분들을 만나곤 하는데요. 저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기보다는 오히려 의심부터 들더라고요. '어떻게 저 말을 저렇게 쉽게 하지? 저 말의 무거움이 뭔지는 알고 저러는 걸까?' 싶은(같은 결로 도와주겠다는 말을 남발하시는 분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가씨의 대답이 순수해서 좋고, 순수해서 아팠어요. 가끔 그럴 때가 있거든요. 누가 봐도 거짓말 같은데, 나한테 거짓말 안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아닐 거야, 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는 나. 그런 나를 마주할 때면 이 상황이 정말 괜찮은 걸까 고민에 빠지기도 해요(주변에서는 저보고 바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상대의 거짓말인 걸 알았을 때, 맥이 탁 풀리죠. 그럴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별을 고했던 것 같습니다.
ㅅㅅㅈ
"분명히." 아가씨는 맑은 미소로 대답했다. "맹세했잖아요. 그런데 술을 마셨을 리가요. 내 앞에서는 연기 그만해요."
『다자이 오사무×청춘』 p.15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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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한심한 사람들」과 「등롱」은 별 느낌 없이 읽었습니다. 저도 @리타73 님처럼 ‘이거 마감 때문에 대충 쓴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롱」을 읽는 동안 희미하게 불쾌감이 들었는데, 작품 외적인 요소 때문이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부잣집 도련님이었거든요. 그런데 「등롱」은 가난한 화자를 내세우고, 거기서 어떤 효과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표현을 빌자면 ‘가난까지 훔친’ 거 아닌가요.
도둑맞은 가난주로 1970년대 씌어진 작품들로,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 1970년대 사회적 풍경과 아픔, 여성 문제 등을 다룬 작품들을 담고 있다. <도둑맞은 가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겨울 나들이>,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아저씨의 훈장>,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해산 바가지> 등 총 7편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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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등롱>
"말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저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가 저를 경계합니다. 그저 그리워서, 얼굴을 보고파서 찾아가도, 무얼 하러 왔느냐는 눈빛으로 맞이합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문장 읽고 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사키코를 내세웠지만, 항상 다자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저런 감정 같았는데 본인이 직접 문자화 해 주셨네요.
안 그래도 초라하게 살았던 사키코는 미즈노에게 버림받고 더욱 쪼그라든 삶을 살았을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로
<한심한 사람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번 단편에서도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작가의 공감 능력과 여지가 없는 솔직함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물론 각각의 세부 이야기(특히 2번째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리까리한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어떤 유추를 해봐도 여지없이 과녁을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짧은 단편 안의 단편들에 독자들을 표류하게 만들어,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끼게 할 심산이었다면, 다자이는 성공한 것입니다.
세 이야기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해석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 중인데, 결국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엇을 쓰더라도 작가의 의도를 왜곡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 같아서요. 아마 그 (거짓된) 글은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숨이 잠깐 멎는 기분이 들게 하며, 밤새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이 분명합니 다.
메리D
전..등롱에서 "각자의 시선"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그 둘은 서로의 모습을 '자신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