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래도 예술가라는 존재에게 마음을 뺏기는 결점을 갖고 있는 것 같아. 특히 그 남자가 세상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할 때 더욱 가슴이 설레는 거지.
『다자이 오사무×청춘』 p.49,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문장모음 보기
도리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재밌었습니다. 무르고 소심하고 무맥해 강단 없는 화자가 답답하면서도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도리
“ 청년들은 언제든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서로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면서 제 심기를 소중히 감싼다. 쓸데없이 경멸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한번 상처를 입으면 분명 상대를 죽이든, 제가 죽든 끝을 보자는 생각까지 하고 만다. 그래서 다툼을 꺼리는 것이다. 그들은 적당히 얼버무리는 말을 수도 없이 안다. 아니오, 이 한 마디조차 열 가지쯤으로 나눠 쓸 수 있다. 논의를 시작하자마자 이미 타협의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끝내 웃으며 악수하면서도, 속으로는 서로 함께 이렇게 중얼거린다. 덜떨어진 녀석! ”
『다자이 오사무×청춘』 p.87, <어릿광대의 꽃>,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문장모음 보기
도리
이 부분 재밌었습니다. 평소에 저도 대화할 때 긍정적으로 맺은 말 남기는 습관 같은 게 있는데요. 긍정적인 기분이 아닐 때도 긍정적인 양 이러는 게 스스로 어이없으면서도 자주 이러네요.
1지은
저도 이 문장과 여기 아래, 그리고 그 아래 남겨주신 문장에서 예나 지금이나 청춘들의 심리는 같구나 했어요. 아마도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갑작스레 만나게 되는 책임감과 진지한 상황들이 어쩐지 어색해서 그렇게 얼버무리고 과장하고 웃음으로 무마해야만 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실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면서도요.
도리
그들의 대화에서는 '대'라는 형용사가 종종 등장했다. 지루한 세상에서 뭔가 기대를 걸 만한 대상을 바라기 때문이겠지.
『다자이 오사무×청춘』 p.89, <어릿광대의 꽃>,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문장모음 보기
도리
“ 그들은 잘 웃는다. 별것 아닌 일에도 큰 소리로 웃어 댄다. 청년들에게 웃는 표정을 짓는 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언제부터 그런 습관이 몸에 배기 시작했을까. 웃지 않으면 손해다. 웃어야 할 어떤 사소한 대상도 놓치지 마라. ”
『다자이 오사무×청춘』 p.92, <어릿광대의 꽃>,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문장모음 보기
도리
너무 너무 찔리는 말입니다. 호감을 사는 수법으로 매번 웃어 버릇해서 인위적으로 안 웃으려고 연습하기도 했어요.. 근데도 그냥 웃어요. 그나마 웃을 때 모습이 좀 낫긴 한 것 같아서 말이죠.. 흑흑.
도리
그런데 이 다음 문장 '아아, 이것이야말로 탐욕스러운 미식주의의 허망한 편린이 아닐까.' 이건 잘 모르겠어요. 웃는 거와 미식주의... 어떤 연관이죠?
도리
“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 자지러지게 웃어 대면서도 제 자세에 신경을 쓴다. 그들은 또한 자주 사람들을 웃긴다. 자기를 상처 입히면서까지 남을 웃기고 싶어 한다. 어찌 되었든 그건 허무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러나 그 한 꺼풀 아래에는 무언가 결의에 찬 마음가짐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희생정신. 다소 자포자기한 듯하며, 이렇다 할 목적도 없는 희생정신. ”
『다자이 오 사무×청춘』 p.92, <어릿광대의 꽃>,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문장모음 보기
도리
“ 살짝 스쳤을 뿐이지만 고스게는 여자가 자신에게 대단히 좋은 인상을 받도록 하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딱히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으나 그 스쳐 지나간 순간에 그는 목숨을 걸고 멋진 척을 한다. 인생에 대해 진심으로 뭔가 기대한다. 그 여자와의 모든 가능성을 순식간에 이리 저리 생각해고서는, 가슴 터질 듯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그런 숨막히는 순간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경험한다. 때문에 그들은 방심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도 자기 자세를 꾸미고 있는다. ”
쪽팔리지만(속된 말인 걸 알지만 이 말밖에 안 나오네요) 이런 마음을 종종 갖고 있습니다. 꼭 이성에 국한되진 않고요.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 날 때 뭔가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하는 거 같아요. 허허. 대상화 할 수 있는, 거리감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곤 합니다. 처음 만나면 나쁠 게 없으니 호감도 100점부터 시작해서 자주 볼수록 깎여가는 체계... 처음이니까 좋을 걸 알 수가 없으니 호감도 0점에서 시작한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한번도 그렇게 생각 못했는데 그 말도 타당하지 말입니다..
도리
“ 아! 작가란 모두 이런 존재인가. 고백하는 데도 말을 꾸민다. 나는 사람이 아닌 게 아닐까. 진정 인간다운 생활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쓰면서도 나는 내 문장에 신경을 쓰 고 있다. ”
『다자이 오사무×청춘』 p.100, <어릿광대의 꽃>,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문장모음 보기
도리
“ 고스게는 요조를 안쓰럽게 여겼다. 그건 완벽히 어른의 감정이다. 말할 것도 없지만, 가여운 건 여기 있는 이 요조가 아니라 요조와 같은 처지였을 때의 자신, 혹은 처지에 대한 일반적인 추상이다. 어른들은 그런 감정에 잘 훈련돼 있어서 쉽게 남을 동정한다. 그리고 눈물 많은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는다. 청년들도 이따금 그런 안이한 감정에 젖곤 한다. 어른들은 그런 훈련을, 좋게 말해 제 생활과의 타협을 통해 얻었다면, 청년들은 언제 어디서 익혔을까. 이런 시시한 소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