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의 인생 전체가 인정욕구에 휘감겨 있었던 거 같아요. 저도 인정욕구가 심한 사람이라 누구를 가엾게 볼 처지는 아니지만요. 그런데 인정욕구의 방향이 문단이라든가 고향 사람들이 아니라 시간, 혹은 후대 같은 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인정욕구 자체를 없애기는 힘들어도 방향을 돌리는 건 가능할 거 같은데요. 제 경우가 그렇습니다.
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2편
D-29

장맥주

연해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모임에서도 정아은 작가님이 인정욕구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책에도 담겨있었 고요. 근데 작가님 말씀처럼 그 방향이 시간, 혹은 후대 같은 쪽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네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다자이 오사무도 그런 면에서 안타까워요. 뭔가 계속 아등바등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기도 해서(감히 제가 뭐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요).
뜬금없지만 저는 그래서 (장)작가님의 글이 좋습니다. 인정욕구가 있지만 방향 돌리기에 성공(?)하셨기에 이토록 많은 독자층이 있는 게 아닐까요(팔을 안으로 굽는다아).

연해
<달려라 메로스>
갑작스러운 장르 변경에 어리둥절했던 단편입니다.
우선 처음에는 '아니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막무가내야' 싶었어요. 친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대뜸 인질로 잡아두게 하지를 않나, 여동생에게 오늘 당장 결혼하라고 하지를 않나.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메로스를 응원하게 되더라고요(일단 친구는 구해야 하니까요). 물론 현실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회사에서도 종종 이런 분들 있거든요. 일만 벌여 놓고 뒷처리는 하지 않는.
첫 직장에서 같은 팀 대리님이 저희에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니들이 싼 똥은 니들이 치워, 이 ㅁㅈㄹ 들아!"
(초성으로 대신합니다)
다시 줄거리로 돌아가보자면요. 그래도 소설이니까, 메로스 달려 달려!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속도감 있게 읽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혹시 모를 반전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하기도 했죠. 다행히 아름다운 결말이라 좋았습니다(새드엔딩 잘 못 보는 1인). 우애와 신의에 대한 교훈적인 동화 같기도 하고, 어릴 때 읽었던 탈무드도 생각났어요. 과연 이토록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이 가능한가 싶기도 했고요(근데 뺨 때리는 장면은 좀...).

연해
뜬금없는 이야기 하나 더해보자면요.
어릴 때 오빠랑 했던 놀이 중에 '의자놀이'라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의자놀이'는 아니고, 저희 둘끼리만 하던 놀이가 있었어요. 요즘으로 치자면 '신뢰게임'이라고 하나요? 대충 뭐 그런 건데요.
서로 번갈아가면서 의자에 앉고, 서 있는 사람이 의자를 뒤로 넘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올려요. 각도에 따라 스릴도 있는데, 서 있는 상대를 믿고 몸을 맡기는 거죠. 근데 그 놀이를 꽤 즐기던 저희도 몸이 점점 자라잖아요? 저는 키가 작은 편인데 오빠는 저랑 달리 키가 되게 크거든요.
그러다 하루는 오빠가 의자에 앉고 제가 의자를 잡는 날이었어요(그네를 밀어주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탄력을 받은 제가 각도를 더 눕힌다는 게 그만 의자를 놓치고만 거예요. 다행히도 오빠가 잽싸게 몸을 사려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서로 신의가 망가졌던 기억이 나네요.
내가 신의를 져버린 게 아니라 오빠가 무거운 거야...(라고 이렇게 또 다자이상 따라하기)
근데 저만 자꾸 메르스라고 읽히나요, 허허허.

장맥주
저는 메르스라고 읽히지는 않는데, 자꾸 메로나가 생각나기는 했어요. 읽는 저도 덥고 달리는 메로스도 덥고 둘이 같이 메로나나 하나씩 입에 물고 어디 시원한 언덕에 앉아 있으면 좋겠다... 싶었스니다.

연해
오, 메로나라니, 신선합니다!
제가 아이스크림을 끊은지(?)가 좀 오래 됐는데요. 이상하게 만취(적당히 취한 거 말고 꼭 만취)만하면 그렇게 메로나가 생각나요(다른 아이스크림 아니고, 유독 메로나). 20살 때부터 생긴 버릇인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는 찾지도 않는 걸 왜 그렇게 노래노래 불러대는지 참...(쯧)
메로스에서 시작해 메로나로 끝나는 이야기ㅋㅋㅋ 즐겁습니다. 그래도 8월로 접어들면서 저녁 더위는 한풀 꺾인 기분인데(주말에도 밤에 걷는데 선선하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요. 저 근데 작가님, "메로스도 덥고"를 흐린 눈으로 봤더니 "메로스 업고"로 봤습니다. '힘 좋으시다'생각하다가 다시 읽고 웃었습니다(선선하다더니 더위를 먹었나 봅니다).

장맥주
메로구이도 좀 먹고 싶네요. 냠냠...

장맥주
저는 뺨 때리는 장면 좋았습니다. 웃겨서요. ㅎㅎㅎ 특히 세리눈티우스는 이 자식 만나면 따귀 한 대 갈겨줘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차 아니었을까요? ㅎㅎㅎ

장맥주
「젠조를 그리며」는 결말에서 이 장미가 좋은 장미로 밝혀지겠지 하고 예상했고 과연 그대로의 결말이었습니다. 그 단순한 플롯에 이것저것 붙인 솜씨는 인정하겠지만, 사실 큰 감흥은 없었어요. 『인간 실격』과 단편 몇 편을 본 게 전부라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좀 미안하지만, 그냥 계속 같은 인물로 돌려막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들을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요.
「달려라 메로스」는 어릴 때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접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막상 글자로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어릴 때 봤던 애니메이션과 뭐가 다른가 했는데 너무 똑같군요. 다자이는 무슨 생각으로 이 단편을 썼을까, 진지한 마음으로 쓴 걸까 대충 쓴 걸까, 오래 살았더라면 그 놈의 동반자살과 자기혐오 이야기 줄이고 이런 작품을 더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 (크지는 않게) 생겼습니다.
이 작품이 일본의 국민소설이라면서요?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린 아이들은 이런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뜬금없이 해봤어요.

siouxsie
완전 극과 극을 달리는 '달려라 메로스'와 '인간실격' 두 작품으로 국민 작가가 된 느낌이네요.
"이런 교훈적인 작품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라고 외치고 줄행랑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