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무시하고 내가 몰래 경멸하는 여자애들조차 방과 후에 나를 찾는 날이 있다. 한 명, 많게는 두 명이 다툼 끝에 무리에서 탈락하는 때인 것이다. 그 치욕의 시간은 무리의 구성원 모두에게 한 번씩은 공평하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아무튼, 그네들은 상처 입은 마음을 힘겹게 이끌면서 종례가 끝나고 천천히 책가방을 챙기는 나더러 곧바로 집에 가느냐고 묻는다. 우리 손으로 직접 왁스를 먹인 마룻바닥 위로, 교실 창을 통과한 오후의 햇빛이 깊숙하게도 들어오는 시간. 그 빛이 수색대의 손전등처럼 그들의 얼굴까지 닿으면, 나는 그 눈동자에 그렁그렁 맺힌 자기 연민과 수치심을 낱낱이 볼 수 있다. 별일이 없다면 자기하고 집에 같이 가자고 말할 뿐이면서, 꼭 숨겨진 중립국으로 떠밀려 오고야 만 패잔병 같은 표정을 한다. 내게도 모욕적인 처사지만 나는 그냥 그러자고 대답한다. 분명히 그들에게 더 서러운 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내게는 떨어져 나올 무리가 없으니까. 거절하지 않는 게 내게도 더 편하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날 나를 세게 꼬집거나 내 책상 밑에 쓰레기를 넣어둘지도 모르는 일이다. ”
『소녀는 따로 자란다』 안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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