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장소' 얘기를 해볼까요. 소설 속 묵진이라는 도시는 몇 가지 실재하는 도시를 혼합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입니다. 항구도시 특유의 거친 모습과 혜수가 숨겨놓은 19년이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독자분들이 느끼는 묵진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이었나요?
현실에서 방문했던 인상적인 나라, 도시, 마을이 있나요? 혹은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왜일까요?
<한국 소설이 좋아서 2> 하승민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점선면

박성신
묵진은 포항이 떠오르긴 했어요. 육사골목같은 홍등가가 아직 포항에도 남아있거든요. 한편으로는 소멸도시 느낌도 들었고요. 혜수의 19년과 잘 어울렸습니다. 콘크리트에서도 그렇고 묵진도 그렇고 작가님은 가상의 도시를 인상적으로 묘사하시는데, 실재 공간 보다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주로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현실에서 방문했던 도시중에는 홍콩이 인상적이었던 거 같아요. 빈함과 부함이 동시에 이렇게 극대화로 공존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쪽은 공사중이고 그 밑에 노숙자들이 있고, 또 한쪽은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해외 스타들의 별장이 즐비한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이 방문했던 나라중 인상 깊었던 도시도 궁금합니다!

점선면
우와. 포항도 참고했던 곳 중 하나입니다. 가상의 도시를 설정하는 이유는, 그 도시들에 제가 필요로 하는 지역이 정확히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일전에 특정 인물을 설계하기 위해 여러 인물을 섞는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공간 설정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가령 진짜 포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도시 자체가 너무 넓고 인구도 많아서 지아가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벌어지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좀 더 사회파 성향이 강한 소설을 쓰게 된다면 진짜 도시를 배경으로 하게 될 겁니다.
홍콩 좋지요? 정치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어 요즘 계속 눈이 갑니다. 내년에 출간할 소설에 중국 얘기가 좀 나와요. 홍콩이나 베이징, 상하이 쪽은 아니구요. 그보다 조금 서쪽.
제가 좋아했던 도시는 이스탄불이요. 동서양 중간 지역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튀르키예에 있는 다른 도시들도 그랬구요. 요르단과 모로코 같은 사막 지역도 좋았습니다. 낙타 타는 건 좀 힘들고 화장실도 불편하고 잠자리도 좋진 않지만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서 별을 보고 있으면 잘 왔다 싶은 생각이 절로... 같은 사막이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우유니 사막도 환상적이었고요.
위에 말씀드린 내년에 출간할 소설에는 인도 얘기도 나오는데 인도도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고생 많이 했고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다 만나고 왔지만 여행이 아니면 언제 그런 경험을 하겠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이야기가 있는 도시를 좋아하나 봅니다.

점선면
독자 여러분들은 나왼너오를 어떤 경로로 알게 되셨을까요? 혹은 제가 쓴 다른 책은요.
그믐에서 출간한 [한국 소설이 좋아서2]가 '좋지만 알려지지 않은 소설'을 다루고 있는데, 이 알려지지 않은 책을 어떻게 접하게 되셨는지가 궁금하네요.

박성신
저같은 경우는 작가님의 콘크리트라는 작품을 먼저 읽고 나왼너오도 찾아보게 된 케이스입니다. 콘크리트는 황금가지라는 출판사를 통해서 알게되었고요. 좋지만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라니, 제가 느낀 바로는 유명하고 잘 알려진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제목에 대해 궁금함이 드는데요. 작품을 읽어보니 제목이 왜 나왼너오인지 어렴풋이 알거 같기도 한데, 콘크리트도 그렇고 제목을 지으실때 어떻게 지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을까요?

점선면
제목은 마지막에 짓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표지 디자인 작업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생각할 수 있어서요. 그야말로 이야기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거라 고민해서 정하는데, 제목 생각하고 있으면 좀 재밌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소설 쓰는 것보다는 쉬워서...
콘크리트는 배경이 된 마을,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한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제목을 참 좋아하는데 주위에서 아스팔트로 착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소설 거의 마무리 할 즈음에 생각난 문장이었습니다. 거울 보는 장면에서요. 내가 왼손을 내밀면 거울은 오른손을 돌려주겠구나, 그것이 지아와 혜수의 관계겠구나. 그래서 소설 전반의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는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초기에 지아는 오른손잡이고 혜수는 왼손잡이라는 설정도 있었는데 그건 불필요한 것 같고 클리셰 같기도 해서 삭제했습니다. 이 제목도 좋아하는데 어떤 분들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더라구요.
최근에 안전가옥이라는 출판사에서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경장편도 출간했는데요, 코인 이야기입니다. 코인 가격에 따라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 이야기인데... 숫자를 신처럼 모시는 주인공에게는 신앙도 결국 비용이고 가격이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지어보았습니다.
보통 출판사에서 제목 가지고 토론도 많이 하고 제안도 준다고 들었는데 저는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네요. 출판사에서도 마음에 들어서 그냥 놔둔 거라 생각하고 혼자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점선면
뒤숭숭하고 우울한 날입니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시간이 한동안 이어질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저도 그 좁은 내리막길을 걸었던 적이 있을 겁니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을 걷게 될 겁니다. 흉터 같은 것이 깊숙하게 남은 채로요.
명복을 빕니다. 위로를 전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박성신
저도 하루종일 멍- 했습니다. 눈을 감아도 사고 장면이 어른거리기도 했어요. 저도 종종 그길에 갔던 적이 있기때문에 공포감이 몇배로 다가온거 같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일지.. 저또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점선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