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세계의 무한한 크기를 고찰하는 데 정신을 잃어버리고, 지나간 수천 년과 다가올 수천 년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면, 또한 밤하늘이 광활한 세계를 눈앞에 실제로 보여줘서 세계를 도저히 측량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자신이 무로 축소되는 느낌을 받고 개체이자 생명을 지닌 신체로서, 무상한 의지 현상으로서, 대양의 물 한 방울처럼 서서히 없어져 무로 소멸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이 무에 불과하다는 환영과 거짓된 불가능성에 맞서, 이 모든 세계는 순수한 인식 작용의 영원한 주관이 변화한 것으로서 우리의 표상 속에서만 현존한다는 직접적인 의식이 생긴다. 우리는 개체성을 잊어버리자마자 자신을 그 영원한 인식 주관으로서 발견하는데, 그 인식 주관이 모든 세계와 시대를 조건 짓는 필연적인 담당자다.
우리를 지레 겁먹게 하는 세계의 크기는 이제 우리 속에 편히 쉬고, 우리가 세계의 크기에 의존하는 대신 세계의 크기가 우리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즉각 인식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오로지 철학만이 이 의미를 분명하게 한다) 우리가 세계와 하나이므로 측량할 수 없는 세계의 크기에 억압되지 않고 오히려 드높여진다. ”
『쇼펜하우어의 고독한 행복』 62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 엮음, 홍성광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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