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1> 혼자 읽어볼게요.

D-29
만약 그녀가 나이지리아로 돌아오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면 더 이상 흑인 미국인과 사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돌아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사실 그녀는 남자가 쉽게 삶의 터전을 버리도록 만들 법한 유의 여자였다. 확실한 것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일종의 확신을 갖게 만드는 유의 여자.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60-6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멋지다. 찌질하고 우울한 다자이 오사무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책 읽다가 이렇게 시원시원 매력적인 흑인 여성 캐릭터를 만나니 낯설고..
그들이 결혼한 이후 줄곧 그녀는 미혼 여성을 향한 무절제한 반감과 하느님을 향한 무절제한 사랑을 키워 왔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65,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하지만 이페멜루는 이비나보 자매가 소녀들에게 뿌리 깊은 적대감을 품고 있음을 처음부터 직감했다. 이비나보 자매는 소녀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신선한 그들의 무언가가 자신에게서는 오래전에 말라 버렸다는 사실에 화가 난 듯 그들을 감시하고 경고할 뿐이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90,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그는 그녀에게 자기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도 캠퍼스 사택에서 가까운 가로수 길에서 아버지가 세발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던 게 똑똑히 기억나지만 때때로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을 때면 자신이 배신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얼른 집으로 뛰어가 거실 벽에 걸린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0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그녀는 말썽꾼, 별종이라는 자신의 이미지가 늘 좋았다. 때로는 그것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단단한 껍데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07,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이러긴 쉽지 않지만, 나도 별종력(?)을 점점 좋아해봐야지 싶다. 지금은 나 말고 타인의 별종력을 발견하며 북돋아 주고, 재밌어 하는 중. 내 별종력도 나한테 인정받아야 할 텐데.
침묵이 흘렀다. 남자애들 몇 명이 모여 있는 별채 현관에서 피어오른 담배 연기가 멀리 퍼져 나갔다. 파티 소음이 공중을 떠돌았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 악쓰는 목소리, 내일보다 오늘 더 느슨하고 자유로운 남녀의 높은 웃음소리. "우리 키스 안 해?" 그녀가 물었다. 그는 놀란 듯 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냥 물어보는 거야. 여기 오래 앉아 있었잖아." "내가 그런 것만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뭘 원하는데?" "내가 뭘 원하는 것 같아?"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09-110,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귀엽다. 청춘이네.
한번은 방과 후에 만나서 축구 하는 얘기를 하다가 그의 친구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이페멜루가 허락한 거야?" 그러자 오빈제가 넙죽 대답했다. "응, 그런데 한 시간만 놀다 오래." 그녀는 그가 원색 셔츠를 입듯 자신들의 관계를 대담하게 드러내고 다니는 게 좋았다. 때로는 자신이 너무 행복한 게 아닌가 걱정도 됐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우울에 잠겨 오빈제에게 트집을 잡거나 거리를 뒀다. 그러면 그녀의 기쁨은 안절부절못하며 밖으로 도망칠 구멍을 찾듯 그녀 안에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12,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이페멜루, 걔는 처음부터 너만 쳐다봤어." 기니카는 이렇게 말하곤 자기가 괜찮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이페멜루가 힘 하나 안 들이고 자기 남자를 훔쳐 갔다며 농담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쾌활함은 억지이자 두꺼운 가면 같은 것이었으므로 이페멜루는 죄책감과 과잉 보상 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단짝이자 지금껏 자신과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예쁘고 성격 좋고 인기 많은 기니카가 신경 쓰지 않는 척할 수밖에 없게 된 건 옳지 않았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1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그녀는 자신보다 기니카가 더 잘 맞는 짝임을 오빈제가 깨닫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이 기쁨, 그녀와 오빈제 사이에 존재하는 이 연약하고 희미한 감정은 사라질 것이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19,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오빈제의 어머니는 직설적이면서도 상냥했고 심지어 다정하기까지 했지만 오빈제와 똑같은 일종의 거리감, 세상 앞에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길 꺼리는 성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군중 한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편안하게 자신만의 세계 안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친 것이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22,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그들이 식탁에 앉아 가리와 수프를 먹는 동안 이페멜루는 우주 고모가 말한 대로 "평소처럼" 있으려고 무진 애썼지만 '평소에' 자신이 어땠는지 더 이상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 오빈제와 그의 어머니와 함께 분위기에 녹아들 수 없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24,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문장 메모 남기면서 난 맨날 이런 거(외로움, 부러움, 부끄러움, 소심함)에만 반응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아나 완독파티 때 다자이 오사무한테 질린 게 꼭 나한테 질린 거 같은 거였냐고. 나도 더 멀리 보고 싶고, 더 논리적인 게 궁금했으면 좋겠다. 근데 그냥 서운하고 슬프고 외로운 거에 반응한다. 수학 문제를 풀어야겠어.
네가 너 자신을 조금 더 소유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27,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읽을 때는 멋지다고 생각하고 인덱스를 붙여뒀는데 북클럽 모임을 하고 나니 조금 덜 멋지게 보인다. 오빈제의 어머니가 너무 환상 속의 어머니라 의도적 멋부림으로 느껴졌다. ㅅㅌㄹ님이 나눠주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욕망과 목표는 살아가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매번 달라지지 암암. 좋은 엄마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셨다며. 내 미래는 어떨까 모르겠다.
그는 그녀의 특별함이 마치 자신의 훌륭한 취향을 반영한다는 듯이 뿌듯해하는 어조로 말하곤 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38,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그녀는 우주 고모의 핀잔에 상처를 받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둘 사이의 친밀감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우주 고모의 조급함, 전에 없던 성마름은 이페멜루가 이미 알고 있어야 마땅한데 몇몇 모자란 점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8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이페멜루의 상처도 알겠지만 우주 고모의 성마름도 알겠다. 이페멜루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느껴진다. 그 자신감과 솔직함이 세상을 쉽게 보는 것 같다고도. 사실 그냥 내가 그렇다고 느낀다. 요즘 어느 캐릭터에 마음을 줄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냥 가장 불쌍하고 억울한 캐릭터에 쉽게 나를 동화 시켰는데, 이젠 그게 아닌 것 같다. 어른이고 나이를 먹어가니 책임져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런데 그 위치가 자꾸 어색해서 큰일이다. 나의 불행만 보며 그 속에 갇혀 살지 않도록 정신을 잘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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