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기> 클레어 키건 - 푸른 들판을 걷다

D-29
여기 자기만의 깨끗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믿고 그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푸른 들판을 걷다 P.63,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삼림 관리인의 딸>과 함께 이야기해볼게요! 수록된 단편 중 가장 긴 작품같았는데요. 정말 정교하게 잘 짜여진 아침드라마 한편 본 느낌은 저만 그런걸까요ㅋㅋ 시작은 다르지만 사랑없이 결혼한 한국의 '중매 결혼'도 생각나던 단편이었어요.
빠듯한 시기가 아직 안 끝났어. 당신이 날이면 날마다 여기 가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 집에 한 푼도 보탠 거 없잖아. 일하는 남자 저녁으로 말라비틀어진 감자는 부족하다고.
푸른 들판을 걷다 p.89,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과거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할 때 한국에서도 체감할 수 있었던 분위기 같았습니다. 남자가 돈으로 가정을 휘어잡는 그런 분위기요.
디건은 이제 중년이다. 이쯤 되면 어떤 사람은 인생의 많은 부분이 끝났다고,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살아야 하는 내리막 길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다르다. 디건에게 은퇴는 그가 감수한 모든 위험에 대한 보상이다.
푸른 들판을 걷다 p.93,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순진하면서도 직감이 뛰어난 꾀 많은 딸이 노란 원피스를 입고 서서 디건에게 생일 선물을 주어 고맙다고 말한다.
푸른 들판을 걷다 p.95,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문장이 암시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설마 했던 반전이었어요!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슬퍼한다. 왜 말을 멈추고 서로 안아주지 않을까?
푸른 들판을 걷다 p.104,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아는 악마가 낫다
푸른 들판을 걷다 p. 115,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아일랜드 속담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나 와닿았던 문장이었습니다. 모르는 낫선 사람보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아는 악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는 많이 봐왔잖아요. 모르는 무언가보다는, 나쁜 것이라도 익숙한 게 낫다는 건 우리도 이미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지 않나요?ㅎㅎ
지금의 은퇴는 인생 제 2막의 시작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건 좋게 이야기해서 그런거고, 대부분 빠듯하게 사시는 분들에겐 은퇴 후에도 일을 하고 먹는 것을 걱정해야하는 노동 2막의 시작이지요... 그렇게 보면 디건이 은행 대출을 다 갚고나서 여유가 생긴다는 건 나름 부러운 부분이었네요.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알았다. 이 땅이 아내와 자식들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푸른 들판을 걷다 P. 93,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긴 설명 없이도 캐릭터를 알 수 있게 하는 문장들이 보이는 단편이네요! 여기서 또 키건의 필력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돈, 돈 거린다던 가족의 말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어요
드디어 하루키가 추천했다는 <물가 가까이>를 읽었습니다. 키건이 만든 세상 속 부모들은 왜 하나같이 어딘가가 부족한 걸까요. 이 작품 속에서, 자식이 잘 되길 바라고 자식이 자산을 물려받길 바라는 이기적이면서도 편협한 시선을 가진 엄마와 친아들이 아니라 그런지 계속해서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리는 아버지 사이에서 아들의 심리가 정말 복잡할 거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바다를 보며 약간의 자살 충동을 느꼈던 것까지도 이해가 될 정도였어요. 그러니 부모의 품이 아니라 다시 혼자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너무 깔끔한 전개와 묘사였어요! 키건은 정말 인간의 심리를 풍부한 표현으로 전달하네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그리고 그 불편을 어떻게 숨기고 있는지를 탁월한 문장으로 표현하더군요
이 꿈이서 깬 디건은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서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잠이 덜 깬 마사는 "내가 당신을 왜 떠나겠어?"라고 말하고 돌아눕는다.
푸른 들판을 걷다 P.112,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짧은 문장에 담긴 두 사람의 각자 다른 마음. 이렇게 다른 사람이 결혼으로 묶여서 한 땅에 자리를 잡았다는 게, 결혼이 한때는 두 사람의 가장 옳은 선택이었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이 말이 약간 반어법 같지 않았어요? "하... 떠나고 싶은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 어쩌겠어. 그냥 같이 살아야지"하는 한탄 섞인 느낌이더라구요. 마지못해 산다? 같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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