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관해 생각하다가 니니에게 미안해졌다. 그 생각에 딱 15분 동안 빠져 있었다. 읽을 만한 새 책을 찾아야겠다.
『자유 - 가장 고립된 나라에서 내가 배운 것』 365페이지, 레아 이피 지음, 오숙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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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먼지밍
“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하는 데 그 학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다.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에게는 의심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의심이 내 결정에는 도움이 되었다. ”
『자유 - 가장 고립된 나라에서 내가 배운 것』 379-380페이지, 레아 이피 지음, 오숙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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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anngg
두 세계 모두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두 세계의 실패는 독특한 형태를 띠었다.
『자유 - 가장 고립된 나라에서 내가 배운 것』 P391, 레아 이피 지음, 오숙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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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anngg
2) '자유'는 살아가면서 정말 많이 꼽씹게 되는 단어입니다. '제멋대로와 자유는 다르다.' 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다그치기도 하고요. 이 때의 자유란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겠죠.. 시장의 자유, 개인의 자유라는 관형적인 표현에 우리는 익숙하죠.. 이 안에 있는 이야기들도 엄청난 것 같습니다. 어떤이는 시장의 자유는 극도로 제한해야 하지만,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열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저에게 있어, 자유란 '폭력'과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크리슈나므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아 읽게 되면서, 제가 지니고 있는 관념(폭력)의 덩어리가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어떤 동그라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동그라미는 커져가는 동그라미여서 많은 사람들을 그 안에 배치 시켜 이해해 버리는 성질의 동그라미였어요. 그 동그라미는 이해하고 공감한다 말하면서 집어 삼키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 수록, 그들을 어떤 논리에 가둬 버린다고 해야 할까요. 그걸 조금만 벗어나면 또 동그라미를 키워서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 또 따른 논리에 가둬 버리는 행위였습니다. 그 과정이 화, 화해, 화의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 같아요. 크리슈나므르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관념에서 또 다른 관념으로 이동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에게 있어 '자유'란 내가 관념(이데올로기)적임을 아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선택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은 하나의 폭력(기만)에 불과 할 수도 있다는 것. 논리는 논리 그 너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이런 자세를 놓쳐 버리고, 어느 순간 폭력으로 넘어 가 버리는 제 자신을 자주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진짜 사람의 피와 살이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레아 이피처럼, 투쟁을 계속 하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