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의 키워드는 “경합성 (contestability)”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전공 용어에서 가져온 것 같은데, 저는 그냥 단어 본래 의미대로 이해했습니다.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받았던 어떤 느낌을 단 한 단어로 정리해주네요. 경합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혁신이나 기술 도약의 여지가 많은 거겠죠.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렇다면 산업 혁명이 일어났던 영국 사회는 경합성이 높았을까?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유연하고 관용적이면서 경합성이 높았다면 그 많은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했을까 싶거든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
D-29

소피아

소피아
<중국 필패>는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의문과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아주 도전적인 책인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동의할 수도 없는) 과거 시험을 너무 전면에 내세우는 바람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이 묻히게 되어서 안타깝기도 하구요.
7장을 읽으면서 저의 반응은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응? —> 뭐라고???? —> 그, 그럴수도..—> (저자의 말빨에 휘말리며) 끄덕끄덕 —> 중간에 질문 백만개 나왔지만 모두 휘발되어버림 —> (8장 넘어가며) 찜찜한데..
위에서 말씀하셨듯이 저도 발명의 질적 중요도에서 의문이 생겼구요, 7장 초반에 나온 과학기술 인력의 정부 고용 부분이 높았던 시기에 대한 설명과 중반에 나온 CDI에 대한 설명이 상호 모순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CDI 지수 자체도 좀 아리송했지만 이건 역사 데이터 부재 속에서 어쩔 수 없다고 넘기고..
게다가, 야성 황은 줄곧 호기심을 이야기하는데 (“중국인의 호기심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는 결정적인 발명이나 기술, 혁신을 만드는 것은 호기심이 아니라, “필요”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스나 페르시아, 또는 아랍 역시 호기심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럽지 않을까요? 이들 역시 산업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구요.
또, 정화 원정 예를 들면서 대항해 시대로 나아가지 못함 (혹은 기술적 도약을 하지못함)을 이야기하는데, 유럽에서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이 대항해 시대에 앞장서서 나섰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은 영국이었습니다. 야성 황이 중국 vs 유럽 대륙 전체의 구도로 비교하면서 세부 사항들이 누락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야성 황이 수나라의 과거시험을 기술적 퇴보를 이끈 주범으로 주구장창 공격하는데 반해, 수나라의 대운하가 중국 역사에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미친 영향은 과소 평가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혁개방시대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를 가능하게 하고 현 중국의 1선 도시 대부분이 동남쪽에 포진하게 만든 것은 수나라때 완성한 대운하 덕분 아닐까 싶은데요..

YG
@소피아 아주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하셨는데요. 바로 그 필요에 천착해서 대분기의 주체가 동양-중국이 아니라 서양-영국이었다고 주장한 학자가 로버트 C. 앨런입니다. 앨런은 산업 혁명기 정확히 말하면 19세기 초의 인건비 차이가 산업화의 필요를 갈랐다고 주장합니다.
벽돌 책 함께 읽기 책들 중에서는 『권력과 진보』(2023년 9월)에서 앨런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나온 적이 있고, 『화석 자본』(2024년 6월)에서는 일단 그의 주장을 수긍하고 나서 좀 더 깊이 살펴보자고 언급된 적이 있어요. 앨런의 주장은 아래 책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세계경제사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7권. 지난 500년간 세계 각국의 임금과 생활수준, 주요 산물의 가격 등을 비교하면서 역사의 분기점은 어디에 있는지, 부국의 기회를 잡은 국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무엇이 현재의 불평등의 기원이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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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흥미로운 문제인건가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요? <권력과 진보>에 나온 반론은 뭔가요? 제가 그 책 완독 못했는데 어디쯤 봐야 나오나요?
7장 그림 7.2 - 너무 흥미로운 그래프였는데, 내가 그래프 보며 생각했던 거랑 야성 황의 해석이랑 달라서 놀랐어요. 다른 분야 전문가가 (예를 들면 역사학) 보았을때 해석은 또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야성 황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 (과거제-관료제 악영향)에 몰두해서 사각지대가 생긴 건 혹시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스타일리스트의 함정이랄까..

오도니안
저도 필요가 호기심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만, 순수과학이나 발견의 분야에서는 호기심도 중요한 역할을 할텐데, 순수한 호기심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고 호기심을 공유하는 집단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공통의 질문에 대해 더 나은 답변을 내는 사람이 사회적 평판을 얻는다든지 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연구결과가 누적되면서 발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과학사와 기술사를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네요.
경합성이 중요하다고 한 건 '총균쇠'에서도 언급이 되죠. 경합성이 중요한 건 정부들이 경쟁하면서 유용한 지식의 획득과 적용을 촉진한다는 측면과 정부의 탄압이 있는 경우 외국으로 떠나는 등의 대안이 있기 때문에 탄압에 대한 저항이 가능해진다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청교도들의 이주나 스페인의 종교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한 유태인들, 루이14세의 박해를 피해 떠난 위그노 교도들이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은 본국에 해가 되고 이민을 받아들인 국가들에게는 득이 되었죠. 이런 요인들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관용도가 높아지게 되는 동력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상대적인 것이고 시기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겠죠. 청나라에선 죄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능지처참을 행하고 연좌제로 일족을 몰살하는 문화였다면, 영국은 이교도와 반란자들을 화형에 처하긴 했어도 근대 이후엔 교수형이 일반화되고 연좌제 관행은 별로 없었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G
@소피아 저는 앞에서 언급해주셨던 『마오주의』(유월서가)를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처음에는 사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훑어봐야겠다, 생각했던 책인데. 다시 살펴 보니 요즘의 맥락에서도 의미가 있는 책이더군요. 읽다 보니 야성 황의 책과 통하는 면도 있고요.

마오주의 - 전 세계를 휩쓴 역사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의 극적인 세계 데뷔였던 『중국의 붉은 별』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며 이야기를 시작해,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인도, 네팔, 서유럽, 미국, 탄자니아, 페루 등 거의 모든 대륙에 진한 붉은 흔적을 남긴 역사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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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마오주의』는 내년(2025년)쯤에 벽돌 책 함께 읽기에서 같이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너무 재미 있어서 주말에 무심코 손에 들었다가 절반이나 읽었습니다. 미국, 유럽 등의 신좌파와 문화 혁명에 마오주의가 미친 영향 부분을 읽고 있어요.

CTL
저는 줄리아 로벨의 '아편전쟁'을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2012년에 나왔네요.
https://www.amazon.com/Opium-Drugs-Dreams-Making-China/dp/0330457489
마오주의는 2019년에 나왔군요.
2025년에 '함께읽기' 예약 1번 찜합니다~

borumis
줄리아 로벨의 마오주의 Maoism 영문판 전자책이 4.99불로 할인 중이네요. 득템했습니다.

CTL
@borumis
전에도 1.99불 할인 알려주셔서 득템했는데, 이번에도 감사합니다~
책도 구했고, 이제 정말 '마오주의 함께읽기' 방 열리기만 기다리면 되겠군요.

소피아
앗, 저 1/3정도 읽었어요. 첫 장에 나오는 에드가 스노부터 진짜 재밌죠? 줄리아 로벨이 내 팔 붙잡고 끌고 들어가는 느낌 ㅎㅎ 전자책으로 시작해서 벽돌책인 줄도 몰랐네요. 어쩐지..
그나저나 여기 계신 분들, 책 언급만 했는데 냅다 구입부터 하시고 너무 내 모습 보는 거 같아서 눙물이 철철 나네요 ㅠㅠ 다들 구입하신 책
읽고 계시는 겁니까? (팩폭)
중국 읽는 김에 연이은 벽돌책으로 달려도 되지 않을까요? 책들 구매하셨으니? (아무말)

borumis
언젠가는 읽겠죠 허허허
안그래도 벽돌책 모임 통해 예전보다 벽돌책을 많이 읽게도 되었지만.. 벽돌책을 대책없이 많이 사기도 했다는 (쿨럭)건 안 비밀;; 그래도 다행히 전자책입니다. 안그랬으면 우리집 그분이 불만 가득;;; 근데 벽돌책들을 많이 읽다보니 요즘엔 오히려 단편집처럼 흐름이 툭툭 끊기는 짧은 책들이 더 읽기 힘들어진 기분이 드네요. 벽돌책은 뭔가 한 가지 주제로 계속 달려서 그런지 집중이 더 잘 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자, 주말에 4부까지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이번 주에 5부 'EAST 모델의 미래'를 읽고서 이번 벽돌 책 함께 읽기도 마무리하는 일정입니다.
오늘 10월 28일 월요일과 내일 29일 화요일에는 9장 '시진핑의 공산당'을 읽습니다. 9장은 2012년부터 집권한 시진핑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따져 묻는 장입니다. 이번 책의 짝수 장이 중국 현대사를 다뤘으니 그 연장 선상에서 읽으시면 됩니다. 저자의 비관적인 전망은 예상이 되는 바이지만, 요즘의 중국을 바라보는 통찰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CTL
9장 처음에 시작하는 '제사(epigraph)'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중국 인터넷 사용자들도 한국사람들 만큼이나 재치가 넘치는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각 장을 시작하는 제목 밑에 본문만큼이나 재치있고 의미있는 '제사'를 곱씹어 읽는게 너무 재밌고, 이 제사들을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고 쓰는 작가들 너무 좋아요.
그런데, epigraph의 적당한 한글번역이 '제사'밖에 없는지.... 새로운 단어가 꼭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borumis
앗 전 epigraph를 제사라고 하는 걸 처음 배웠어요. 제명, 명구라고 하는 건 봤는데 제사라고도 하네요.

YG
@소피아 @오도니안 @CTL 사실, 저도 그렇고 여러분이 이 책의 '과거제' 환원론에 가지는 반감이 이해가 안 가는 바가 아니에요. 요즘 인문 사회과학 감수성에서는 복잡한 세상사를 특정한 원인 하나로 귀결해서 바라보는 시각(제가 이걸 단순하게 '환원론'이라고 표현했습니다)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도 과거제를 그냥 중요한 요인 정도 가운데 하나로 힘을 덜 주면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풀어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읽는 내내 했었답니다. 그런데, 또 야성 황 같은 학자는 기존에 나왔던 여러 논의에 한 숟가락 자기 연구를 얹으려면 이렇게 새로운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인과 설명을 하고 싶은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듯하고요.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이런 인과 설명에 대한 욕망에 찌든 인문 사회과학계의 경향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게 있어서 함께 소개합니다. 저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 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UCL 국제정치학과 교수이자 주목받는 사회과학자인 브라이언 클라스는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가정에 도전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 책은 역사와 현실 세계를 종횡하며 무작위적 우연 현상과 그것이 가져오는 거대한 변화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책장 바로가기
밥심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저자의 입장이 그렇겠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읽고 있습니다.

오도니안
이 책 딱 적성일 듯 하네요.

CTL
속도가 붙은 김에 읽다보니 9장까지 읽었는데요,
아... '과거'가 과거가 되버렸어요. 9장에는 언급조차도 안 될 정도로 사라졌다는...
10장에서 물론 다시 불러내어서 매듭을 지을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역시 1부에서 '과거제'와 현재의 중국사회와의 연관성을 과연 어느 정도 짜임새 있게 탄탄히 엮어나갈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살짝 꺾였던 고개가 아직 안 돌아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보면서 대입학력고사, 사법고시, 공무원 시험 등등의 각종 시험, 아직도 각종취업의 벽인 우후죽순의 자격증시험, 학력제한, 의대광풍 등등 획일화되고 경직된 사고의 깊은 곳에는 '과거제'에서 비롯된 시험만능주의가 있지않을까 하고 품어왔던 의심을 간접적으로 이 책을 통해 중국에 비추어 이론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노력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borumis
실은 제가 과거제 시험문제 출제 경향도 잘 모르고 유교나 성리학에 대해 전혀 몰라서 이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감이 잘 안 오는 것도 있어요. 근데 이게 만약 유교가 아니라 기독교 같은 다른 내용이었어도 이랬을까?하는 궁금증이 들긴 하네요. 예전에 엄마의 끊임없는 전도 노력의 알부로 성경학교도 개신교 미션스쿨에도 다녔고;; 기독교도 어느 정도 권위에 대한 절대 복종을 요구하기도 하고.. 예전 중세시대의 academia에서도 그렇게 열려있는 생각을 장려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리고 소피아님 말대로 호기심의 원천으로 필요가 저도 어느 정도 작용할 것 같은데.. 실은 이거 읽으면서 곁다리로 keju, confucianism, Needham question 등의 중국사회의 여러 영향에 대한 논문을 찾아봤는데.. 어떤 논문은 Needham이 당시 유교를 너무 단순화하거나 비관적인 관점에 치우쳐져 봤다는 평도 있고 또 어떤 논문은 과거가 예전에는 혁신 등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현대 중국 사회에서는 인적 자원 개발, 혁신적/생산적 문화 형성, 시장 지항적 기관 장려 등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과거의 유산이기도 했다는 분석을 하기도 하더라구요.
저는 실은 과거 유산의 일부로서 사회 전체적으로 그리고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과거제의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점이 남아 있지만, 결국 그것을 시진핑의 현 중국공산당의 정책 방향과 연결점을 찾아 좀더 자율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작가의 노력은 이해가 가긴 해요. 다만, 작가가 아직은 주로 과거의 통계자료 분석에 집중하고 현재 중국에서 대입 시험 등 다른 시험의 여파에 대한 분석 자료가 과거 분석에 비해 좀 부족한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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