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기] 데미안, 이 좋은 책을 왜 이제 읽었던가

D-29
지금 그가 완전히 자신 속으로 들어가 버렸음을 나는 전율하며 느꼈다. 나는 한 번도 저토록 고독해진 적이 없었다. 나는 그와 아무 관계도 없었다. 나에게 그는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먼 섬에 있는 것보다 더 멀리 있었다.
데미안 p89,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데미안이 수업 중 온전히 자신 안으로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고 싱클레어는 고독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모습에 경외감을 느낀 동시에 자신이 그간 보아온 데미안의 모습은 반쪽자리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하며 평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가 보고싶은 모습만을 찾아내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완전히 자신 속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반대성향이었다면, 이 당시의 데미안이 자신 안으로 깊게 들어간 만큼 싱클레어는 자기 속으로 전혀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했던 게 아닐까요. 데미안이 끝까지 가서도 말하고자 했던 건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것이었는데, 이 당시 뿐 아니라 지금의 10대들에게도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그는 선, 고귀함, 아버지다움, 아름답고 드높은 것, 감상적인 것이지. 옳아!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뤄지는 거야. 세계의 이 다른 부분이 통째로, 이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는 거야. … (중략) …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이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 예배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아. …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일들이 일어날 때 그 앞에서는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신을 위해서 말이야.”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우리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 그가 서먹할 만큼 진지하게 말했다. “똑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전혀 가치 없어, 아무 가치도 없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여기서 들여다 봐야할 자기자신은 데미안이었을까요? 싱클레어의 말보다 그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봅니다.
서서히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이처럼 몹시 내적인 영상과 외부로부터 내게 주어진 암시 사이에서 찾아가야 할 신에 대한 하나의 관련성이 생겨났다.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날 이야기 p.131,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사랑은 내가 처음에 두려워하며 느꼈던 것처럼 더 이상 야수적인 어두운 본능도 아니었고, 또한 내가 베아트리체의 모습 속에서 구현했던 것처럼 경건하게 정신화된 숭배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두 가지 다 였다.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날 이야기 p.131,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작품 내에서 베아트리체와 실질적 대화나 만남이 없었음에도 싱클레어는 그녀를 통해 내면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어떤 정신적 지주는 그것의 존재만으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겨진 부분이었어요.
나는 오직 나 자신 속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인생을 살아가려고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던가?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날 이야기 p.133,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왜 그토록 어려웠냐고 묻지만, 실제로도 정말 어려운 일 아닌가요ㅎㅎ 특히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선명한 한국에서는 오롯이 '나'만을 위해 인생을 사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불을 응시하는 일은 이상하게도 기분 좋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날 이야기 p.145,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불멍, 물멍과 같은 생각을 비우는 일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나 봅니다.
맞아요. 캠핑가서 장작에 불 붙이고 불멍하면 머리 속은 비워지고 에너지는 채워지더라구요.
우리는 서로 개별적으로 구분하고 각자의 개성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만을 개성으로 간주하려고 하지. 그러나 우리는 누구든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 우리의 육체가 어류까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는 진화의 계보를 안에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 속에도 인간의 영혼 속에서 살았던 모든 것들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네.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날 이야기 p. 147,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이 부분에서, 모든 의지가 연결되어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사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데미안을 읽어서 그런지 철학적인 내용에서 겹치는 부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욕망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꿋꿋하게 살기 위해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만년의 저서 『여록과 보유』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구도 철학”과 “처세 철학”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살펴본다.
쇼펜하우어 이제 시작했는데 '데미안적 관점'으로 따라가 볼게요~
저는 자꾸 쇼펜하우어가 어른거리더라구요. 병행하는 책을 잘못 선정한 것 같았어요ㅋㅋㅋ
EBS에서 출간한 오늘을 읽는 클래식 중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는 중입니다. p41에 헤르만헤세도 쇼펜하우어를 통해 동양철학을 접하고 이러한 사상을 데미안과 싯다르타에 담았다고 한다.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EBS에서 또 이런 좋은 책이 나왔군요. 헤세의 글에 자꾸 쇼펜하우어가 아른거리긴 했습니다만, 너무 정답으로 끌고 가려는 이야기의 힘이 제게는 좀 불편하게 다가왔어요. 카뮈처럼 부조리한 것은 부조리한대로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바른 길로 이끄는 느낌이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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