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고영범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작가님 책을 이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서교동에서 죽다>란 책 제목은 좀 스릴러물 같은데 앞표지의 자전거 타는 모습이나 첫 내용은 성장소설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우선 이책이 끌린 이유는 '서교동'이란 동네명 때문입니다 직장이 이 근처라 항상 다니지만 고향이 아니고 직장이라 그냥 아는 정도라 좀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배경이 1974년쯤인데 낯선 단어도 별로 없고 편하게 읽기 좋습니다 앞부분 주인공의 자전거 여행 묘사는 아기물고기가 혼자 여행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니모를 찾아서처럼) 아직 초반이지만 처음부터 재미있었습니다 자전거를 얻게 된 과정이 엄마가 고의적으로 고장냈다고 여겨 억울한 장면, 막내의 얍삽한 모습 묘사(혹시 동생분 묘사는 아니지요??^^;;), 그리고 부유한 집인가봐요?? 친구들이 다 잘사네요 전가복, 해삼탕,호텔 수영장등(전태일열사와 동시대지 않나요??) 트럭 기사들이 자전거타는 국민학생을 일부러 죽이고 싶어한다는 내용도 흥미로웠습니다 (하긴 이 때는 아동권이 거의 없었을거 같습니다) 26인치 바퀴의 신품 사이클이니 당연히 도로에서 타야한다는 내용도 참 안전만 주장하는 어른들과 반대되어 재미있었습니다 식모 구희누나 음~ 음악을 좋아하는 도도한 구희누나의 묘사가 좋았습니다(실제 모델이 있는건가요??) 그리고 작가님 소개글에 현재 미국에 살면서 집안의 실향민 전통을 이어간다고 하셨는데 어떤 일들이신지도 궁금합니다~^^
엇, 제가 너무 늦게 봤군요. 그럼 이번 주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차를 두고 나누기로 하고, 다음 주 화요일 저녁 9시에 뵙는 걸로 하겠습니다.
진영이의 다른 동네 '알라'의 묘사도 재미있었어요 그 지역 친척들이 계셔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마귀할멈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이 당시에는 왜 이런 분들이 많이 계셨을까 의문이 드네요 저도 학교다닐 때 특히 초등학교 때 아이들에게 부모님 소득별로 차등대우하던 선생님이 떠오르더라구요 참 착한 친구였는데 가난해서 혼났던 친구도 떠올랐어요 그래도 요즘은 공립학교 선생님들이 참 좋으세요 사명감갖고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시더라구요~
진영의 채변봉투 제출 사건도 생생했어요~ 책을 읽는동안 저도 스릴러보는 줄 알았네요^^;; 영상으로도 1974년 진영을 재현하고 감동을 줄수 있는데 확실히 글으로 표현하면 세세하게 더 묘사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네요~ 단지 사람들이 영상보다 책에 더 진입장벽이 높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서는 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보통은 누군가가 잘못되면 개개인의 잘못이라고 교육하고 미디어에서도 그렇게 노출하지요~ (10.29 참사처럼) 책을 읽는동안 이 부분을 곰곰히 생각하며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잘 읽혔다니 반갑네요. 전 90년, 그러니까 이십대 후반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반추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기억보다는 다른 길을 택했을 것이고, 같은 이야기를 쓰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썼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저는 반응이 좀 느린 편입니다. 이를테면, 삼십대의 십 년은 이십대를 반성하는 데 보냈고, 오십대는 사십대의 십 년을 반성하는 일에 보낸 식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반성이라는 건 기억을 중첩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십대를 반성하는 삼십대의 내 의식의 결과를 가지고 살아온 사십대의 일을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인 거죠. 이런 게 습관이 되면 사람이 좀 멍해집니다. ㅎㅎ 어떤 사건에 대해 재빨리 윤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도 좀 어려워지고, 머릿속으로 독백이 길어지는 상태가 되는 거죠. 정신병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약간의 소시오패스 성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요즘은 소시오패스를 아주 끔찍한 반인류적 병증으로 받아들이는 듯한데, 제 생각에는 이것 역시 일종의 스펙트럼이고, 사람은 누구나 이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다만, 소위 '정상인'들 중에서도 그 경향이 아주 가벼운 사람이 있고, 그보다는 약간 중한 사람이 있을 테고요. 그런데, 자신을 시간과 공간적인 면에서 분리시켜서 사고하는 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좀 더 강해지는 듯합니다. 대표적인 게 종교인들인 것 같아요.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초월성이 그것이죠. 다만 이들의 경우에는 그런 분리가 이뤄지는 이유 자체가 고도의 윤리성에 바탕하고 있어서 반사회성보다는 초사회성에 가깝게 나타나는 것 같고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이 간극--과거의 나와의 간극, 외부와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표현매체를 동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에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말을 걸고 싶어했고, 차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매체 쪽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이야기라는 건 다른 말로 하자면, '비슷하게 만들어낸 세계'이자 '다르게 만들어낸 세계'인 거 같아요. 알레고리나 메타포라는 용어에는 이 두 가지 성격이 같이 섞여 있죠. 이 두 가지 성격을 조망하고 만들어내면서 그 간극, 사이를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거죠. 아주 공들여서 이상한 일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건 누군가가 동의해 준다면(=읽어준다면) 꽤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지만, 외면당하는 순간 지극히 허망한 일이 되는 것 같아요. 매우 취약한 상태인 거죠. 외부의 반응에 존재의미를 걸고 있는 소시오패스. 좀 자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되겠네요. 자기모순적인 말이에요.
이 자기모순을 다른 말로 옮기자면, 사회라는 것의 숙명성 정도 될 거 같아요.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외국어를 배우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 제일 먼저 한 일이 저만 아는 언어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어떤 특정한 규칙에 근거해서 알파벳을 만들고 문법은 영어와 우리말을 대충 뒤섞은 것이었는데, 이건 물론 일기를 쓰기 위한 것이었죠. 나 말고는 누구도 읽거나 쓰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고 반언어적인 언어였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소멸되었습니다. ㅎㅎ 18세기 즈음의 영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작업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언어를 공유했고,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이 언어체계로 쓰여진 일기들이 꽤 남아있는데, 이걸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어서 번역출판도 되고 그랬죠.
마음 편하게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는데, 더 길게 얘기하고 싶은 걸 참고 마무리하자면, 저는 그래서 마음 속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마음이 내다보는 풍경을 찬찬히 서술하는 일에 관심을 둡니다. 자전거 타는 이야기, 주변의 풍경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과거라는 독립된 세계를 가능한 한 풍성하게, 손에 잡히게 말하고 싶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그 세계를 향해서 손을 뻗는 게 글을 쓰는 아마도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그게 다는 아닐 것이고,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소시오패스'하면 왠지 악당이나 살인마가 떠오르는데 작가님의 '삶으로 부터 거리를 두는 초월성''반사회성'이라는 해석이 신선했습니다 정말 <서교동에서 죽다> 를 읽고 있으면 누군가가 진영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설명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일제강점기의 사범학교 출신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엘리트들이죠. 그리고 해방 후, 전쟁 후의 혼란기에 교사 자격증을 얻게 된 이들도 있었고요. 그리고 제도들이 정비된 후에 교육대학을 거쳐 나온 젊은 교사들이 있었죠. 1학년은 대구에서 다녔는데, 선생님이 젊은 여성이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습니다. 짝이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는 덩치 큰 여자애였는데, 어느날 그 애가 수업시간에 오줌을 싸자 저더러 업어서 집에 데려다 주라고 했던 일 같은 특별한 사건, 교실과 학교 풍경 같은 것만 남아 있습니다. 2학년 때 선생님이 제가 소설에 그린 마귀할멈과 비슷한 데가 있는 노파였습니다. 3학년 때는 차분하고 지적인 젊은 여선생님이었고요. 4학년 때는 그와 비슷한 성향의 남자 선생님, 5학년 때는 말의 그것처럼 커다랗고 누런 앞니가 인상적이고 머리가 벗겨진 영감님, 6학년 때는 한쪽에 의안을 끼운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2학년과 5학년 때의 연세가 있는 선생님들한테 잔인한 면이 있었습니다. 잔인하되 자신이 흥분해서 빠르게 다그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노회한 고양이가 어린 쥐를 가지고 노는 그런 잔인함이었죠. 6학년 때 선생님은 아마도 전쟁통에 한 눈을 잃은 분이었을텐데, 대체로 강인한 원칙주의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잔혹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교사들은 그들이 겪은 삶도 그렇거니와 군사정권 하에서 경직되어 있는 교직사회를 거치는 동안 얻게 된 삶의 방식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방식에는 사도매저키즘이라고 명명할 만한 구석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죠.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동시에 속수무책으로 그들을 닮아갔습니다.
요즘 선생님들이 좋다는 말씀은 정말 좋은 소식이에요. 아무래도 사회 전체적으로 억압적인 요소들이 많이 줄어들었고, 따라서 교직사회의 경직성도 많이 완화된 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번에 읽은 부분은 진영의 채변 봉투 사건 후 마귀할멈 담임의 학대부분입니다 6학년 진영에게 교실 친구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게 하거나 채변봉투에 담은 것을 억지로 먹게 하는 부분은 정말 화가 나네요 저 당시에는 왜 아이라는 약자에게 이다지도 가혹한 처사들이 정당한것 처럼 이루어졌을까요?? 바지를 내린 처벌 후 학교로 가지 못하는 진영과 진수의 이야기가 마음 아팠습니다~
이번 이야기 중 인상 깊은 장면들은 진수와 진영이 학교에 가지않고 추운날씨에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였습니다 날이 요즘같을 때가 아닌가 싶네요 회수귄으로 만화방에서 시간보내는 모습이 애잔했어요~ 집이 어려워지고 생계에 바빠진 어른들 사이에서 학교에서는 버려진 느낌의 아이들이 따뜻하게 쉴곳은 없을까 안타까웠습니다 ' 우린 살아가는 일의 불안과 고통을 너무 짧은 시간 안에 알아버렸다 만화 바깥의 세상은 너무나 쓸쓸하고 견디기 어려웠다 진수와 나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한강을 노려보면서 아무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우린 그 며칠동안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나이들어 버렸다'(203쪽) 그런데 여기에 병식이란 친구가 나오는데 참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도시계획이 어쩌고 할 때부터. 시작해서 병식이는 교실 한쪽에 쭈그러져서 있는지 없는지 전혀 존재감이 없던. 내가 알고 있던 그 병식이가 아니었다'(225쪽) 와!! 혹시 작가님 친구 중에 있던 분을 모델로 하신것일까요?? 병식이가 어른이 된 모습도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 지난 겨울에는 내내 송창식의 <밤눈>을 중독된 듯 거푸 들었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된 이유는 <서교동에서 죽다>의 결말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를 듣는 내내 저도 무언가 사무치게 그리워졌어요. 그리워서 더 들었을까요?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면서 '더없이 외로웠'습니다. '이미 오랜 세월을 산' 지금 서교동에서 죽은/죽었다고 선언되는 소년을 만나고 나니 소설 속 소년의 나이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마치 오래 살아본 듯 이미 지치고 유치하게 오만했던 한 소녀를 떠올리게 되었지요. 그것이 문학의 힘, 이야기의 힘임을 절감합니다. 어느새 다시 겨울이 되었네요. 오랜만에 <밤눈>을 들으며 몇 자 적습니다.
어이쿠,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네요.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은 지난 며칠 동안 추수감사절 휴가기간이었습니다. 제가 어딜 다녀온 건 아니지만, 집을 떠나 대학에 다니고 있는 두 아이와, 매년 추수감사절 기간을 우리 집에 와서 지내는 후배네, 그리고 올해에 대학 신입생이 되어 한국의 집을 떠나 있는 후배의 아들이 와서 같이 어울리느라 컴퓨터를 들여다볼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같이 지내는 동안은 즐거웠는데, 짧은 휴가가 끝나고 하나둘씩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나니 무척 허전하네요.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데려다주느라 뉴욕의 한인타운 근처에 있는 공항에 모두 세 번을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거듭했더니 한동안 가만히 잠자고 있던 방랑벽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집니다. 멀리서 움직이는 풍경, 어스름, 스쳐 지나는 모르는 사람들, 혼자 돌아오면서 듣는 음악, 앞서 가고 있는 차들의 붉은 미등의 행렬, 이런 것들이 고여 있는 마음을 흔듭니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가벼운 기억들이 떠오르고,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 형체 없는 어떤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 움직임은 슬픔이 일어나는 방식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가까이 지내던 선배가 쓴 시의 한 구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눈물의 높이에서 세상이 빛날 때 살아있는 것들의 슬픔을 알겠다" 제게 여행이란, 공간적인 여행이나 시간적인 여행이나, 모두 정체모를 슬픔에서 시작해서 그 내용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우울증 환자 같은데, 아마 오히려 그 반대일 겁니다. 가라앉아있던 것들을 끌어올려 바람 속에 노출시키게 되면서 오히려 고여 있던 습기를 날려버리게 되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말을 하는 일'이 아마도 그 노출의 과정인 듯 합니다. <서교동에서 죽다> 역시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지금은 진영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데, 조금 짐작하고 싶어졌거든요. 글쓰기란 제게는 늘 아는 것, 정리된 것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탐색과정을 묘사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쓰게 되는 동력이 아마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학비를 대야 할 아이가 있는 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글쓰기란 참 거추장스럽고 구차한 버릇이자 욕망인데, 이 동력이라는 게 매우 미약하지만 절대로 소진되지는 않는 일종의 영구 에너지 같은 것이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계속 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떨어져 지내던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음식과 시간을 나눈다는 점은 원래의 의미였을 수확의 기쁨에서 파생되는 더 큰 수확이겠습니다. 글쓰기가 탐색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라는 말씀 참 좋습니다. 읽는 쪽에서도 활자의 표면과 이면을 살피며 이런저런 탐색을 하게 되지요. 탐색 과정 중 생긴 궁금한 점을 좀 여쭙겠습니다. 1. 진영의 이야기, 작가님의 아버님, 할아버님의 이야기가 모두 과거 혹은 역사일 텐데요. 소설에서 이들을 소환할 때 작가님은 어떤 효과를 염두에 두시는지요. 효과라는 표현은 대단히 거칠고 무례할 수 있지만 달리 적절한 단어가 언뜻 떠오르지 않네요. 아, 의미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2. 상당히 늦게 소설을 시작하셨습니다. 희곡으로는 이미 큰 성과를 거두신 것으로 알고 있고요. 한때는 시를 쓰셨다고도요. 다른 장르와 비교하자면 소설 쓰기가 이렇게 나중에야 찾아오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3. 작업하실 때 루틴 같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없다면 없는 대로 어떤 식으로 작업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앗, 이렇게 빠른 반응이라니요. ㅎㅎ 혹시나 하고 들어와 봤다가 살짝 놀랐습니다. 1.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쓰기 전에 이야기를 가지고 다니는 기간이 긴 편입니다. 구상을 한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그보다 더 두서없이 아무 때나 떠올린다고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진영이와 진영이의 가족 이야기도 그런 식으로 꽤 오래 가지고 다녔는데, 이 이야기로 한 아이의 성장, 한 가족의 파괴,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과정을 모두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아이의 내면과 그 아이가 속한 크고작은 사회를 비교적 전체적으로, 또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겁니다. 영화, 연극, 소설 같은 어떤 '구성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달까요. 그래서, 막상 타이핑을 시작하면 오래된 이야기와 지금 떠오르는 이야기 간의 긴장과 대화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2. 희곡도 아주 가끔, 거의 이 년에 한 편 정도 쓰는 편이고, 조용히 올렸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편입니다. 유명작가와는 거리가 멀죠. 이야기의 내용이나 방식도 조용조용한 편이고요. '멀리 있는 사람'이라는 게 제 아이덴티티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돕니다. 이런 느낌이 나쁘진 않습니다.^^ 저는 워낙 낡은 집에 살고 있어서 가구를 만들거나 집을 고치는 게 늘 하는 일인데, 대개 이미 가지고 있는 공구나 자재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꼭 필요한 게 생기면 뒤늦게 구하러 다니죠. 저한테도 비효율적이고 다른 사람 보기에는 바보 같을 수도 있는데, 살아온 과정도, 글쓰기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와 희곡 모두 교회에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칠십년대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교회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한 해에 한 번 회보를 내는데 시가 필요하다고 해서 중학교때 처음으로 시를 써봤고, 희곡은 고등학교 때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저런 걸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했어야 하는 상황이라 대본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도 연극반에 들어가 계속 희곡을 쓰고 싶었는데 선후배 간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싫어서 나왔고, 그런 문제가 전혀 없는 문학회에서 주로 놀았습니다. 그런데 거긴 시 쓰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데였고, 그러다 보니 저도 어영부영 시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된 거죠. 희곡을 다시 잡은 건, 사십대 후반에 다시 만난 연극반 시절 친구가 짧은 소설 하나 각색해 달라고 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 저는 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예닐곱 편이 모두 엎어진 뒤였습니다. 그 친구가 각색을 부탁한 건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였는데, 오랜만에 희곡을 쓰니까 재미있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대본이 나오고 나서 불과 며칠 만에 배우들이 모여서 읽는 게 좋았습니다. 그 공연을 본 다른 연출가가 다른 작품의 각색을 부탁해서 그 작품을 했고, 또 다른 각색 부탁이 들어와서 하다가 좀 과격하게 각색을 하고 싶어지면서 원작과 상당히 다른 독립된 이야기가 나왔고, <태수는 왜?>라는 그 이야기가 공식적으로는 제 첫 희곡이 됐습니다. 그 작품을 올리고 난 뒤 약 칠 년 동안의 한국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그후로도 2년에 한 편 정도씩 희곡을 서너 개 썼습니다. 그런데 희곡만 날려보내고 저는 그대로 미국에서 지내다보니까 연극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격--과정으로서의 창작--에서 무대적인 성격은 상당히 사라지고, 문학적인 성격만 남았습니다. 연출자들은 불만이었겠지만 저로서는 아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가 쓰는 희곡 속에서 소설적인 성격이 점점 강화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서교동에서 죽다>는, 중간에 우여곡절이 좀 있었지만, 희곡으로도 쓰고 소설로도 쓰게 된 겁니다. 시나리오에 비해서 희곡이 훨씬 자유로웠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희곡에서의 여러가지 동시성(특히 저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무대 위에서 한 데 붙여놓았을 때의 느낌을 좋아합니다)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또다른 자유--말하는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아마, 앞으로도,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 방식에 따라, 혹은 이야기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 다른 장르들을 왔다갔다 하게 될 것 같습니다. 3. 몇 해 전부터 하던 일을 관두고 집에서 번역하고 쓰는 것만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살림을 제가 맡아서 하는데, 작은 애도 지난 가을에 대학으로 떠났고 해서 이제는 많이 홀가분해진 상태입니다. 생활은 비교적 규칙적이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서 아내를 출근시키고 나면 한두 시간 정도 이런저런 뉴스와 잡지를 읽고 개를 데리고 산보를 한 뒤 무언가를 가볍게 씁니다. 요즘은 페이스북에 주로 씁니다. 그러고나서 번역을 하거나 자료를 읽거나, 쓰거나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오후 시간이 되면 다시 개를 데리고 산보를 하고 무언가 몸을 쓰는 일을 한 뒤 저녁 식사 준비를 합니다. 식사 후에는 산만하게 이것저것 합니다. 주로 번역을 하거나 무언가를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식이죠. 열시쯤 되면 잠자리에 들어서 삼십 분에서 한 시간쯤 주로 희곡이나 소설을 읽고요.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편인데, 그런데도 읽고 쓸 시간이 늘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세하고 재미있는 답변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는 분들은 거의 예외없이 읽고 쓰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는 듯해요. 하긴 다른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 남아돈다고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쓰는 일이라는 게 깨어있는 모든 시간 거기 신경이 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작가님의 글쓰기 역사는 오랜 시간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로군요. 소설은 늦게 시작하셨지만 그래서 더욱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물론 희곡이나 시도 계속 좋은 작품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오래 써주시길요. 건강하십시오.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응원합니다. ^^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 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김영사/책증정]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닥터프렌즈의 오마이갓 세계사>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박소해의 장르살롱] 15. 경계 없는 작가 무경의 세 가지 경계 [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북토크/책 증정]경제경영도서 <소비 본능>같이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 독립 영화 보고 이야기해요.
[인디온감] 독립영화 함께 감상하기 #1. 도시와 고독[그믐무비클럽] 5. 디어 라이프 with 서울독립영화제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조영주 작가가 고른 재미있는 한국 소설들
[책증정]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요 차무진 작가와 귀주대첩을 다룬 장편소설 <여우의 계절>을 함께 읽어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6인의 평론가들이 주목한 이 계절의 소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2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 있던 이 책, 망나니누나와 함께 되살려봐요.
[Re:Fresh] 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어요. [Re:Fresh] 1. 『원미동 사람들』 다시 읽어요.
이런 주제로도 독서모임이?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그믐 라이브 채팅 : 5월 16일 목요일 저녁 7시, 편지가게 글월 사장님과 함께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
🐷 꿀돼지님의 꿀같은 독서 기록들
권여선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은모든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수전 팔루디 『다크룸』(아르테)최현숙 『할매의 탄생』(글항아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2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0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
모집중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