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질문에 대한 생각들을 흥미롭게, 집중력을 발휘해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저는 모임 끝날때까지 답을 못 쓰겠지만 T.T 이번 기회에 생각을 더더더 해 볼 요량...
[📕수북탐독] 6. 열광금지 에바로드⭐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D-29

이경진

장맥주
와, 늘 그렇지만 고민이 담긴 정성스러운 글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도 잘 추천 받았네요.
연해님의 필력이 부족하지 않고, 저도 질문을 던지긴 던졌지만 답은 못해요. 저 역시 직관적으로 거부감이 드는데, 그 거부감 이 방 안의 코끼리처럼 자리 잡고 앉아서 제가 어느 쪽으로 생각을 전개하든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연해님이 적어주신 ‘우생 사상과 향상심이 뭐가 다를까’ 하는 질문도 대답하기 곤란한 건 마찬가지이고, 저는 사실 두 질문이 같은 딜레마의 다른 표현형 아닌가 싶습니다.
이 질문이 불편하게 건드리는 지점은 아마도 우리가 어릴 때부터 교육 받았던 평등 사상인 거 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각각 동일하게) 존엄하다는 인권 개념이요. 그 개념을 다소나마 허물지 않고 논의하는 게 마치 곡예 같아 보입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동일하지만 그의 삶의 가치는 모두 다르다든가, 인간의 존엄성은 과거에 한 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미래의 잠재력에서 나온다든가 하는 논리로 저 딜레마를 피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계속 고민해보고 싶은 주제예요.)

borumis
저도 연해님 글을 감탄하며 읽었는데요. 어제 안그래도 어떤 철학 논문 토론 모임에서 토마스 네이글의 '박쥐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라는 논문을 읽으면서 주관적 경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는데요. 이게 단순히 물리신경학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시공간적 관점, 내부와 외부의 차이 등 주관과 객관 간의 긴장 속에서 단순히 바깥 세계에 대한 인식 뿐만 아니라 내면적 윤리학적 가치나 자율성, 자기 의지 등의 주제로도 넘어갔고 지금도 아직 그 주제에 대해 고민 중인데요.. 소설 라쇼몬이나 영화 Arrival (테드 창의 소설 기반 영화) 등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여러 작품들도 제가 좋아하는 주제의 소설인데 아마 저와 너무 다른 입장이나 성격 태도 등의 가족 및 친구들과 지내다보니 제가 항상 고민했던 것인 듯 합니다.
이런 범생명적 범우주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과연 내가 과거의 내 자신과 다른 외부 환경 뿐만 아니라 다른 내면 세계/구조를 지닌 채 어느 정도 그 인식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이 소설을 읽고 여러분들의 레트로 갬성 넘치는 얘기를 읽으면서 추억에 빠지지만 과연 내가 그 당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건 어느 정도 현재 시점의 내가 바라보는 과거의 기억에 입각한 것이지 실제 과거의 경험에서 느낀 것과 많이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실제로 에반게리온도 그렇고 데미안이나 호밀밭의 파수꾼도 그렇고 아마 사춘기 때 접한 작품들이 커서는 전혀 다르게 와닿는 경험들을 많이 느끼실텐데요.. 사춘기 아들을 키우면서 제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얼추 더듬어보면서 그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나 자신의 과거의 내면도 현재로서는 어렴풋이 그것도 아마 왜곡된 모습으로 기억하는 내가 지금의 내 아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순간의 모든 생명을 이해하기는 커녕 나 자신 안에서도 다른 시공간에서의 나를 인지하기 힘든데 이런 간극이나 모순 없이 일관된 윤리적 가치를 내리는 게 불가능한 것임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통합된 가치조차도 다양한 관점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수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연해
"AI만 깰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이번 소년의 성공으로 디지털 시대 인간의 잠재력도 열려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 같습니다."라는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습니다. 인간승리의 한 대목 같아서요. 저에게는 꽤 어려운 질문이라 답변하기까지 생각이 길었는데요.
우선 "게임에 푹 빠지는 행위라도 다 똑같이 취급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영위하며 사는 건 또 다른 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거라 생각해서요. 경제적 활동을 하면서 게임을 병행하는 것과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게임만을 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테트리스가 끝판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저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타인의 인정보다 자기만족 선이라면 더더욱이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시로 주신 여러 사례들도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것들 중에도, 남에게는 무용하다 여겨지지만("그거 해서 뭐 할래?"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에게는 돈도 시간도 아깝지 않은 것들이 꽤 많은데요. 웃겨 보이는 것도, 우습게 보는 것도, 결국은 다 자신의 가치관 차이 같아요. 저도 우스꽝스럽거나 촌스러워보이는 저만의 철학 같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타인을 그렇게 바라보지는 않거든요. 다만 저를 그렇게 바라보시는 분들은 꽤 겪어왔는데, 이제는 그걸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그러려니 합니다. 사실 차분하게 말씀드리려 해도, 잘 듣지도 않으시더라고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저를 (본인의 방식대로) 교정하려 드는 것 같아 불쾌할 때도 많았고요.
(남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다 여겨지는) 한 가지 주제를 갖고도 자주 진지해지는 덕분에 1시간에 끝낼걸, 몇 날 며칠을 붙잡고 골몰하기도 합니다. 이리저리 궁리하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구체화시키면서요. 저는 그걸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도 좋아해요.
하지만 여기에 제 나름의 전제와 규칙은 있습니다. 자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죽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가치관 형성, 경제적 활동과 본인의 건강,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 등이 여기에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인정보다는 그냥 제 성향이 그래요. 책임감 있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들의 열정이 제 눈에는 자주 빛나는 것 같고, 그런 진지함을 좋아합니다. 연구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거든요.
근데 <열광금지 에바로드>의 종현이 랠리를 완주한 건 응원하지만, 종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실제로 제 지인이라면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아요. 좀 재수 없...? 특히 여자를 대할 때요. 묘하게 기만적이라고 말하던 휘영의 말에 공감합니다.

장맥주
혹시 방에 틀어박혀 열심히 게임을 해서 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돈을 벌면, 그래서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폐를 끼치지 않으면 괜찮은 걸까요? 그러면서 자신은 게임으로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얻는다고 주장한다면 다른 사람은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실제로 그런 사람이 꽤 있다고 하거든요.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2140461897124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60475

꽃의요정
제가 저 댓글을 달 때 '뒷바라지'라는 전문용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경제적 지원이라고 썼는데요. (으아~~~그거 사전!!!!)
히키코모리가 스스로 청소도 잘하고 밥도 잘해먹고(장보기, 요리하기,설거지 등) 빨래까지 본인이 하는 경우는 거의 못 보거나 못 들었어요. 저걸 다 하는데 단지 밖에만 안 나가는 걸 히키코모리라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혼자 독립해서 방에 틀어박혀 사는 건 좀 다른 문제지만 가족과 함께 살면서 히키코모리가 되는 건,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가족을 만성적 불안에 빠뜨려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을 고통의 장소로 만드는 것 같아요(이게 제일 큰 문제). 일단 대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교류 단절은 항상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그게 특히나 사랑하는 나의 아이라면....울어도 됩니까?
물론 여러 가지 말 못할 이유가 있을 테고, 나오려고 하지만 못 나오는 이들은 지금 이 댓글처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응원해 주고 싶습니다.
밥심
객관적인 평가와 무관한 주관적 가치 창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사실 뭘 하든 관여할 바가 아니죠.
다만 신종 마약 제조 및 유 통과 같은 범죄 행위는 지양되어야 하겠지요. 우리 사회가 왜 그 많은 법률 조항들을 만들면서까지 범죄 행위를 막고 처벌하려하겠습니까. 범죄가 사회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이죠.
히키코모리의 삶은 평가하기 쉽지 않은 것이 그 행위가 당사자들의 삶에 대한 사투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면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을 주고 받거나 인정을 받고 일을 통해 성취감과 경제적 보상을 얻어야 하는데 히키코모리는 어떤 피치 못할 이유로 인간관계와 일을 포기하죠. 이제 남은 것은 취미 즉 재미를 추구하는 삶뿐이고 히키코모리는 그 행위를 극단적인 방법으로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결론 내릴 것 같거든요. 하지만 이 행위가 타인, 특히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밍묭
도덕 또는 윤리를 침해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쓸 데없어 보여도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슝슝
아무리 그래도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선 안 되죠. 그렇기에 마약 제조는 불법 행위라서 인정될 수 없습니다. 히키코모리를 부정적으로 볼 계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손실이긴 하지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범죄자보다는 낫지 않나 싶습니다.

흰벽
'객관적인 평가와 무관하게'라는 말은 가치 판단의 기준을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둔다는 말이지, 보편적 도덕률까지 무시한다는 말은 아닐 것 같아요. 물론 '보편적 도덕률'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말이지만요. 신종 마약의 경우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사회 근간을 흔든다는 점에서 객관적 평가고 뭐고 간에 보편적 도덕률에 어긋나는 게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히키코모리는 어떨까요... 제 생각에 다수의 히키코모리는 본인이 원해서 방 안에서 침잠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처로 인한 도피인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그건 객관적 평가와 상관 없이 주관적으로도 가치를 두기 힘든 일일 겁니다. 다만, 정말로 본인이 원해서 방 안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가치를 창출하고자 한다면(그게 컴퓨터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끝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것은 남들의 평가와 상관 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분야에서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예전에 마르셀 프루스트 전기? 뭐 그런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방 안에 스스로 감금되다시피 해서 사유하고 사색하는 기록이 있더라고요. 물론 이 분도 병적인 이유이긴 했습니다만... 예를 들어 주신 두 가지 경우 중 앞의 것은 주관적 가치로도 볼 수 없을 것 같고, 히키코모리는 캐바캐인 것 같습니다.
이런 독특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냥 인생에서 생각해 본다면 객관적 평가보다는 주관적 가치를 우선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객관적 평가에만 매달리다 보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가 어려우니까요. 외부와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가치 기준이 뚜렷이 서 있어야 하고, 만일 자신의 가치 기준과 외부 세계의 기준이 충돌한다면 주관적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리
저는 가치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좋아하는 가수를 보러 일본이며 영국까지 가는 저를 미쳤다 하 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얻는 활력과 기쁨, 행복은 저 말고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저 같은 덕후를 만나면 덕질하는 분야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냥 응원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도 건강해질 테니까요.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법을 위반하는 경우는 가치 있다 생각하지 않아요. 마약은 사회를 어지럽히고 히키코모리는 부양하는 가족을 힘들게 하잖아요.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네요.

김혜나
문학을 꿈꾸던 습작생 시절 소설이란 저 자신에게만 가치가 있을 뿐, 경제적으로는 가치가 떨어지기에 주변에서 모두 말리고 반대했어요. <열광금지, 에바로드> 읽는 내내 습작생 시절이 떠오르고 유독 더 깊은 공감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저와 종현 모두 뜻하는 바를 이루었기에, 어떤 일이든 스스로 가장 행복하고 살아 있는 기분이 들게끔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일에 타인에게 피해가 된다거나 자기 자신을 가해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안 하는 게 옳죠. 예로 들어주신 마약 유통과 히키코모리의 삶 모두 스스로에게는 행복일지 몰라도, 타인과 자신의 존재에 결국 위해가 되는 일이기에 전혀 괜찮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바나나
객관적인 평가와 무관하게 주관적인 가치를 만들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할것 같은데, 이걸 오래 지속하는 일은 쉽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은 자주 합니다. 이럴 수만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자유로워질까 싶지만, 혼자 만족하는 가치는 오래 지속 하기는 어렵고,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응원이 되어주는 형태면 좀더 오래 갈수 있을까 상상해봅니다.
GoHo
당연히 객관적 평가와 무관하게 주관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작가님들께서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탈고하는 한 권의 책이 그 사례 아닐까요.
객관적 평가와 무관하게 글자마다 문장마다 부여한 주관적 가치는 불변일 것 같습니다.
'가치 있다'는 말은 의미, 중요, 귀함 등을 내포하여 사용되는 긍정의 말이기에, 사회규범과 윤리.도덕성에 어긋나는 일들과 함께 쓸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히키코모리의 삶은 살아가는 방식으로 생각되기에 은둔형 외톨이의 삶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명확하게 부여하고 있는 긍정적 가치가 있다면 객관적 평가는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제 은퇴 후 로망이 은둔자의 삶을 살며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라..ㅎ
블랙스완
이런 주제가 논의될 수 있게 질문을 던져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장 작가님의 에바로드 뿐 아니라 재수사나 다른 글들에서도 이런 주제를 꾸준히 다루어 주셨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계속 고민하는 화두인데 이게 모두에게 정답은 없겠구나, 자신만의 정답에 가까운 어떤 결론을 찾아야 하는구나 정도의 감만 잡고 살고 있습니다.
1-1. 저는 [가치(의미)가 있는 일일까요] 라고 라고 묻는 것 자체에 가치 판단이 들어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큰 틀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이가 살아가는 인생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가치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인생의 우열을 판가름하는 것 아닌가 해서요. 단, 타인(가족도 포함)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으려면 본인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완연히 독립될 수 있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이뤄진 이후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주변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딛고 일어설 수 없는데 본인이 원하는 길을 걷겠다는 건 저의 가치관에는 맞지 않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독립된 한 개인이 된 이후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 뭘 하고 살건 그 개인의 자유이며 그 개인만의 가치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1-2. 만약 가치(의미의 여부) 판단으로 여러 인생을 줄세우기를 시작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판단 기준이 경제적 파생물의 유무와 크기인 것인가? 금전이 아니라면, 기존 역사적으로 흘러 내려오던 가치관, 윤리관에 얼마나 부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우열을 나눌 수 있는건가?
그럼 그 기준은 어느 정도에 그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보니 아주 명확한 선을 긋고 그 외엔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하는게 아닐까 에서 멈춰선게 저의 현재까지의 가치관입니다.
1-3. 신종 마약을 만들어 유통시킨다 ⇒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니 해선 안 될 행위(물론 마약을 투약하는 걸 본인 스스로의 판단이라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선 논외)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평생 히키코모리의 삶은 보낸다 ⇒ 본인이 경제적, 생활적 독립이 되지 않은 채 가족 등 타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해선 안 될 행위.
단, 모든 영역에서 독립되어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존재인데 은둔의 삶을 보내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
2-1. 소위 말하는 사회적으로 누구나 인정할만한, 통용될만한 수준의 가치를 창출해야 의미가 있는 삶이라면 많은 지식인들이 찬양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이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2-2. 로봇이나 AI로 대체될 수 있는 직군의 종사자들은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인가? AI의 침공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20-30년 뒤엔 과연 인류 중 몇이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낼 것인가? 그러면 AI의 발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몇 몇 을 제외하곤 전부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인가?
3. 애초에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해서 탄생했는가?
이런 화두를 잡고 끌고 가다보면 결국 탄생까지 올라가게 되게 되는 것 같은데 '왜 이 땅에 태어났는가' 를 예전엔 생각했었다면 요즘은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것 같이 그냥 내던져진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인만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그건 타인의 자유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라면 무엇이든 가능한게 아닐까 정도로만 결론을 냈고 종현 같은 삶도 참 괜찮은 거 아닌가 라고 전 생각합니다.
4. 내가 찾은 길이면 괜찮은데 남들이 좋다고 한 길을 따라가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게 가장 아쉬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사회가 내려준 가치 판단에 맞춰 길을 가다가 뒤늦게 이게 아닌데, 하고 후회하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이것도 저의 관점일 뿐 정답은 없겠죠..)
살면서 많이 하는 고민들인데 다른 분들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장맥주
@블랙스완
제가 요 며칠 마감하느라 바빠서 글을 못 썼네요. 죄송합니다.
1-1. 저도 [가치(의미)가 있는 일일까요]라고 묻는 질문 자체에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질문에 가치 판단이 들어갔으니 함정이다, 혹은 자기모순이다’라며 저 질문을 기각할 수 없다는 게 모든 인간의 처지인 거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인간들이 삶과 세계가 지닌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고 살 방도가 없습니다. 저희는 무생물이 아니잖아요. 낮은 수준에서라도 ‘무엇이 내 삶에 보다 나은 일인가’를 따지고 그걸 행동에 옮깁니다. 매 순간 그런 결정을 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습니다. 의식은 하지 못하더라도 이때 ‘굶어서 허기를 느끼는 삶보다 포만감을 느끼는 삶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고, 그 판단을 행동에 옮긴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매 순간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 죽는 과정의 고통도 무릅쓸 만하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자살을 합니다. 자살이야말로 진지하고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라고 한 카뮈의 말은 문자 그대로 옳습니다. 그 철학적 문제에 우리는 매 순간 뭔가 답변을 합니다.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답변이 아닌 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A)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과 (B) ‘다른 이가 살아가는 인생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가치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인생의 우열을 판가름하는 것이니 나는 피하겠다’는 진술은 양립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A)와 (B)는 모두 삶과 세계에 대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강하게 표현하는 주장이지요. 그리고 모순됩니다.
(A)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B)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A)라는 가치판단의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자유를 멋대로 침범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치관 (A)를 지닌 사람은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나 법,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행동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판단은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A)는 그의 삶과 세계 전체에 적용되는 기준이니까요.
그런 사람이 ‘나는 모순을 껴안고 살겠다, 매사에 일관성을 지킬 필요는 없다’는 가치관 (C)를 더해서 살 수도 있겠습니다. 이 경우에도 그는 가치관 (C)를 지니고 살면서 여러 가지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되고, 그 자신이 모순을 껴안거나 일관성을 지키는 기준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 기준은 ‘내 한 몸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든가 ‘귀찮아질 거 같으면 (A)보다 (B)를 우선시한다’ 등이 될 수도 있겠지요. 실은 저 역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다만 (A)와 (B)가 모순 없이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틀린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A)와 (B)의 모순된 결합이 지금 다양성을 중요 가치로 삼는 세속 민주주의 세상의 밑바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장맥주
@블랙스완
1-2. 저는 세계 전체에 적용할 수 있도록, 더 넓게 또 더 촘촘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제 가치관을 발전시켜 보려 해요.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건 압니다. 그래도 질문들을 던져 보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때로 ‘저런 행동은 얼마나 가치 있는 걸까’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저런 인생은 가치가 얼마나 있는 걸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네, 저는 속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 작업을 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어쩌면 한 가지)입니다.
먼저 제 머리로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고민하지 않은 사안이 제가 판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저한테 중립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내린 평가와 함께 옵니다. 제가 제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가치 판단을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또는 제가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머리가 아닌 감성이나 원시적 본능의 영향을 받는 도덕적 직관에 따라 그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게 됩니다.
특히 요즘은 윤리의 확장을 둘러싼 도전이 많습니다. 동물권이나 정체성 정치 같은 것들이 그렇지요. 그런 논의에 대해서 저는 지적으로 성실해지고 싶습니다. ‘착한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면 나쁜 것’이라고 넘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해야 겨우 중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저는 이미 아주 크고 촘촘한 가치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체계는 바로 시장논리인데, 적어도 논리적 완결성은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 IT 개발자와 에티오피아 어린이의 삶의 가치는 각각 얼마다, 하고 순식간에 계산해내는 가치체계입니다. 저는 그 가치체계의 의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거기에만 의존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시장논리는 워낙 촘촘하기 때문에 제가 저항하지 않으면 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힘을 발휘할 것 같습니다. 제대로 저항하려면 저는 시장논리가 힘을 발휘하는 영역―사실상 모든 영역―에 대해 저만의 가치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연해
"제가 제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가치 판단을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도 어떠한 주제를 놓고, 제 방식대로 삶에 적용하면서 천천히 구체화하고, 정립해가는 과정을 좋아하는데요. 가끔 (사실 꽤 자주) 딜레마에 빠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답이 없는 질문 같은 것인데, 결국 그 답이라는 것도 스스로 정한 답과 세상이 정한 답으로 나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적어도 전자라면, 그에 합당한 자신의 논리가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행동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고요.
그래서 "그렇게 고민을 해야 겨우 중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씀에도 다시 한번 공감합니다. 저도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대로만 마냥 살고 싶지는 않아요. 말장난 같지만 '살아지고' 싶은 게 아니라 '살아가고' 싶습니다. 본능에 반하는 어떠한 생각들을 꼿꼿하게 지키면서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저항'이라는 단어처럼, 저에게도 역행하고 싶은 어떤 지점들이 확실하게 있더라고요. 어떠한 대의? 거창한 담론? 이라기보다는 그저, 제 삶에 힘을 발휘하는 꼴(?)을 보는 게 싫어서요.
작가님이 연재하고 계신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의 3화를 읽을 때도 공감하는 지점들이 정말 많았는데요(여러 번 감동? 받으며 읽었습니다). 이번 글을 읽으면서도 자꾸 그 편이 떠올랐습니다. 이를테면 이 문장이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을 요즘 많이들 한다. 용어는 있으되 내용물은 채워져 있지 않은 개념이다. 나는 그 개념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빠르고 얄팍한 뉴스를 멀리하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빠르고 얄팍한 뉴스들 중 가짜 뉴스를 걸러내고 양질의 뉴스를 골라내는 능력이 아니다. 가짜 뉴스건 낚시 뉴스건 양질의 뉴스건, 빠르고 얄팍한 뉴스 꾸러미 전체를 멀리 하는 능력이다."

장맥주
그냥 막연히 품고 있던 생각인데 그믐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정리하게 되네요. 그 와중에 ‘저항’이라든가 ‘중립’ 같은 단어도 입에 올리게 되고... 혼자 가만히 있었으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거 같아요. 연해님의 ‘살아지고’ 싶은 게 아니라 ‘살아가고’ 싶다는 말씀도 멋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p. s. 빠르고 얄팍한 뉴스를 멀리해야 한다고 써놓고는 어제도 그런 쓰잘데기 없는 뉴스 보는데 3시간쯤 썼습니다. 음...

연해
그믐에서 대화를 나누며 정리한다는 말씀, 저도 정말 그래요. 어디가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마음껏(?) 하겠어요. 그믐이라 가능한 일이고, 그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믐이 좋아요(때아닌 고백). 간혹 그믐에 글을 남기다가 저조차 잊고 있(다 생각했)었던 내밀한 이야기를 와륵 쏟아내기도 하고, 29분 동안 고민하다가 못 지우기도 하는데요(하핫). 실은 그 모든 과정이 좋답니다. 자주 진지하고 가끔 농담을 건네지만, 그믐에서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귀한 것 같습니다. 저야말로 늘 감사드려요.
오늘은 빠르고 얄팍한 뉴스보다는 느리고 깊이 있는 텍스트 콘텐츠를 접하실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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