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에 빠져들기

D-29
오늘까지 5부의 세 번째 글 "아무 조건 없이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것"까지 읽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오베르쉬르우아즈에 정착한 빈센트가 자신의 병을 치유해줄 거라 믿었던 의사 가셰와도 사이가 틀어지고, 새로 가정을 꾸리게 된 동생 테오와도 갈등을 겪으면서 더욱더 외로움과 불안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890년 7월 6일 파리에서 테오의 가족과 한바탕 말다툼을 벌인 뒤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돌아온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네게 짐이 되는 것이, 네가 나를 두려워해야 할 존재로 느끼는 것이 정말 무서웠어"(p. 292). 가슴 아프게도 이 다툼의 시간이 이들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고 하죠. 그래서일까요? 이 시절 빈센트가 그린 그림에서는 "점점 더 멀리 사라져가는 듯한 사람들의 아스라한 뒷모습이"(p. 293) 두드러진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극에 달한 고립감 속에서 "빈센트는 틈날 때마다 이상적인 모자상을 그리기 위해 분투"(p. 310)했다고 합니다. 특히, 빈센트가 룰랭 부인과 아기 마르셀을 그린 그림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따스한 위로의 이미지를 그림에 새겨 넣고"(p. 307) 싶었던 것이라며, 그 "이면에는 한 번도 그런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는 깊은 좌절감 또한 애잔한 슬픔과 함께 짙게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p. 311)고 해석합니다. 이처럼 그림은 빈센트에게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결핍을 보상받을 수"(p. 307)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지요. '예술이 우리의 심리적 결핍을 채워주고 우리를 치유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이 빈센트에게도 딱 들어맞네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고립되었던 빈센트가 그림을 통해서라도,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에만큼은 위로 받았길 바라면서... 그 고통을 이겨내고 지금 우리를 위로해주는 수많은 작품을 남긴 빈센트에게 새삼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Merci beaucoup, Vincent! ♥♥♥
<Portrait of Madame Augustine Roulin and Baby Marcelle>, 1888, oil on canvas, 92.4 x 73.5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여전히 내가 가장 그리고 싶은 것은 거대한 성당이 아니라 민중의 눈이야. 사람의 눈 속엔 대성당엔 없는 것이 있거든. 아무리 대성당이 장엄하고 화려하다 하더라도, 내게는 불쌍한 거지든,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든, 인간의 영혼이 더욱 흥미롭단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노동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적 갈구. 그것은 빈센트 예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빈센트는 진심으로 염원했다. 가장 힘들게 사회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가치를 인정받고 행복한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왜 수많은 사람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이토록 고통 받아야 하는가. 왜 인간의 힘겨운 노동이 어디서도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모두가 기피하는 장소에서조차 위대한 예술가적 영감을 찾아내는 것, 나아가 모두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길어올리는 창조적 시선이야말로 빈센트를 견인하는 내적 원동력이었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빈센트는 척박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커다란 감명을 받았고, 완벽한 비례와 화려한 색채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의 상처투성이 몸 자체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완독한 자신에게 주는 축하의 메시지를 적어주세요.
먼저 그믐에서 첫 싱글챌린지를 무사히(?) 마친 내 자신을 칭찬해.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입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했지.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라고. 그런데 '자신 안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을 살아보려 애썼던 사나이, 그 솟아나는 것을 화폭에 옮겨 후대에 큰 감동을 주는 명화를 남긴 외로웠던 사나이 빈센트. 칼 융도, 헤르만 헤세도 '자기자신으로 살아가기'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빈센트는 그걸 해냈지. 온 몸과 마음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의 순간도 많았을 거야. 하지만 빈센트는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에게 보이는 세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길어올리는 창조적 시선"으로 재현해냈어. 혼란과 불안과 방황과 고독으로 점철된 나의 20대. 반지하 자취방을 가득 메운 빈센트의 <별이 빛나는 밤>과 <씨 뿌리는 사람> 아트 포스터는 내게 그 시간을 견뎌내고 통과해낼 위로와 힘을 주었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 그믐의 싱글챌린지를 통해 다시 빈센트에 빠져들게 된 2024년 가을. 나는 빈센트의 순수한 영혼을 다시 만나고 그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그 여정을 함께 했지. 빈센트, 이제 나는 알겠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던 것들을(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Self-Portrait with Grey Felt Hat>, 1887, oil on canvas, 44.5 × 37.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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