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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9
나는 마치 죽었다 살아 온 기분이었다. 그러자 문득 시체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이 세상을 살아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달라 보일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p.92, 이경혜 지음
이걸 잘하냐 못하냐는 오로지 그걸 즐기느냐, 버티느냐의 차이야. 즐기면 얼마든지 오래가지만 버티면 금방 끝나. 그게 요령이야.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p.94, 이경혜 지음
그럴 수가 있는 걸까, 그럴 수가 있는 걸까, 재준이 같이 착한 애가, 겨우 열여섯 살인 남자 애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사라질 수 있는 걸까. 이렇게 피가 돌고 맥이 뛰던 몸이 어느 순간 그렇게 갑자기 절구 속에서 빻아지는 뼛가루로만 남을 수도 있는 걸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왜 신은 인간에게 죽음을 만들었으며,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만들었다면 낳은 순서대로 차례차례 데려갈 것이지, 왜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 내는지, 그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견딜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어딘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얘는 하필 왜 이런 놀이를 했을까?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는 놀이라니? 이 중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반밖에 채우지 못하고 죽어 버릴 줄은 모르고, 그것조차 모자라 이렇게 미리 그런 놀이를 하다니!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시험 망쳐서 운 거다, 뭐." 나는 일부러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엄마를 보니 엄마 눈도 빨겠다. "그래, 시험을 망치다니!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딨겠니?" 엄마는 그렇게 장단을 맞추며 토끼처럼 빨개진 눈으로 피식, 웃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p.111, 이경혜 지음
오늘은 싫어. 오늘은 더 이상 네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친구란 게 뭐니, 그렇게 급할 때 마음이 전해지지도 않는 그런 게 무슨 친구니, 이럴 줄 알았으면 너랑 친구가 되는 게 아니었어. 그 봄날, 그 벚꽃잎 날리던 날, 너랑 친구가 되는 게 아니었어......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p.114, 이경혜 지음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어, 신이 있다면 나는 내 손으로 그 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난도질을 해주고 싶어,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 어쩌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재준아, 이건 거짓말이지? 넌, 넌 그냥 죽은 척 게임을 하고 있는 거지? 이 모든 게 다 꿈이라면 얼마나 좋겠니, 꿈이라면, 그냥 기분 나쁜 악몽이라면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나를 닮은 문장] "내 가슴속으로 다시 해일처럼 분노와 슬픔이 몰려왔다. 흑, 저절로 가슴 어디쯤인가 겨우 막아 놓은 마개가 열리는 느낌이 들더니 눈물이 후두둑, 쏟아지듯 길 위로 떨어졌다."
내가 울 때마다 너는 내 등 뒤로 다가와 가만히 손을 얹어 주었지, 쓸데 없이 자존심만 강한 내 기분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위로한다는 티도 안 내고, 딴전을 피우고...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오늘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재준이 일기장을 읽어야지, 나는 그 순간 그런 결심을 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p.133, 이경혜 지음
신이 있다면 목을 비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신이 있다면 비수로 그 가슴을 난도질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는 신이 있다면 그냥 내 목숨도 조용히 거둬 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가끔 재준이처럼 나도 내가 이미 죽었다는 상상을 해 보곤 했다. 그러나 재준이가 그 놀이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느낀 것과는 달리 나는 그대로 죽음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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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 엄마 역시 내게는 감옥이다. 모든 걸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 같지만 그러기에 나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곧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반항할 필요가 없는 대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또 하나의 감옥이다. 결국 모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다 감옥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한 존재가 살아 있다 사라진다는 건 과연 뭘까, 어떤 것일까? 숨쉬고, 얘기하고, 사랑하고, 울고, 떠들고, 웃고, 화내고, 걷고, 밥 먹고, 싸우고, 코 흘리고, 짜증도 내고, 눈물도 흘리고, 똥도 누고, 방귀도 뀌고, 영화도 보고, 토하기도 하고, 가슴 설레기도 하다가 어느 날 사라진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그럴 수도 있었는데, 그럴 수도 있었는데..... 우리에겐 무한한 미래가 열려 있었는데, 이렇게 무지막지한 운명의 장난으로 그 화면은 찢겨 나가고 말았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이경혜 지음
[가장 강렬했던 문장] "나 역시 오늘 살아 있다고 해서 내일도 살아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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