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1.별을 위한 시간

D-29
그는 토치선의 선장이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전문적인 직업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토치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콜럼버스가 첫 항해에서 돌아왔더니, 범선의 시대가 끝나고 증기선밖에 없는 상황과 비슷했다.
별을 위한 시간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긴 우주여행과 그 여행의 끝에 기다린 건 내가 간 거리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기술. <삼체>가 생각났어요.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400년을 항해해 온 삼체 함대... 우주로 나간 사람과 지구에 머물러있는 사람의 시간의 비대칭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쌍둥이라서 두 사람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 것이 더 극단적으로 드러났고요. 팻은 팻 나름대로 지구에서의 시간을 잘 살았고, 톰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도 되겠죠.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속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마지막에 팻이 여든아홉이라는데 다 큰 증손녀가 있고 거동도 잘 못하는 노인으로 묘사되어서 이 작품이 쓰여질 때쯤엔 여든아홉은 거의 죽을 나이였나 싶었고. 증손녀랑 이어지는게 유교적 사고방식으로는 살짝 충격이었어요. 톰이 팻을 원망하면서도 따르고 의지하던 관계에서 완전히 홀로 설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저도 비록 자신의 직계 손주는 아니지만 형제의 손자인 종손녀와 결혼하겠다는 걸 보고 놀랐어요. 생물학적으로는 톰이 아직 20대 초반의 몸과 정신을 갖고 있다지만... 음... 묘했습니다. ㅎㅎ 다만 톰이 돌아와서 본 지구는 언어도, 관습도 너무 많이 변한 곳이라 자신에게 과거의 지구에 대한 기억을 이어줄 끈이 필요해서 그런것 아닐까 싶었어요.
팻은 가족이자 쌍둥이로서 톰을 사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우주로 떠나는 모험을 무의식적으로 거절했단 점에서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생각되지는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고, 결국 지구에 남은 팻은 결혼과 사업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갔기에 자기자신을 위해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우주여행으로 인해 느끼는 시간의 상대성은 엄청난 외로움을 동반합니다. 지구에서 가족들과 생일파티를 즐기는 팻과 달리 자신의 생일을 자각하지 못하는 톰의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멀어져간다고 느껴졌어요. 우주선의 선원들과 점점 관계를 넓혀가며 탐사 생활에 적응해가는 톰이지만 삼촌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고 생각해요. 새 행성을 발견할 때마다 모험에 대한 호기심과 미지의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톰은 팻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며 성장하게 되었고, 이 덕분에 지구에 돌아와서 정해진 미래를 강요하는 팻에게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피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을 읽을 땐 저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구요ㅎㅎ 사실 어릴 적부터 쌍둥이인 친구들이 굉장히 부러웠어요. 태어날 때부터 내 옆에 있는 베스트 프렌드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번 책의 주인공 톰도 쌍둥이라는 정체성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임에 참여하며 다른 분들의 감상을 읽는 것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고, 다양한 의견을 읽으면서 더욱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저는 펫이 너무 자기식으로 톰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식은 별로 좋아하지않아요. 정말 좋아한다면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하지않을까요? 은화님 덕분에 책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저 혼자 읽었더라면 SF라는 이유로 기술적인 부분에 맞춰서 읽었을 것 같아요. 오래전 처음 읽었을 때 텔레파시가 나와서 이건 sf가 아니야 하고 던져 버렸던 것처럼요.( 아주 엄밀하게 장르를 구별하던 젊은시절이요...) 이런 저런 부분을 찔러서 던져주신 질문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팻과 톰의 형제애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아요. 작가 본인도 독자들에게 판단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인지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마지막 장에 가기 전까지 톰의 입을 빌려 담담하게 사실 위주로만 서술하고요.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안 나지만 팻이 자신처럼 강한 사람들만이 지구에 남을 자격이 있다고 표현하는 묘사가 있었는데 이 부분을 볼 때 톰이 자신의 이기심을 포장하고 합리화한다고 느꼈습니다. 우주여행을 포기한 이유가 지구에서 머물며 재물과 사회적 성공,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데브루 박사의 암시는 이미 앞에 나왔었죠. 그러면서도 톰에게는 자신이 양보했다는 듯 행동하는 걸 보고 팻이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느꼈어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톰의 태도가 과연 사랑인가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안 되더라고요. 톰이 그간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게 아닌가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톰이 한편으로는 팻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걸 스스로 인정한 뒤부터 내면의 갈등이 사라진 걸 보면 둘의 관계는 일반적인 모습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텔레파시 쌍둥이이기에 가능했던 다른 형태의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작가가 텔레파시와 상대성 이론이라는 전혀 다른 영역의 두 소재를 과학적으로 엮어서 설명하는 부분들도 재밌었어요. 처음에는 텔레파시의 속도가 빛보다 빠른지를 두고 과학자들이 논쟁을 하다가, 이후에는 빛보다 빠른 건 인정하지만 정확히 '얼마나' 빠른지 측정하려고 하고, 더 지나서는 텔레파시가 두 사람 사이에 동시에 발생한다는 방향으로 얘기가 발전하죠. 그런데 텔레파시가 빛보다 빠르거나 시공간의 제약 없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왜 우주선이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 때 통신이 방해 받는지 의문이 생기는데, 인간의 몸이라는 그릇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에 통신이 느려진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그럴싸하다고 느꼈어요. SF는 불가능한 것들을 단지 마법이나 신비한 힘 또는 우연이라고 넘기지 않고 기술적/과학적 논리에 상상력을 더하여 독자를 설득하고 납득시켜야 하는데 그 지점을 짚고 넘어가는 설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믐에 가입한 지도 얼마 안 되었고, 독서모임 자체를 처음 열어보는 거라 사람들이 와주실까 걱정도 많았는데 참여해주셔서 재밌고 감사했습니다. 책을 다시 읽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모임을 통해 생각을 하고 정리하면서 작품을 한 번 더 읽어보니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분들의 감상을 보며 다양한 해석을 하는 즐거움을 느꼈어요. 다음에 여는 모임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 작가의 '민들레 와인'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더군요.
민들레 와인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등과 함께 SF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반자전적 성장 소설로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일리노이 주 워키건이 모델인 상상의 도시 '그린타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실제 경험과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소년 시절을 재창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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