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30. 올해의 <술 맛 멋> 이야기해요.

D-29
설이소주의 단맛과 부드러움은 결코 깊거나 무겁 지 않았다. 앞서 마셔본 동해소주가 영금정에 부딪히는 새하얀 파도와 같은 힘으로 다가왔다면, 설이소주는 부 드럽게 살랑이는 한낮의 햇살과 바람 같은 여운으로 남 았다.
술 맛 멋 p.18, 김혜나 지음, 김현종 감수
제 딸 이름이 윤설인데 집에서는 그냥 설이라고 부르거든요. 설이소주라니 정말 생각만 해도 좋은 울림입니다.
아리랑주조에서 생산하는 겨울소주를 마주했을 때, 어릴 적 메주를 띄우며 맡아본 쿰쿰하고도 시큼한 냄새가 비로소 떠올랐다. 전통 방식으로 빚은 증류식 소주에서 피어오르는 누룩 향이 완전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왔다. 메주를 띄우던 시기의 아련한 기억을 되짚으며 술 잔을 입에 대고 입술을 축였다. 그러자 술에서 화사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이내 술을 입에 머금었다 삼키니 달고 구수한 누룽지 맛이 뒤따라왔다. 한 모금, 두 모 금, 조금씩 더 맛보는 동안 신비롭고 따사로운 환영이 일었다.
술 맛 멋 p.22, 김혜나 지음, 김현종 감수
저도 불과 몇년전까지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어머니가 덜 지쳤을 때 고향집에서 메주를 띄우셨었는데, 요새는 그 냄새 맡을 일이 없네요.
어릴 적 부모님이 운영하던 잡화점 영업을 마친 뒤 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때면, 아버지는 매번 술 을 곁들였다. 소주를 주로 마셨지만 컨디션이 안 좋거 나 피로한 날이면 '청하'를 마셨다. 나로서는 알 길이 없 었지만, 아버지는 청하가 소주보다 순해서 마시기 훨씬 편하다고 웃으셨다.
술 맛 멋 p.41, 김혜나 지음, 김현종 감수
이 문장을 읽으며 깜짝 놀라서 웃었습니다. 제가 요새 딱 이러거든요. 저녁때 반주를 하게되면 대부분 소주로 하는데, 오늘은 너무 취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청하를 마십니다. 별빛청하가 있다면 별빛청하를 마시고요.
저는 백세주, 오십세주를 참 좋아했었고 비슷한 맛의 대포라는 술도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강쇠주는 대학생때 몇 번 마셔보았고 몇 년전에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한번 더 마셔봤는데 어떤 맛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네요. 20여년전 제가 마셨던 강쇠주는 병 모양이 좀 더... 투박했었습니다.
진맥이란 밀의 옛 이름이다. 안동 지역은 찹쌀로 빚은 안동소주가 유명한데 반해, 진맥소주는 맹개마을에서 재배한 통밀로 술을 빚어 소주를 내린다는 점이 독특했다. 진맥소주를 빚는 맹개술도가의 설명에 따르면 밀로 만든 소주는 1540년경 고조리서에 유래가 있다고 한다.
술 맛 멋 김혜나 지음, 김현종 감수
밀로 빚은 소주라... 버번 느낌이라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귀한 안동소주는 누군가 선물해줘서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기분좋게 마시긴 했는데... 마시다가 기절하고 다음날 엄청난 숙취에 시달려서 맛이 기억나지 않네요. 적고보니 제가 참 무식하게 술을 마시는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여유소주는 논산시 양촌 지역의 햇빛을 받고 자란 지역 쌀로 빚어진다. 오랜 기간 숙성한 덕분인지 뚜껑을 열자마자 농익은 과일향이 화사하게 피어오르고,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질감 또한 잘 느껴진다. 한번 맛을 보면 바나나우유와 같은 은은한 단맛에 산뜻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이어져 정말 술술 들어간다. 증류식 소주임에도 마치 일본의 사케와 같은 향긋함까지 품고 있어 신선한 생선회와 궁합 또한 좋다. 특히 겨울철 지방이 잘 오른 방어회 한 점 입에 넣고 여유소주를 한 잔들이켜면 이 세상을 다 가지기라도 한 것 같은 풍족함이 차오른다. 과일이 떠오르는 향긋함과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깔끔한 술맛 덕분에 여름날에는 얼음과 탄산수를 섞어 하이볼로 마시기도 좋다.
술 맛 멋 p.66, 김혜나 지음, 김현종 감수
제가 나고 자란 김포에도 양촌면(현재는 양촌읍)이 있습니다. 전원일기에 나오는 양촌리는 실제 지명은 아니고 촬영은 양주, 양평, 남양주 등에서 했다고 합니다. 실제 김포에서는 전원일기의 경쟁작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촬영했었지요. 전국에 양촌이라는 지명이 엄청 많은데 해가 잘 드는 마을을 양촌이라고 한다고 하네요. 반댓말은 음촌인데 어감이 안 좋아서인지 음촌리라는 공식 지명을 쓰는 곳은 없고, 도로명주소에 음촌길 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곳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순우리말로는 양지말, 음지말 이라는 표현이 있네요. 지금 살고 있는 곳 근처에는 양지편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양지편 닭한마리라는 식당이 해장하기 정말 좋은 맛집입니다. 고향 동네와 같은 지명이 나와서 작가님들 앞에서 주제넘게... 이말 저말 적어보았습니다.
저는 올 가을에 마드리드에 가서 마신 띤또 데 베라노(Tinto de Verano)라는 술이 가장 맛이 있었습니다. 노천 카페에서 웬 여성분이 혼자서 멋있게 마시는게 뭔지 물어보고 알게 된 술이 샹그리아였는데, 엄청 시끄러운 술집에 가서 샹그리아를 시켰더니 우리는 샹그리아는 안 팔고 띤또 데 베라노만 판다고 해서 처음 먹게 된 술입니다. 레몬환타 반, 와인 반 씩 타고 얼음을 부어주는 간단한 칵테일이었는데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맛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만들어 먹으니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올해 제가 맛있게 마신 맥주들은 이겁니다. Yuzu Wheat(베트남 수제 맥주), East West Pacific Pilsner(베트남 수제 맥주), Mien Trung(베트남 수제 맥주), 산미구엘 네그라, 기네스 0.0, 칭따오 밀맥주, 프라가 프레시, Dragon Well Spring Tea Wheat(중국 수제 맥주), 켈리 후레쉬 홉 에디션, 버번봉봉 임페리얼 스타우트, 오리온 맥주, 아사히 쇼쿠사이, 제너시스 페일에일(GPA), 제너시스 바이젠, 플래티넘 페일에일, 부산 페일에일, 골드러쉬 맥주, 카나리아 맥주 올해 마셨던 신상 맥주 중 맛없는 녀석들은 이거였습니다. 하늘보리맥주, 크러시, 쿠퍼스 오리지널 페일에일, 사공이호 위트에일, 세븐브로이 대표 밀맥주, 기린 이치방 시보리 당류제로
이 이름들을 다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이 놀라워요.....! +_+
마신 맥주들을 액셀로 정리해두고 있어요. ^^;;; 특별히 맛있었던 분이나 별로였던 녀석들은 따로 표시했고요. 여태껏 500종류 조금 넘게 마셨네요. ㅎㅎ
저도 맥주 목록을 보며 아 이건 저장책이 따로 있구나, 했습니다ㅎㅎ 맥주의 세계란 쉬운듯 어렵기도 한 것 같아요.
딱히 작가님처럼 공부하는 건 없고 그냥 액셀에다 마신 맥주 이름만 적어놓고 있어요. 죽기 전에 1000종류 마실 거 같습니다. ^^
가장 맛있었던 술은 얼마전 수림문학상 시상식 뒤풀이 때 마셨던 사케가 아주 목넘김이 부드럽고 좋더라고요. 좋아하는 작가님들고 함께 오래 수다를 떨며 마셔서 더 좋았던거 같아요. 가장 맛 없게 먹었던 술은 두 살 아들이 콧구멍에 구슬을 넣어서 이비인후과 가서 빼고 온 날 치킨과 함께 먹었던 맥주엿는데 혼비백산 후 수명이 조금 줄어든 날이라 그런가 이게 술인가 물인가 싶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바로 저 아이입니다. ㅎㅎ
그 놈의 구슬은 다들 한 번씩 콧구멍에 집어 넣는군요. 저희 동생은 둘째 코에 들어간 걸 운 좋게 핀셋으로 잘 뺐다고 했고(천운), 저는 애가 막 구슬을 집어 넣으려는데 콧구멍이 작아서 안 들어가는 걸 파리채 블로킹으로 손을 찰싹 때려서 구슬을 날렸습니다. 저도 글 올린 김에 유명한 술 하나 추천 올립니다. 다들 아실 거예요. '닷사이 39' 닷사이가 종류가 여러 개인 거 같은데, 전 우리나라에 있는 '탭샵바' 가서 마시고 오! 사케에서 바닐라향이 나네? 하며 두 잔 마셨더니 24000원...이런 탭샵바 가기 몇 달 전에 일본여행을 갔는데, 일본 가면 한국인들이 꼭 사온다고(아마 면세점에도 있을 거 같은데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애아빠가 난리여서 백화점을 뒤지고 다녔는데 거긴 없었어요. 제가 술맛을 잘 구별을 못하는데, 저 닷사이39는 정말 다른 사케와는 맛이 확연히 달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근데...제가 기억력이 특출나게 나쁜 편인데, 여기에 남겨 주신 술들은 차곡차곡 머리에 잘 쌓여 있네요.
'탭샵바' 라는 게 있군요. 그믐 아니었으면 저는 정말 원시인의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검색해 보니 와인을 테이스팅하면서 조금씩 마실 수 있는 곳인 것 같은데 사케도 있나 보지요? Tap shop bar 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된 건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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