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ㅎ 밤늦게 불켜져 있는 빌딩의 인사팀으로 표현한 게 참 재미있네요. 맞아요. 안그래도 요즘 fMRI 등 여러가지 영상기술로 의식을 관찰하거나 엿보려는 시도가 과연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을지 너무 피상적이고 원시적인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너무 그런 걸 획기적이고 확실한 발견으로 몰고 가는 게 좀 섣부른 김치국 마시기 같아서 걱정되요. 예를 들어서 얼마 전 fMRI를 통해 호기심이 발현되는 과정을 뇌에서 직접 관찰했다고 말이 많았죠. 그런데 문제는 fMRI도 뇌파도 기타 이런 실험들도 결국에는 correlation을 보는 것이지 causation을 확인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이 책 12장에서도 나왔지만 correlation과 causation을 구분할 줄 알아야하는데 요즘 의학 과학 기사들을 보면 correlation과 causation을 거의 같은 것으로 해석해버리는 게 많아서 전 일단 이런 결과들을 좀더 의심하고 더 깊게 들여다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7. <노이즈>
D-29

borumis

소피아
헉, 의학 과학 기사라면 상관성이 인과성이나 방향성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ㅠㅠ

장맥주
3. 부분적인 공감은 윤리의 기반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을까?
(이 3번은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 쓰기 어렵네요. 책을 낼 때까지 좀 더 생각을 다듬어보겠습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사실 의식 없는 좀비 아닐까? 내가 보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이 보는 빨간색과 같을까(다른 사람도 나처럼 고통을 느낄까)? 어릴 때 종종 했던 생각인데, 많이들 하는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질문에 엄밀하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어느 시점에서 얼토당토않은 질문이라며 기각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이며, 나처럼 고통을 느낀다고 여겨야 내가 겪기 싫은 일을 그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의 기반이 생깁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검증불가능한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남성은 분만통이나 생리통을, 백인은 유색인종의 괴로움을, 조현병 환자가 아닌 사람은 조현병 환자의 삶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매우 괴로울 것으로 간주하고 그 고통을 경감하는 방향을 한 사회의 윤리적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끼리는 언어라는 놀라운 도구를 통해 고통을 표현할 수 있고, 그 표현을 보고 타인의 고통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성은 여성의 고통에 대해, 백인은 유색인종의 고통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하는 정체성 정치 계열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저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한 사회의 윤리적 목표에는 합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동물의 고통은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동물은 인간의 언어보다 해석하기 어려운 신호를 보냅니다. 영장류는 신경계가 인간과 상당히 닮았고, 우리가 그들의 표정을 대체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개도 몇몇 감정을 우리가 알아볼 수 있게 얼굴이나 꼬리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고등 포유류라 해도 고래나 돌고래, 코끼리의 얼굴은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입 꼬리 양쪽이 올라가 있으면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감정 상태인지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명확치 않죠. 인간은 그냥 입 꼬리 양쪽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사물을 보면 ‘웃는 인상’을 읽어내니까요.
포유류가 아닌 동물의 감정 상태는 더 알기 어렵습니다. 까마귀와 악어, 상어, 문어는 상당한 지능을 갖춘 동물인데 사람 눈에는 그들의 표정에 별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파충류나 양서류, 어류, 무척추동물들의 얼굴로 감정 상태를 가늠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들도 자신들만의 표현법이 있고 신호를 내보냅니다만 우리는 그 신호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기에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물고기에 바늘을 찔렀을 때 모르핀을 투여하면 아가미를 퍼덕거리는 횟수가 줄어든다든가, 갑각류가 전기 충격을 피한다든가 하는 실험 결과를 보고 ‘물고기와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다’고 해석하는 건 얼마나 제대로 된 해석일까요? 아가미를 퍼덕거리는 횟수가 줄어드는 게 통증이 줄어든다는 뜻일까요, 단순히 운동신경이 느려져서 그런 걸까요? 전기 충격을 피하는 갑각류는 속으로 ‘아악! 저 전기 충격은 죽을 것처럼 괴로워!’라고 비명을 지르는 걸까요, 아니면 ‘썩 내키지는 않더라고’ 하고 투덜거리는 중일까요?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하면 의구심을 표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식물 역시 화학물질을 포함한 외부 자극에 느리지만 분명하게 여러 방향으로 반응합니다. 갑각류가 전기충격을 피하는 걸 보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식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저는 미신을 믿는 것, 무지, 무사유가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믿음은 잘못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우리는 지적으로 성실해져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존재의 고통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지적 엄밀성을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적 엄밀성을 어느 정도나 억제해야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가 합리적인 해석이고, 어디서부터가 근거가 불충분한 상상일까? 저는 분만통이나 조현병 환자의 고통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공장식 사육을 당하는 가축들의 고통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류나 갑각류의 고통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런 의심을 해소하지 못할 때 어류와 갑각류의 권리나 그들에 대한 복지를 주장하는 게 오히려 비윤리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복지에 대해 쓸 자원을 다른 일에 쓰는 것이 더 윤리적일 수 있으니까요.

도원
쓰신 글 읽다보니 '동물권력'이란 책에서 돌고래들이 조련사에 대해 반항하고 태업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돌고래의 표정을 읽기는 어렵지만 이런 행동을 통해 이들이 싫어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구요. 그 책에서 물고기도 고통을 느낀다고 했던 걸로 기억나네요(산천어 축제 비판의 맥락으로 기억합니다).

동물권력 -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동물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한때 인간 문명 밖의 야만적 존재로 취급당했다가 이제는 고통받는 피해자로 끝없이 소환되는 동물에 대한 전복적인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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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이 책 좋았죠! 저도 산천어 부분 기억 납니다. 저도 산천어 축제 반대하는 편이고, 돌고래들의 표정을 바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는 소통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동물의 고통이라는 문제에 제가 좀 더 회의적인 입장인 거 같네요. ^^
큰목소리
흰금, 파검 드레스 문제를 볼 때 인간도 같은 사물을 같은 색으로 보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에 나오는 움벨트 개념이 신기하더라구요.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 극단의 시대,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내는 설득의 과학저자가 2020 미국 대선에 활용된 ‘딥 캔버싱’을 비롯하여 심리 치료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동기 강화 상담’, 설득력 높은 메시지를 분석한 ‘정교화 가능성 모델’ 등 심리학 최신 연구를 망라하고,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설득 전문가 등과 협업한 끝에 분열과 갈등을 이기는 과학적 설득법을 밝혀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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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저는 22장을 읽다가 작가님이 쓰셨던 이 문장이 떠올라 다시 답글을 달고 싶어졌는데요.
"예를 들어 우울증은 분명히 뇌 안에 어딘가가 잘못되어서 생기는 질병이고, 증세도 흔하디흔한데 환자의 자기보고에 진단을 의존해야 합니다. 환자는 굉장한 통증을 호소하지만 외부에서는 아무리 관찰해도 알 수 없어서 꾀병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질병도 많습니다."
이 문장이요.
저도 과거에 정신과를 총 세 곳 정도 방문해 봤고, 시기가 달라서 그런지 의사 선생님들마다 처방하는 약도, 소견도 다 다르시더라고요. 전적으로 제 이야기와 검사지로만 진단(?)을 하시는데,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고. 약 투여량을 늘리시는 것도 괜히 막 무섭고. 특히 항불안제를 처방받았을 때는 내성이나 의존성이 생기는 건 아닌가 싶어 더 무섭고. 저는 상담을 바란 게 아니라 처방을 바라고 갔던 건데(그냥 약을 주세요), 자꾸 막 마음으로 위로를 하시려는 분도 계셔서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나네요.

장맥주
처음 정신과에 갔을 때 어떤 객관적인 검사도 없이 오직 자기보고에 의해서만 진단을 한다는 게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제 상태가 5점 척도 중 어느 것인지 알기 어려웠고요. 우울증은 뇌파로 조금 진단은 가능한가 본데 그리 널리 쓰이지는 않나 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이상합니다. ㅎㅎㅎ

연해
제 생각도 그래요.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아서 정신과를 방문한 것인데, 그런 저를 너무 믿고 진단을 맡기는(?) 느낌이라서... 약을 처방하실 때도, 전적으로 제 이야기만 듣고 "그럼 이 약을 더 넣어봅시다" 혹은 "그럼 이번에는 이 약을 더"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러다 부작용 생기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분들도 그러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정신과 약만 먹으면 뭔가 한템포 느려진 느낌이에요. 삶이 0.75배속으로 흘러가는 것 같달까요. 특히 오전에는 되도록 약을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루는 약 먹고 출근했다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한 박자 늦게 반응하더라는...(쩝)
저도 차라리 뇌파로 딱 찍어서 증상이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봄솔
이런 진단도 잡음에 해당할 것 같아요
의사샘이 부부싸움을 했다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재가 있다거나 하면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될 것 같아서요
하 못믿어 못믿어 ㅋㅋ

연해
으아, 의사 선생님의 사생활이 이렇게 환자에게 영향을. 너무 현실적이라 쓴웃음이 납니다. 인간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에휴, 근데 이건 비단 의료 영역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직군에서는 자주 생기는 잡음일 것 같아요(흑흑).

borumis
그럴 수도 있겠어요.. ㅜㅜ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 스트레스 쌓이는 게 없다죠. 직장 스트레스도 대부분 인간관계 스트레스..

연해
저도 일과 사람, 둘 중 하나랑 꼭 싸워야(?) 한다면 일과 싸우겠습니다.
일은 어떻게든 끝은 나니까요. 근데 사람은... 흠,
회사에서도 일이 많은 건 견디겠는데, 사람이 맞지 않는 건 하루하루가 정말 고통스럽더라고요. 조용조용 살고 싶은데, 굳이 누군가를 괴롭혀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들을 상사로 만날 때면, 어휴.
웰컴 투 헬입니다, 진짜.

borumis
아 전 그걸 편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잡음으로도 볼 수 있겠군요. 그러면 그건 수준 잡음 level noise일까요?

장맥주
저는 신경정신과 약들에 둔하거나 너무 적은 양만 처방받았나 봐요. 들뜨게 하는 약이라고 절대 커피랑 마시지 말라는 약을 받았는데 먹어도 별 느낌이 없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즉각적인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데에는 맥주 한 모금만 한 게 없었습니다. ^^

연해
작가님, 이렇게 또 닉네임을 한번 더 강조해 주시네요. 잘 기억하겠습니다. 맥주 한 모금만 한 게 없...
지난번에도 항생제 왕창 받아 오는 게 좋다는 말씀을 하시더니ㅋㅋㅋ 제가 약을 잘 받는 체질이라 그런 걸 테지요. 제 경우 술에 취한 것처럼 몽롱했던 기억이 납니다. 흐물흐물 젤리처럼요. 그래서 단약했어요. 중독될까 봐서요.
정신 질환과 관련해서 관심이 많은 편인데, 제가 너무 이쪽으 로만 이야기를 활활 태우는 것 같아서 잡음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이 방에서는 뭔가 전문적이고 무게감 있는 토론이 오가는 느낌이라). 하지만 이 대화는 재미있네요?
그건 그렇고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작가님:)

장맥주
‘잡음이 생겼다’고 말하지 않고 ‘대화가 풍성해졌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진심이에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연해 님! ^^

borumis
전 정신도 그렇지만 소화기능이 느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 약 먹으면 살이 찐다는데 전 소화가 안 되서 잘 안 먹게 되다보니 더 빠지는 듯도 했고;; 안그래도 소아정신과는 보통 부모들이 그런 진단? 설문조사지를 작성하는데 이게 아이들만 그런게 아니라 어른들도 그래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정신과에 어른들은 대부분 가족 대동하지 않고 혼자 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겠지만.. 실은 우울증 외에 다른 정신과 질병은 가족들이 더 괴롭고 더 가까이 관찰하면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장맥주
제가 우울증 약 먹으면 살찌는 타입이었습니다. 인생 최고 몸무게도 그때 찍었습니다. 약을 바꾸고 싶어서 의사선생님에게 상의했는데 렉사프로였는지 아빌리파이였는지 제가 먹던 약이 탄수화물에 대한 식욕을 높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그건 사소한 부작용이니 참고 먹으라고... 그런데 몸이 사소하지 않게 불어났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약을 먹고 있지 않은데도 다시 인생 최고 몸무게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췌장 어딘가에서 렉사프로나 아빌리파이 성분이 샘솟고 있나봐요.

연해
사소한 부작용이었지만, 몸은 사소하지 않게 불어났다는 말씀에 웃음이 터졌네요.
근데 저도 의사 선생님들이 약 부작용 말씀하실 때, 이 부분이 항상 궁금했어요. 어떤 약들은 체중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있다고들 하잖아요(꼭 정신과 약이 아니더라도요).
이런 약의 경우 1) 약 자체에 살이 찌게 되는 성분이 있는 것인지(음식을 적게 먹어도 살이 잘 찌는 체질처럼요), 아니면 작가님 말씀처럼 2) 약에 있는 어떤 성분이 식욕을 높여서 많이 먹다가 살이 찌는 걸 말하는 것인지...
대화가 살 이야기로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작가님ㅋㅋㅋ
장난이고요. 진심을 가득 담은(믿습니다!) 다정한 말씀 감사합니다.
작가님도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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