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X포스텍 <STS, 과학을 경청하다>독서모임

D-29
흥미로운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사실 주관적이고 정치적 인식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과학의 문제도 정책결정의 과정에서 '합의회의'나 '민관공동조사단' 등의 이름으로 감시/견제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 동강댐 문제가 거센 견제를 받아 김대중 대통령이 환경의 날에 백지화 선언을 한 일을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민관합동조사단에서 새로 환경 조사를 했을 때 과학전문가집단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낸 지점이 많다고 해요. 그래서 일단 연구의 기획, 계획, 실험의 구성 부터도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에 집중하여 결과를 도출할 것인가도 실험자의 무의식적/의식적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요.
@라다크아저씨 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에 매우 동의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의한 척도로 세상의 법칙을 만들고 그것이 잘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것이 이 책에서 줄곧 말하고 있는 '테크노사이언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객관적 언어. 그것이 과학이 아닐까요.
@김민홍 님, @조예리 님께서 말씀해주신 이러한 내용들이 3장에 대한 대체적인 의견인 듯합니다. 과학이 분류라는 측면, 즉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해서는 동의하되, '객관성의 신화'에 균열을 가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생각이 3장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이 아닌가 싶네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객관성'을 규정하는 지지선에 대한 이야기일텐데요. @조이태 님의 말씀처럼, 이 지지선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담론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저희가 나눈 이야기들이 바로 그런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이 지지선의 설정 범위는 달랐지만, "최소한의 토론"을 가능케 하기 위해 각각의 지지선을 조절하는 과정을 겪었으니..!)
개인적으로 저는 이 지지선을 과학이 아닌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요. @조예리 님이 지적해주신 대로 '과학'의 객관성이 신화화된다면, 한 사회집단의 정당성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학의 보편성에 대한 신뢰는 중요하지만, 그것의 한계점을 받아들이는 것도 상당히 필요해 보입니다. 다른 체계와의 교섭과 교차를 통해 '네트워크'를 조직한다면, 그 순간 한계점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이라는 학문은 여전히 객관적이고 깔끔한, "대리석 조각"같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대리석에 금을 가하게 하고 "이것저것 혼종적인 콜라주"를 만들어간다면 더욱 더 튼튼하고 유용한 학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만이 행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분명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며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4주차) 여러분, 그동안 활발히 토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흥미로웠던 3장을 뒤로 하고, 이제 이 책의 4장으로 넘어갈 시간인데요. 12.2(금)~12.8(목)까지는 4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됩니다. 세계와 과학, 인간과 비인간.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책의 내용도 좋고, 이 주제와 관련한 단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장에서는 시작부터 우리 생활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해서 더 눈길을 끌었는데요. 현재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대학에서부터 "경계를 넘고 지식과 경험을 합치는 융합"(269)이 회자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융합 내지 통합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신가요. 저는 사실 이러한 융합・통합 교육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는데요. 이 토론을 통해 여러 전공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융합이라는 것도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 소통의 장(場)이 마련되었기 때문일 테지만, 이러한 공간을 제대로 만든다면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대신 단순한 융합이 아닌 "협동 연구"(271)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하겠죠.
안녕하세요! 고려대 언어학과 박유진입니다. 저는 융합 내지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자유정의진리라는 다양한 과의 학생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질문하고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1학년 필수교양 수업이 있는데요. 솔직하게 고백하면 처음에는 깊이 없이 수박겉핥기식으로만 배우는 느낌이라서 이것이 과연 효용성이 있는 수업인가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바뀌면서 전공 위주의 수업들을 듣다보니 그때 들었던 자유정의진리 수업이 꼭 필요했던 수업이었구나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만큼 다양한 생각들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쪽 분야의 지식만 배우다보면 그 방향으로 사고의 흐름이 고정되기 쉬운데, 그 당시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과 많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 나누다보니 생각의 폭이 확장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이나 다양한 지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가 많이 복잡하고, 많은 부분이 간학문적으로 얽혀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융합,통합의 수업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박유진입니다. 저는 이번 4강을 읽으면서, 평소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파트가 많아 굉장히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갔던 분야는 요즈음이 조별 과제 기간이어서인지 리더십 부분이었는데요, 확실히 이제는 과거보다 더 다양한 유형의 리더들이 등장하고, 그룹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리더가 다양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리더도 중요하지만 오늘날은 통제형 리더가 아닌 다른 유형의 리더도 많이 나타나는 만큼, 팀원들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조직을 이끌 리더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팀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역시 많을 것이기에 팀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팀원의 자질 혹은 역할이 무엇인가요?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덧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한 곳에 모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대학'이라는 공간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자정진>과 같은 교양수업을 통해 각기 다른 학문의 교차점을 마련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어쩌면 그러한 교양수업이, 현재 우리가 꼭 필요로하는 융합・통합교육의 가능성을 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애플, 구글, 인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에서는 인문-기술 융합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계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도 집중한다는 취지에서였죠. 책에서는 이 융합의 사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 사례들은 대학에서의 융합보다는 기업과 우리 사회에서의 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입니다. 물론 연구자들 사이의 연구가 짧게 언급되지만 한국에서 연구라는 것은 학부생들보다 대학원생들에게 더 익숙한 느낌이여서요. 기업 부분의 마지막 사례는 레고사였는데, 저는 어쩐지 그 이야기의 끝 부분("요즘 레고는 최고의 상종가를 올리고 있습니다"(288))을 읽으면서 조금 꺼림칙해졌습니다. 결국 이 모든 기획과 움직임이 '더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들기 위한 일 같아서요. 인문학은 거기에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둘 사이의 경계를 지워야 하겠지만, 왜 여전히 저는 인간이 비인간 속에 삼켜진다는 생각 따위를 하고 있는 걸까요. 제가 너무 인간/비인간을 구분짓고, 인간이라는, 인간을 다루는 인문학을 신뢰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인지 이러한 융합이라는 것이 꼭 대학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는, 대답을 조금 망설이게 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평소에 정말 겉으로만 보고 "따뜻한 기술"을 개발하고자 로봇공학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진정한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의 관계를 살펴보고, 기술과 인간의 사회에서 인간은 어떤 위치에 있어야하며, 때로는 기술이 인간을 배제하기도 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술과 인간의 네트워크 자체가 인간을 만들어가기도 한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습니다. "과학기술학" 수업과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을 통해 과학도로서 본질적으로 고찰 해나가야할 것 같은 융합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서야 진정한 사람을 위한 "따뜻한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마케팅적으로 이용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본질은 점점 더 사람을 진짜로 위한 기술이 되어가고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과학과 기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계속해서 개발만 되어간다면, 인간의 본질이 사라진 채, 그저 기술에 의해 의미 없이 살아가고만 있는 영화 "월E"의 미래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포항공대 전자과 하현우입니다. 저 또한 융합 교육에 회의적이었던 학생입니다. 융합, 통섭, 통합, 컨버젼스 등등, 그 단어들을 읊는 사람들조차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와 기술이 진일보하는 순간에는 융합의 순간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를 교육을 통해 유도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실제 연구에서의 협력할 때 더욱 느낀 것은, 물리적으로 서로 이해를 함께 가져갈 만한 시간과 펀딩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제반조건이 더 중요했지, 융합 교육에서 소위 얘기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슈슈님이 말씀하신 '더 잘 팔리는 상품'을 위해 인문학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합니다. 정확히는, 더 잘 팔리는 상품을 위해 우리의 모든 지식적 측면이 동원되는데, 이제는 인문학마저도 거기에 휩쓸리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것은 인문학의 실용화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학문인데, 이를 '실용적'으로, 자본 시장에서의 가치화를 하려다 보니 기술-인문학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문학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것과, 인문학을 다른 여러 학문의 경계로 확장시키는 것, 둘 중 어떤 방향이 우리 사회를 위하여 더 좋은 방향일까요?
안녕하세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정혜은입니다. 질문을 올립니다. 책의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과학에서의, 더 세부적으로는 과학자 개인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과학자 개인이 도덕적 책임을 느끼고 연구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지만 실제로 ‘비도덕적인’ 연구를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저자 홍성욱 교수님께서는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새로운 대항 네트워크를 만들어 도덕적 책임을 완성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학적 이해가 중요하다고 마무리가 됩니다. 완전히 동의하고, 그렇기에 과학기술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약간의 의문이 남았습니다. 도덕적인 문제는 인간-비인간 네트워크 안에서 수도 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처 감지하지 못한 것들까지 포함시킨다면 더욱 많을 것입니다. 네트워크가 몸집을 불린다면 더욱 많아질 것도 같습니다. 그때마다, 모든 문제마다 대항 네트워크를 만들어 책임을 완성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물론 저는 질문을 드리고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적의 해결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의 질문이 책 마지막 4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질문이고, 아래는 책 전반에 대한 잡다한 질문들입니다. 인간 사회와 문명이,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공은 더 잘게 쪼개지고, 한 명의 전문가는 더 깊고 좁은 지식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우리는 (적어도 저는..ㅎㅎ)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융합이 필요하다면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손대지 않은 연구 성과를 향해 도약하기 위해서는 작은 단위의 연구보다는 커다란 자원이 동원되는 연구가 필요해진 것은 자명한 사실 같습니다. 이렇게 인간-비인간 네트워크가 점점 더 커져가는 흐름 속에서 학제적인, 거대과학 연구들이 등장하고 수행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데, 그 가운데 개별 인간들은 특별히 (이번 책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신경을 써서 의식하지 않으면 나의 연구와 실험이 네트워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더 많은 비인간과의 결합이 필연적으로 인간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연구를 통해 네트워크에 더 많은 비인간들이 포함되게 되면서 인간 단위에서는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연결이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고립, 너무나도 비대해진 비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이 존속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교양 수업에서 접하게 된 ‘포스트 휴머니즘’에 관심이 있어 자주 생각해보곤 하는데,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이분법 자체가 더 이상은 효용이 없는 구분이 아닐까요? 물론 책에서도 인간-비인간의 구분이 실험실 속에서는 무너진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이보다도 더 인간-비인간의 구분이 사라져야, 우리가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점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존속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조차도 지극히 인간 위주의 생각이긴 합니다. 함께 책을 읽고 재미있는 토론을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추가로 토론에 또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인사를 드립니다:)
@다쿤 님의 말씀 정말 흥미롭게 잘 들었습니다. 아직 저로서는 '인간-비인간의 융합'이 잘 와닿지는 않지만, 과학기술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적어도 자본주의적 사고 아래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겠죠. 인간-비인간 사이를 채우는 기술이 정말 '따뜻한 기술'이라면, 우리의 삶 역시도 지금보다는 꽤나 괜찮을 듯합니다. 그런데 어떤 기술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조금만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너무 부끄럽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기술을 떠올리면 차가운 로봇이 어떤 감정의 변화도 없이 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만 떠오르기에..ㅠ_ㅠ) 그래도 덕분에 재미있는 상상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려대 언어학과 김예윤입니다. 아래는 제 질문입니다.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저는 융합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건축이 공학으로 분류되는 반면, 유럽권 국가에서는 인문학으로 분류됩니다. 어떤 분야에 대한 분류가 다르다는 것은, 그 분야의 어느 부분에 더욱 중점을 두느냐가 관건이겠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하나의 분야를 이해하고 터득하려면 인간이 분류한 다양한 학제적 분야들을 관통한다는 것입니다. 책의 4장에서도 이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언급하였는데요. 융합은 단순히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하나의 분야와 다른 분야가 겹쳐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대표적인 예시로 거대과학을 지목하였습니다. 특히, 위계와 기밀을 중시하는 군대와 자유로운 토론을 중시하는 과학을 한 장소에 묶는 것과, 그들을 ‘칸막이화’하여 각자 자신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도록 기밀 유지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도 책의 내용에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융합과 협력은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러나 책에서 언급하였듯이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융합이라는 일종의 ‘방법’ 또한 그 부작용이 존재할 것입니다. 저는 인류의 역할이 이러한 부작용을 미리 알고 대비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그 부작용으로 거대과학은 방향이 잘못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어 생각이 다르기에 (원자폭탄의 성공에 대해 축하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잘못’을 돌이킬 수 없는 데에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된 것 외에 또 다른 융합의 부작용이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대비해야 할까요?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장을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집중호우 님의 말씀대로, ‘사회와 기술이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융합이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교육을 통해 유도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이나 공감합니다. 인문학의 필요성을 외치면서, 인문학 자체를 존중하지 않고 그것의 ‘실용화’만을 고집하는 사회. 저는 이러한 사회이기에 더욱 더 인문학의 본질적 가치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보는 쪽인데요. 인문학을 다른 여러 학문과 결합시키는 것 또한 유효해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변화나 발전의 기치로서 인문학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학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이 인문학적 사고를 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힘드네요 ㅎㅎ 이에 대한 @집중호우 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대체적으로 여러분들 모두 융합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동시에, 현재 진행중인 방식으로는 괜찮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계시는데요. 저 역시 여러분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합니다.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극대화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습니다. 이전부터 융합교육 및 융합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우리'를 말하는 것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 오히려 더 강력하게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인식이 생성된 것도 같습니다. 실제로 융합이라는 것 자체가 여러 요소들의 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도 하고요. @박유진 님이 조별과제를 예로 들어 말씀해주셔서, 저도 덩달아 우리 사회 전반을 돌아보게 되네요 ㅎㅎ 리더와 그 팀원들로 구성된 하나의 프로젝트 팀은, 어떻게 보면 대통령과 국민으로 구성된 한국사회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죠.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리더가 팀원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할 때, 그것을 꼭 잡아줄 팀원의 손이 없다면 그 프로젝트를 지속시킬 수 있을까요. 프로젝트가 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 끝까지 그 프로젝트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 그것이 저는 팀원의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의 프로젝트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도 그 팀을 구성하고 있는 팀원들입니다. @김예윤 님이 말씀해주신 '인류의 역할'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그것에 맞서면서 하나하나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토록 공포심을 자극했던 코로나19도 이겨낸 것처럼요. '잘못'된 것을 돌이켜 생각하고 더 이상 그것이 '잘못'이 아니게끔 만드는 것이 인류가 나아갈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거창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융합이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왔는데요. 비대해진 비인간들을 인간이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무척이나 컸던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 보고자 다른 책들을 몇 권 찾아 읽어 보았는데요. 저의 이러한 생각 자체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ㅎㅎㅠ 그래서 최근에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난 “탈-인간중심적 선회”(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아카넷, 2015, 78쪽)가 요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중심적 주체가 아닌 탈-인간중심적 주체, 즉 생명 자체의 역동적 힘(조에)를 강조하는 ‘포스트휴먼’ 주체는 인간/동물, 죽은/살아있는, 중심/주변 등의 분리를 흐리게 하고 ‘생명’을 주된 목표 대상으로 취해온 물질들과의 연대를 꾀합니다. 제 이해를 도왔던 부분을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탈-인간중심주의의 포스트휴먼 차원은 해체적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해체하는 것은 종적 우월성이다. 그것은 또한 동물과 인간-아닌 존재들의 생명인 조에와 범주적으로 구별되는, 안트로포스와 비오스와 인간 본성에 대해 남아 있는 어떤 개념에도 타격을 가한다. 대신 앞으로 나오는 것은 내가 이미 주장한 것처럼 확장된 자아의 체현된 구조 바로 그것의 자연-문화 여속체다. 이러한 선회는 창조의 왕이라는 인간에 대한 지배적인 형상에서 벗어나는 ‘인간학적 대탈출’이다. 그 종에서 일어나는 어마어마한 혼종화다.”(88쪽) @정혜은 님의 말씀(“비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이 존속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은 저 역시도 계속해서 고민한 것들이었는데요. ‘포스트휴먼’과 이 질문들을 나란히 놓으면 더욱 더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인간/비인간의 구분을 철저히 파괴시키고 “인간-아닌 존재들”과의 연대를 실천한다면, (거대한 기계가 인간을 삼켜버릴 것 같은) 미래에 대한 공포를 덜 느끼고, 비인간과 함께하는 또 다른 삶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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