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문학적 믿음에 대한 예언] 시에 대한 얘기가 유독 많습니다. 보르헤스는 단편소설로 유명세를 얻긴했지만, 사실 보르헤스는 초창기부터 시집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시를 쓰면서 생을 마감한 시인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응할 목적으로 자신의 "문학적 믿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 글이 제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만, 몇 번 읽다보니 희미한 연결선이 보이기는 합니다(제가 제대로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먼저 말하면, 그 연설선은 작가가 처해 있는 '1인칭의 자리'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보르헤스는 말년에 명성을 얻어서 군중 앞에서 강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강연은 그 형식상 한 명이 연단에 올라서 군중에게 말하는 방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강연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그 형식성에 불구하고, 보르헤스는 늘 자신이 군중을 향해서 연설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고 있음을 역설해왔습니다. 이것이 "모든 문학은 결국 자전적"이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이고요. 어느 자리이든 우리는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납니다. 따라서 보르헤스가 시나 소설에서 말하는 바는 지극히 보르헤스 자신의 일천한 경험에 국한되며, 이것은 자랑할 만한 일도 부끄러워할 만한 일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협소한 로사스 시대의 오래된 조국을 향수하고, 자신이 읽은 편협한 책을 인용하고, 자신이 유년에 경험한 가족의 크리오요 전통을 말하고, "우르키사로 가는 96번 전차"에 대해서 씁니다.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더 잘 안다고 말하면서 보르헤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장했던, 폭넓은 비평적 관점이 아니라요. "파트리시오스로 가는 56번 전차"도 아니고, "양철로 만든 판자집"(162쪽)이나 "어휘의 다양성"(168쪽)에 기대어 말하는 게 아닌 것입니다. "모든 시는 한 주체가, 한 개성이, 한 인간이 체험한 것을 남김없이 고백하는 것이라고 이미 밝혔다."⏤본문 167쪽. 보르헤스에게 시는 "일종의 내밀한 고백"이며, "모든 고백의 전제는 듣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말하는 사람의 솔직함"이라고 다시 강조합니다. 문학적 재능이란 고백할 수 없는 것을 고백하는 재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천한 자신의 경험과 습관과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로 태어나서 한평생 나로 살다가 나로서죽습니다. 그 주관성을 명확히 인지한 다음에 글을 쓰는 것과 함부로 나 자신을 벗어나서 자신을 객관으로 포장하여 글을 쓰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시라는 이 편협한 장르는 그 특유의 주관성을, 우찌보면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공용 우물인 언어를 통해서 굉장히 첨예하게 보여주는 것이고요. 따라서 한 사람은 한 편의 글을 쓸 때, 내 주관성 바깥에 있는 객관에 함부로 손을 뻗어서 더듬으려고 할 게 아니라, 내 주관 안에서 객관된 자리를 타인의 자리를 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가 이 글의 첫 문단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문학적 믿음에 대한 예언”을 저는 일단 이렇게 읽었습니다.
어휘의 다양성은 또 다른 오류이다. 모든 학자가 다양성을 권장하지만 나는 다양성은 결코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어들이 완전히 정복돼 생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전이 제공하는 외견상의 평판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높은 골목길을 여기저기 쏘다니지 않았다면, 변두리 지역을 마치 사랑하는 여인인 양 갈망하고 겪어 보지 않았다면, 가게 모서리의 토담과 들판, 달빛을 보고(寶庫)처럼 느껴보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변두리 지역'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6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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