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실> 함께 읽기

D-29
동륜과 미생이 하고 다니는 짓을 보니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아버지의 후궁까지 넘보다가 결국 개죽음을 당한 동륜과 눈에서 콩깍지가 한겹 벗겨진 황제의 분노를 피한 처신을 하는 미실의 처세술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봄이 이울어도 그녀에게는 가을, 여름이 다가와도 그녀에겐 헤어날 수 없는 가을이었다. 그녀는 가냘픈 목을 꺾어 무정히도 돋아나는 새 이파리를 마냥 바라보았다. 울울창창한 상수리나무 아래 후두두 누리(우박)인 양 떨어지던 도토리, 지난 생애 사랑한 어느 정랑이 던져 보낸 신호인가.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328쪽, 김별아 지음
보명의 운명도 참 기구합니다. 미실 때문에 운명 꼬인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자기들이 먼저 미실에게 잘못한 게 있는데, 보명은 그런 것도 없네요.
죄없이 운명에 당하는 운명도 있지요. 길흉화복이 꼭 인과관계가 아니더라고요..
아버지의 여인을 돌아 가며 농락하던 세자 동륜이 떠났습니다. 개한테 물려 허망된 죽음을 본 진황제의 분노도 비켜가는 미실의 출중한 처세술 "조종하되 조종당하지 마라" 경지에 이른 것 입니다. 사도 황후의 도움이 큰 공덕을 일으킨거죠
자기가 불러들인 위기지만 자기가 수습하는 능력이 대단하지요 ㅎ
누이는 미실을 수국 같은 여인이라 하였다.수국의 이명은 칠변화(七變花)이니, 처음에는 희게 났다가도 어떤 것은 분홍에서 다홍으로, 또 어떤 것은 하늘빛에서 파란빛으로 그 색깔을 바꾸어 피기 일쑤였다. 꽃 빛처림 다변하는 절개 없는 여인 이라 하나, 누이는 육친에 대한 애정으로 눈이 가려져 그 너 머의 마음까진 헤아리지 못한다. 물이 되어 쓸리며 흘러도 좋고 그대로 흔적 없이 스미고 말라버린대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을.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294~295p, 김별아 지음
수국이 환경에 따라 여러 색으로 변하는 특징을 미실의 다양한 얼굴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모습으로 연결했다..라고 생각합니다. '누이는 육친에 대한 애정으로 눈이 가려져 그 너머의 마음까진 헤아리지 못한다'는 표현은, 미실의 복잡한 내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판단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세종의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물이 되어 쓸리며 흘러도 좋고 그대로 흔적 없이 스미고 말라버린대도 어쩔 수 없는 마음' 부분은 미실의 행동이 단순히 개인적 야망 때문이 아니라, 미실을 복잡한 시대와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생존 방법과, 고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 느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이 담겨 있는 수국의 이미지처럼, 미실 역시 아름다움과 비극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수국에 대한 이 표현을 접하고서야 저희 집 뜰에 핀 수국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분명 흰색으로 피는데 하늘빛으로 변하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네요.
소설에 꽃이 많이 나오는데, 꽃 문화사를 따로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토종도 있지만 시대별로 한국에 들어왔던 꽃이 다르거든요. 독자들은 모르고, 꼭 아실 필요는 없지만 졸작 속에서 꽃 한 송이도 이유 없이 피지 않습니다^^
6장까지 읽다 보니.. *질문 : 작가님께서 [미실]을 드라마나 극영화로 제작 할 것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 합니다.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 보니 작년 2023년 여름에 '미실'이 드라마로 제작 된다는 뉴스가 발표 되었는데요.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력 하기 때문 입니다.) *중간 소감 : 한 줄 한 줄 문체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스토리에 (사랑과 죽음의 보편적 테마에 관한) 상상력과 완성도의 탑을 쌓으려는 건축구조물을 들여다 보는듯 합니다. 소설을 쓰기 위한 <1.인물 관계의 설계도, 2. 스토리 구조 쌓기, 3. 직설적인 문체 4. 소설 자료 수집 5. 밀고 가는 힘> 등에 대한 모범답안을 저에게 제시 하는 것 같아 배우면서 읽습니다. 남은 장을 마칠때까지 잠을 설쳐서라도 완독 하고 싶습니다.
어머! 저는 지금까지 고현정이 미실 역할로 나왔던 드라마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냥 같은 시대 같은 인물을 다룬 다른 드라마였군요. 하긴 그 드라마 제목이 미실이 아니라 선덕여왕이긴 하더라고요.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선덕여왕보다 고현정의 미실이 더 임팩트가 강해서... 드라마 제목도 <미실>인 줄 알았네요. ^^;;
뭐... 분명히 졸작을 참고했다는 혐의(?)가 있지만 그냥 넘어갔습니다. 주변에서 더 열받아 해주셔서 ㅎ
너무.... 상황이 열받을 법한데요? 정말 당연이 이 소설이 원작인줄 알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어어ㅡ.
영상화나 2차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어요. 영화 판권은 두 번 팔렸는데, 2005년에 세계일보사가 저랑 상관없이 팔았고(제가 저작권료를 못 받았다는 말씀 ㅎ), 작년에 리디에 ott제작 등으로 계약했는데 웹툰부터 만든다는 게 아직 소식이 없네요 ㅎ
오랜만에 등장한 세종! 쓸쓸하고 고아한 분위기가 아름답습니다. 사다함과 세종이 미실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보면서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감탄이 듭니다. 간음한 남녀는 돌로 쳐죽이는 것이 법이었던 구약 성경의 모습도 떠오르고요. 시대의 평균이 그리 다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말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빌어줄 수 있는 사랑, 제가 하고 싶은 사랑이기도 합니다. 고등학생 때 배운 처용가도 생각이 나네요.
사랑, 이라는 이름에 너무도 다양하고 스펙트럼이 넓은 감정과 욕망이 포함되지요.
'파란 그리고' 장을 읽고 나서도 이 장의 제목을 왜 이리 지으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의 여자까지 넘보는 동륜의 죽음으로 그 모든 것이 그저 그저 파란에 그치고 그 어떤 파장도 없이 동륜이란 한 인간은 육신과 영혼 하물려 이름까지도 지우고 가 버렸군요. 계절이 바뀌어도 그와 함께 한 보명만이 그 가을이란 계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동륜은 일방적인 사랑의 전형으로 그렸습니다. 어리석지만 또 그런 이에게도 보명이라는 순애보는 있지요.
소설속 인물을 현실세상으로 끌어내 봅니다. 결혼적령기 아들 ,딸을 둔 엄마는 딸(성질이 좀 지랄맞은 구석이 있음)이 세종과 같은 남자를 만나면 좋겠고 아들 ( 여리고 휘둘리는 성품)은 미실같은 여자를 안 만나길 바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개정 판이 나오기 전 미실을 읽을 때는 직장을 다닐 때라 미실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어서 책을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조직운영에 딱맞는 리더상이다. 냉철함 ,통찰력,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설득력있는 화술 ... 여성을 강력한 인물로 그리는 작가님의 작품에 매료되어 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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