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실> 함께 읽기

D-29
[사랑의 종언] 소설의 시작점에 저는 21세기 어느 해 12월 겨울의 거실에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 보지 않고, 이 시대의 감각과 관점으로 읽은 1,500년 전 대원신통의 사회는 핏줄과 근친간의 성애로 결합한 미개함 이었습니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이제 마무리 시점의 저는 어느새 인물들이 살아 내야 했던 시대의 주변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5-6세기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젠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미 소설 속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 입니다. “누가 말했더냐? 백 일 붉은 꽃이 없고 천 일 좋은 사람 없다고…설원이 나에게 남은 목숨을 주고 갔구나. 내가 정녕 이 선물을 받아야 옳단 말인가?" 라며 인생의 허무함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깨닫는 장면은 모든 것들이 제 자리로 돌아 가는 듯한 반전으로 읽었습니다. 시대가 진화 한다 하여도 1,500년을 건너 뛰어도 인간이 추구하는 사랑과 힘은 변하지 않음을 꺠닫습니다. 설령 이 시대를 살아 본 제가 그 시절로 들어간다 하여도 말이지요. 그러나, 달라도 너무 달라진 이 시대를 살면서, 더 고른 세상을 위하여 질문하는 능력과, 이기심의 경계선을 넘어 주변 사람들의 편에 서 보려는 행동이야말로 1,500년 이후 인류가 더 건강하게 진화하게 만드는 힘이 되겠지요. 미실은 독자에게 삶과 사랑을 질문하고, 독자가 읽으며 답을 찾아 내도록 마음의 근력을 선사하는 황홀한 선물이군요. 작가님 덕분에, 상상력의 문장들이 표정 없는 역사에 생명을 불어 넣은 소설을 읽었습니다. 실은 이 소설이 처음 발간 되었을 때, <삼국사기+삼국유사+화랑세기> 시대를 읽을 요량이었으나 일에 찌들어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느지막이 미실을 맘 잡고 읽어서 감사하고 행복한 연말입니다. 해가 가기 전에, 미실의 시대 선량들에 못 미친 여의도의 모지리 군상들이 제 정신을 차리길 바라며 남은 마지막 장을 읽어 내려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보는 황홀한 경험, 신라인들은 진정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았을까 하는 질문이 간절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미실은 독자에게 삶과 사랑을 질문하고, 독자가 읽으며 답을 찾아 내도록 마음의 근력을 선사하는 황홀한 선물" 와, 표현이 정말 멋져요! 독자님들의 깊이 있는 감상을 공유하며 읽을 수 있어서 더 풍성한 경험이었습니다.
<미실> 이후로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여럿 썼는데, 가장 힘을 기울였던 것이 단 한순간이라도 독자가 그 시대를 사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딱 우리 시대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것만이라면 삶이 너무 얄팍하게 느껴져서요.
미실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요? '궁주는 과연 색을 나눈 모든 사내를 사랑하였소?' 라는 어린 진평제의 질문에 미실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색을 나눈 모든 사내를 사랑했다는 미실의 대답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 말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미실의 사랑은 세종이나 사다함 같은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이후로 만난 사내를 사다함을 사랑하듯 사랑하지도 않았겠지요. 미실의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다함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렇게 죽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진흥왕이 무너질 때 오히려 꼿꼿하게 일어서는 정신. 출산을 하면서 어미가 되는 기쁨을 받아들이고, 늙어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흐르는 세월이 때에 맞추어 안겨주는 즐거움을 살필 수 있는 사랑. 자기 즐거움을 살필 수 있기에, 다른 사람도 보살필 수 있는 사랑. 색을 나눈 모든 사내도 그런 의미에서 사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안에 상대를 이용하고자 하는 계산이 없지 않았지만, 잠자리를 나눌 때만큼은 다른 생각 없이, 거짓 없이 서로의 즐거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초롱같이 정면을 응시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주어지는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사랑. 자기 죄에 무너지지 않고 그 죄 속에서 내 삶에 있는 진정 좋은 것을 볼 수 있고 긍정할 수 있는 것도 겸손함이고 생에 대한 진실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가 겨우 이해한 미실의 삶과 욕망은 '자유의지'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실의 자유의지는 마음껏 펼쳐졌던 것 같은데 역으로 역사적 테두리 안에서만이었을까요...
그녀의 몸에는 더 이상 붉은 꽃이 피지 않았다.꽃을 잃은 가지는 급격히 쇠락했다. 미실은 한번 꺾인 기신을 다시 곧추세우지 못한 채 밤마다 열이 끓는 몸으로 이불이 젖도록 땀을 흘리며 불면에 시달리곤 하였다.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면 무엇이 되어야 하나,이대로 오도카니 남겨진채 시시각각 다가오는 사마의 방문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미실 .무삭제 개정판 478 쪽 》 김별아 지음 한 시대가 그렇게 저물었다.그 순간 가장 아름다웠던 사람들을 따라 시대가 갔다.미실은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그녀 역시 왕성을 떠나 영흥사로 가기로 한 것이다.아무것도 거치적거릴 것이 없었다. 하종,옥종,애송,반야,난야,수종,보종,보화...... 여덟 아이들은 애초부터 그녀의 소유가 아니었다.휘둘러 조종하려 움켜쥔 적 없으니 풀어 돌려 놓을 바도 없었다. 《미실,무삭제 개정판 480 쪽》 김별아지음 육체의 아름다움이 무기였던 여인에게 그 아름다움이 사라 짐에 연연해 하지않고 자식 에게 조차도 집착 하지않는 미실의 통큰 강단이 소설 내내 보여준 미실의 성품을 완성시키는 듯 합니다. 외적인 것이 사라진 곳에 내적인 것을 채우려 영흥사로 들어가는 결말이 독자에게 까지 죽음으로 가는 공허함보다는 충만함으로 채워 주었습니다. 소설 미실을 읽는 동안 이시대를 사는 여성에게 주어진 구조적 억압으로 부터 해방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대는 지금처럼 도덕과 제도가 지배할 수 없는, 더 자유로워서라기보다 생산력이 낮아서,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질문은 다시 해봐야겠지만, 그것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실을 읽으면서 보바리 부인이나 목로주점, 춘희의 여자 주인공들이 떠올랐어요. 특히 보바리 부인이 미실과 캐릭터가 비슷한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좀 답답하다는 점과 ^^; 재기발랄하고 수완이 좋은 미인이라는 점이요. 그러나 근대 소설의 여자 주인공들이 자신의 도덕적, 인격적 약점과 경제적 사회 구조적인 압력에 의해서 비참하게 몰락하는 데 비해 미실은 기존의 사회 윤리를 벗어난다는 점은 공유하면서도 난관을 수월하게 헤쳐나가 종교적인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는 영웅소설이나 고전소설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종교나 윤리에 짓눌린 중세나, 그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도전으로 벅찼던 근대와 다르게, 고대니까요. 영웅소설과 고전소설의 자유로운 '뻥'도 참고가 되었습니다ㅎ
평범한 여자를 사랑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너무 아름답거나 추하지도, 너무 지혜롭거나 어리석지도. 너무 품은 뜻이크거나 경망하지도 않은 여인을 만나 너무 행복하거나 불행 하지도. 너무 살갑거나 뜨악하지도 않게 살았어야 좋았을 것이다. 어머니와 누이에게 순응하여 법속한 생애를 이러구러 살아내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뒷생각일 뿐. 그는 애초부터 자신의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 었다. 과연 사람은 얼마만큼이나 스스로 선택하여 살 수 있을까.모든 일이 다만 이미 정해진 바대로 홀러가는 것은 아닐까. 기를 쓰고 거슬러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마저도, 오직 자기의 의지로 선택했다고 믿는 것마저도 다만 정해진 운명, 정해진 선택은 아닐까. 운명과 선택, 운명의 선택, 그리고 선택의 운명......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471~472p, 김별아 지음
평범한 여자라면 눈길이 가지도 않았을 거 같아요....^&^;;
세종이 자신이 평범한 삶을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회한, 그리고 그마저도 불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과 삶의 선택지가 애초부터 없었다는 인식은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운명과 선택, 운명의 선택, 그리고 선택의 운명" 부분은운명과 선택 사이에서 두 개념이 서로 얽히고 교차하는 복잡한 생각을 나타낸 문장인 듯 보입니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체념하며, 그 체념 조차 운명에 포함된 것이지 않을까 싶고, 인간의 삶과 사랑,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진정한 자유인지, 아니면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주제어를 정확히 짚으셨네요. 사랑(삶)과 죽음이라는 테마를 관통하는, 운명은 영원한 질문거리지요.
만추 사랑은 그런 때에 온다. 별것 있겠느냐 빈손을 내보이며 능청을 떨 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며 풀 죽은 시늉을 할 때 삶의 목덜미를 왁살스레 물어뜯으며 사랑이 온다. 아무 때나 어떤 길에서나 복병처럼 느닷없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사랑은 살아가는 한 언제고 온다.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314쪽, 김별아 지음
아마도 우린 사랑은 아주 특별하게 특별한 순간에 올 거란 착각을 하고 살아왔지만 지금 제 옆의 옆지기와의 사랑도 이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풀 죽은 시늉을 하며 한 고백으로 사랑이 시작되고 이리 먼 칠레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렇게 아무 때나 오는 사랑을 우린 특별한 때라고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아, 칠레... 정말 먼 곳에서 사랑을 가꾸고 계시군요. 번개모임에서 뵐 수는 없어도 이렇게 함께한 시간을 갖게 되어 반갑습니다^^
시차가 12시간이 나서 진도 맞춰 글올리기가 늘 한 템포 늦기도 했어요. 그래도 한 분 한 분의 글을 읽은 후 의미를 되새기며 그 장을 다시 읽는 재미도 솔솔했습니다. 제 평생 복습까지 해 가며 정독한 소설책은 처음이네요. ㅎㅎㅎ
풀 죽은 얼굴로 한 고백에 칠레까지.. 어쩜 소설 대목과 딱 맞는 상황이네요. 예기치 않게 시작된 특별한 사랑이네요 ❤️
이름 앞뒤로 정인 데다가 정까지 많아서 그만 저의 모성애가 가슴팍을 확 제끼고 발동했나봐요. 예기치 않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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