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다시 한번 읽어볼게요.

D-29
청소년 시기 때 <소년이 온다>를 울면서 읽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읽을 때도 울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을 일으킨 사람을 좋아할 수 있지 분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 정치 성향에 대한 정보가 더 생기고 (진보와 보수) 그믐에서 <바른 마음>을 읽고 나서는 그럼에도 내 상상 밖의 이유들이 사람에겐 있구나 싶다. 그럼에도 모르겠긴 하다. 이해할 수 없어서 쉽게 미워지기만 해서 걱정이다. 어떻게 분노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이 뭉뜩하다. 어떻게 더 날카롭게 만드는 건지... 작은 거에 빗대서 섣불리 이해해보려고 시도하다가 크고 뻔한 말로 퉁치게 된다. 공부머리는 없는 듯. 어떻게 더 생각이 깊어지는지 자꾸 답답하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한강 작가님 노벨 문학상 연설문 中
책을 받아든 첫인상은 어땠나요?
책이 예쁜 걸 좋아하지만 한정판이나 리커버로 책을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요. (제 집이 아니라 짐이 많아지는 게 부담이라 실물 책을 잘 안 갖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는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리커버판에 현혹되어버렸답니다. 짙은 초록색의 양장본이 단정하다고 느꼈고, 안개꽃이 틀 바깥에 몇 송이 빠져나와 있는 것도 섬세하다고 느꼈어요. 금색 명조체로 쓰여진 제목이 아름답다고도 생각했고요.
책을 아직 많이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내용일 것이라고 상상하세요? 혹은 어떤 내용을 접하기를 기대하세요?
사실 이미 과거에도 읽은 책이라 책을 읽지 않은 상태가 가물가물하긴 한데요. 5.18 광주에 대한 실상을 좀 알고 싶다고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오늘까지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알려 주세요.
이 책을 다 읽었는데, 엔딩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순서대로 인상 깊은 문장을 메모하고 있는데 추후에 남기려고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소년이 잘 느껴져서, 그래서 너무 슬펐어서... 입니다.
작품 중 가장 공감이 가는 캐릭터는 누구입니까?
출판사에서 일하는 은숙언니가 제일 공감이 갔어요. 아무래도 같은 성별에 같은 나이대로 보이니 그 실루엣에 저를 더 담기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작품 중 가장 공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는 누구입니까?
작품 내에서 공감 가지 않는 캐릭터는 없었어요. 도청에 끝까지 남은 아이, 죽은 가족을 찾아 시체를 확인하는 사람들, 검열 받은 원고를 챙긴 출판사 직원... 각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 책이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보니, 제가 자꾸 소설 바깥에서 이 일을 자행한 사람, 이 일을 폭동, 반란이라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내가 이 소설에서 느끼는 슬픔이 그 분들께는 무엇인 걸까. 나에게 당연하게 이해되는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아니라는 걸 나는 어떻게 감당하고 입장을 정돈할 수 있을까... 고민 되고 혼란스러웠어요.
이 책에서 처음 만난 단어나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이 질문을 지정할 때 즈음엔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책을 완독하고 온라인 독서모임도 하고 난 이후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일단 문장 수집을 하다가 발견하면 남겨볼게요.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는데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우듬지'라는 단어를 처음 만났던 건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듬지: 나무의 꼭대기 줄기.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다른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한강 작가님의 다른 책들이 떠올랐어요.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지만 아직 못 읽은 책들.
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작가의 핵심 작품들을 큐레이팅하여 한 권으로 엮은 스페셜 에디션 ‘디 에센셜The essential’. 문학동네에서 출시하는 디 에센셜 한국작가 편은 ‘센세이션’이라는 키워드 아래, 독자들에게 강렬한 독서 경험을 선사하며 한국문학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가를 선정한다. 첫번째 작가는 한강이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 시인선' 438권. 인간 삶의 고독과 비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진실과 본질적인 정서들을 특유의 단단하고 시정 어린 문체로 새겨온 한강의 첫 시집.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가운데 60편을 추려 이번 시집을 묶었다.
키가 자라고 싶었지. 팔굽혀펴기를 마흔번 연달아 하고 싶었지. 언젠가 여자를 안아보고 싶었지. 나에게 처음으로 허락될 여자, 얼굴을 모르는 그 여자의 심장 언저리에 떨리는 손을 얹고 싶었지.
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P.57, 한강 지음
그가 손을 쳐들었을 때, 설마 때리는 건가, 생각하며 앉아 있었던 그녀 자신을. 목뼈가 어긋난 것 같았던 첫 충격을.
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P.70, 한강 지음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숨기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가.
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P.77,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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