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애정 읽기

D-29
수전 그리핀- 모범적인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는 숫처녀였다. 모성은 일종의 무성애無性愛을 함축한다. 엄마는 순수의 상징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엄마들이 강요받는 희생이 또 하나 있다. 엄마는 반드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희생해야 한다.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수전 그리핀의 <페미니즘과 엄마됨>은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줄을 쳤다. 수전은 엄마가 되면서 겪은 어려움을 낱낱이 밝힌다. 모성은 사회적으로 강요된 것이며 환상이고 결국 엄마와 아이 둘 다 함정에 빠졌다고 말한다. 아이 때문에 세시간마다 깨고 모든 일상이 저당잡혔던 세월이 지난지 꽤 됐지만 나는 아직도 그 시간의 흉터로 괴로워한다. 그 때 누가 이렇게 말해줬다면. 적어도 죄책감은 덜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수전 그리핀- 우리는 어느 정도 레지스탕스다. 해야 할 일이 끊이질 않아서 생각을 분석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잠깐의 깨달음만이 허락되며, 이것마저 방해받지 않는 짧은 틈을 타 빨리 기록해야 한다. 그렇게 줄줄이 적어둔다.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수전 그리핀- 왜 여성에 관해서 우리는 언제나 사회구조가 아닌 개인을 비난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실패를 개별적인 삶 속에서 찾고 “이러한 상황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가.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제인 라자르- 하지만 진의 집은 달랐다. 외적 현실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이 드러나 있었다. 진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너무나도 격렬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때때로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지곤 했다. 진은 바닥을 쓸었지만 쓰레기의 반은 항상 그대로 남아 사람을 미치게 했다. 설거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접시는 절대 깨끗해지지 않았다.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우리집, 나의 내면세계를 들킨 것 같았다. 뜨끔.
제인 라자르- 애나가 말했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네가 아이 봐주는 날이잖아. 하지만 아침에 애들을 두고 나가는 게 힘들어.” 우리는 언제나 말이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배웠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가성을 받아들이는 능력, 그것이 바로 모성애가 아닐까.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에이드리언 리치- 내 남편은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아이들을 원했고 (학계에 몸담고 있는 50대로서는 드물게) 기꺼이 “도우려”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도우려” 하는 것은 너그러운 행동으로 이해되었고, 가족 내에서 진짜 일은 남편의 일이자 남편의 직장생활이었다. 사실 우리는 수년간 이 문제를 문제 삼지조차 않았다. 나는 작가가 되려는 나의 몸부림을 사치이자 별난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내 일은 대개 돈이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글을 쓰기 위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심지어 돈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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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쓰인 글이다. 2020년대지만 이 지점에서 그다지 앞으로 나가지 못한 나와 주변의 여러 여자들을 본다.
에이드리언 리치- 모순적인 두 개념을 순수하게 유지하기 위해 남성적 상상력은 여성을 선과 악, 생식력과 불임, 순수와 불결이라는 기준으로 양극화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 여성을 둘로 나누고, 우리가 스스로를 둘로 나누게 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무성적이고 천사 같은 아내와 매춘부는 이중적 사고에 따라 만들어진 관습이었으며 여성의 실제 관능성이 아닌 오로지 남성의 주관적인 여성 경험과 관련이 있었다.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에이드리언 리치- 엄마가 된다는 건 아이 한 명, 또는 여러 명과 치열한 상호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여성이 겪는 경험 중 하나이지, 영원한 정체성은 아니다. 40대 중반의 주부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제가 마치 실직자가 된 것만 같아요.” 하지만 한때 엄마였던 우리가 항상 엄마일 수는 없다면, 사회가 바라보는 우리는 누구인가? 아이를 “놔주는” 과정은 가부장적 문화를 거스르는 반역 행위다(비록 아이를 놔주지 않으면 그것대로 또 욕을 먹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놔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겐 다시 돌아갈 자기 자신이 필요하다.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어슐러 르 귄- 아이가 있는 여성 작가의 책은 권위 있는 영문학 정전에 포함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어슐러 르 귄- 그동안 사회적 또는 미적 연대나 타인의 인정을 가장 얻지 못한 예술가는 주부 예술가들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보살핌”, 그게 아니면 최소한의 지친 보살핌조차 요구하지 못하고 자기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의존하는 아이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풀타임 일자리를 두 개 떠맡는 것과 다름없으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다.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사라 러딕- 이상화된 좋은 엄마의 모습은 많은 실제 엄마들의 삶에 길고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낸시 휴스턴- 엄마들은 쾌활할 것을 요구받는다. 러딕의 말을 빌리면, “쾌활하다는 것은 위험과 한계, 불완전성을 존중하면서도 여전히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가능하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다. 쾌활함은 자신과 자신의 아이, 자기가 속한 사회, 자연의 상태가 절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이를 낳았음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며 미래를 반갑게 맞이하려는 냉정한 의지다.”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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