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원제가 엘리자베스 핀치일까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가 제목을 사람 이름으로 지었다면 꽤 많은 의미가 부여되어 있을 것 같은데 서양 이름에 대해 잘 몰라서 더 궁금해지네요. 핀치라는 성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검색해보니 독일계 유대인 성과도 관련있다는 설명이 있네요. 소설에서 엘리자베스 핀치가 유대인이냐 하는 논란이 나오죠. 그리고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은 정말 흔한 서양 여자 이름으로 특히 20세기초에 많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고리타분해서 잘 안쓴다고 하는데 오래된 스토아 철학을 신봉하는 엘리자베스 핀치에게는 잘 어울리는 이름같긴 합니다.
[이 계절의 소설_겨울]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함께 읽기
D-29
밥심

금정연
개인적으로 '엘리자베스'라고 하면 존 쿳시의 소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떠오르는데요, 공교롭게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노작가가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하는 내용이네요. 강연 내용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소설과 강연, 에세이의 경계를 흐리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핀치'에서는 <핀치의 부리>라는 책을 떠올렸는데, 갈라파고스 섬에서 핀치들의 부리가 오래 이어진 가뭄을 통해 어떻게 진화했는지 실제로 관찰한 진화생물학자인 피터와 로즈마리 그랜트 부부의 이야기를 비롯한 진화생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에요. 사실 EF와 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굳이 연결해보자면 '핀치' 그리고 '핀치의 부리'는 뉴턴의 '사과'처럼 진화생물학에서 하나의 상징물이죠. 다윈은 진화가 너무 느린 과정이라 한 사람의 생애에서는 관찰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는데, 핀치의 부리가 진화하는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그 말이 틀렸음을(그리고 당연히 진화론이 옳음을) 실증할 수 있었으니까요.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mono'에 반대되는)이고, 또한 다윈의 진화론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카운터를 날렸으니 '배교자' 율리아누스와 연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엘리자베스 핀치는 엘리자베스(쿳시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형식)과 핀치(다윈의 진화론에서 중요시하는 '다양성'과 율리아누스가 믿었던 '다신교'에서 공통되는 'mono'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제목이라고 우겨봅니다......
밥심
@금정연 님. 책 많이 읽은 분 아니면 할 수 없는 의견을 정성스럽게 써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저자가 엘리자베스 핀치를 실제 소설가 두 분을 모델로 해서 구상했다고 하니 이름인 엘리자베스도 금정연 님 말씀처럼 소설에서 취했을 수도 있겠다 싶네요. 핀치의 경우는 아이디어의 확장이 대단한데요. 갈라파고스의 핀치를 떠올리신 것 자체도 대단하지만 다양성의 진화와 연결해서 의미를 부여하시다니. 맞고 틀리고를 떠나 재밌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어쨌든 저자에게 제목을 어떻게 붙였냐고 물은 독자나 기자들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중요한건 아니지만 정답이 궁금하긴 하네요.

호디에
쓰신 글을 보고 곰곰 생각해보니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엘리자베스와 EF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읽으면서 피터 싱어를 떠올렸었더랬는데, 다윈의 진화론이나 다양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피터 싱어가 강하게 주장하는 동물권도 떠오르고... 그렇습니다. (무슨 말인지...)

금정연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쓰며 분명 피터 싱어의 논의를 참고했을 것 같아요. EF가 동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해지네요.
JJF
“ 교회에 일신교적이고 억압적인 면이 덜했다면,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의 추방이 없었다면, 브리튼 사람들은 더 자유럽게 섞였을 것이고, 다른 인종 간 출생은 정상이 되었을 것이고, 백색은 우월의 지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지위와 돈과 권력을 나타내는 분명한 표지가 지금보다 적은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