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함께 읽기

D-29
학생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그 의견에 의미를 덧붙여주는 선생님. 정말 좋은 선생님이네요. 그런 선생님은 우리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필요한 것 같아요. 만나긴 힘들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그런 선생님을 만나길 기다리기보다는 제가 직접 (물론 선생님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부분적이나마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우리의 유전적 유산이 우리 오금줄을 쥐고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33p,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이 한 문장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리의 유전적 유산이 우리 오금줄을'에서 ㅇㅇㅇㅇㅇ으로 이어지는 게 인상적이네요.
그리스와 로마의 옛 신들은 빛과 기쁨의 신들이었죠. 사람들은 다른 삶은 없다고 알았고, 따라서 이곳에서, 무가 우리를 가두기 전에 빛과 기쁨을 발견해야 했습니다. 반면 새로운 기독교인은 어둠, 또 고통과 예속을 좋아하는 하느님에게 순종했어요. 이 하느님은 빛과 기쁨이 오직 사후에 자신의 사탕 과자 같은 천국에만 존재하며, 거기에 이르는 길은 슬픔, 죄책감, 공포로 가득하다고 선포했죠. ‘우리는 죽음을 배불리 먹었다' 바로 그겁니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60쪽,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우리 대부분은 우리의 감정 생활에 끈질기게 매달려 좋든 나쁘든, 영광이든 모욕이든 낱낱이 탐닉할 것이다. EF는 이런 삶에도 잡동사니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을 지워야만 다시 더 분명하게 보고, 또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107쪽,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내가 외로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나는 혼자이고,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혼자인 것은 강점이고 외로운 것은 약점이다.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치료책은 혼자가 되는 것이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119쪽,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그러나 유럽 전역에 철로가 깔렸습니다. 그 주된 기능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러스킨과 플로베르 둘 다 지적하듯이, 사람들이 A에서 B로 가는 걸 허락하여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똑같이 멍청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한 말을 내 식으로 바꿔서 표현한 겁니다. 흔히 테크놀로지의 진보가 도덕적 혜택을 가져올 거라고 가정합니다만 철로는 아무런 혜택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도 그러겠죠. 도덕적 혜택은 전혀 없어요. 그렇다고 비도덕이 늘어난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경이로운 테크놀로지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에요.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p.50-51,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플로베르 전기의 한 대목이 생각났었어요. 사실 좀 많이 과격한 발언이기는 한데요... "그는 ‘그러나 대중이 아무리 무능력해도 존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중에게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풍요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대중에게는 권력이 아니라, 자유를 주십시오.’라고 밝혔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꿈꾸는 것은 오로지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의 어리석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라는 주옥 같은 말을 덧붙였다." 아마 EF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에서도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할 것 같은데, 딱 그런 식의 태도가 필요해보이는 생각이기도 하네요...
자꾸 잊게 되는 지점이에요. 테크놀로지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일 뿐, 그걸 사용하는 인간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점.
저는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갸웃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그런가? 교통의 발달로 바이러스들이 전세계로 퍼질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의 발달로 어떤 악덕들은 더 잘 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개인적으로 좀 지친 탓이겠지만요.
닐의 시점에서 쓰여진 글을 읽다보니 엘리자베스 핀치에게 반하게 됐어요! 외모와 행동, 강의 장면을 활용해 EF 대해 다채롭게 묘사하면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완성합니다. 시대의 유행이나 양극단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태도나 자신의 취향이나 지식에 대한 과시 없이 새로운 관점을 던지며 강의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너무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올해 만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강의 내용에 고전이나 인문학 작품이나 사상이 다양하게 언급돼 흥미롭게 집중할 수 있었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마침 휴일이니 빨리 읽어 보겠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이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찾기 힘들어지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도 같고요!
율리아누스에 대해 뒤져보면서 EF를 다시 바라보니 또 다른 맛이 있네요. 적들이 욕하는 것만큼 나쁘지도, 추종자들이 찬양하는 만큼 이상적인 사람도 아니었다는 언급을 보니, 어떻게 이런 인물을 딱 고르고, EF같은 인물을 만들었을까 생각이 절로 듭니다. '역사적 자기 연민도 개인적 자기 연민과 마찬가지로 매력이 없다'는 말도 다시 보니 결말의 씨앗이 이미 여기 있었구나 싶고, 이 꿋꿋함에 실제 모델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실존인물이 아닐지언정, 살아서 욕 먹은 기간이 얼마 안 되었던 율리아누스보다 EF가 더 굳건할지도 모르겠네요.
"역사적 자기 연민도 개인적 자기 연민과 마찬가지로 매력이 없다"는 말이 저도 인상적이었어요. 살아서 욕 먹은 기간이 얼마 안 되었던 율리아누스보다 EF가 더 굳건할 수도 있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율리아누스의 시대에는 사실 황제가 아무리 욕을 많이 먹어도 직접 체감은 별로 안 됐을 것 같기도 하고요...
어휘력이 부족한 편이 아닌데도 계속 사전을 찾아보게 되네요 배경지식의 부족일까요 바그너적 이라는게 무슨 의미일지 검색하는 중입니다. 초반부지만 EF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어요!
문맥을 봐야겠지만, 책 어느 부분에서 '바그너적'이라는 표현이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일반적인 느낌을 말씀드리면 장엄하다? 웅장하다? 화려하고 낭만적이다? 이런 바그너 음악의 특성들을 빗대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답변 감사합니다! 우르술라 얘기에서 나오는 표현이더라구요~ “감정적인 수준에서 우리는 이걸 로맨틱한 사랑의 극단적인, 아니 광적인 사례로 볼 수도 있겠죠. 다른 입장에서는 여기에서 바그너적인 면을 드러낼 수도 있을 거예요 —” 저도 어서 읽고 대화에 참여하고 싶네요🙏🏻 곧 새해네요, 다들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 계속 그믐에서 뵈어요! ㅎㅎ
어느덧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에게 이른바 모차르트 딜레마에 관해 물었다. 삶은 아름답지만 슬픈가요, 아니면 슬프지만 아름다운가요? 오늘의 파스타 두 접시를 사이에 놓고 그녀 맞은편에 앉아 있자니 마치 신탁을 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삶은 필연적인 동시에 불가피하죠." 그녀가 대답했다. 그 유명한 질문은 현혹하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닐 수도 있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40-41,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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