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함께 읽기

D-29
이런 강의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저도 들었어요. 그런데 역시 지금 들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F가 말한 것처럼, 대학시절에는 그냥 들어야 되니까 듣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갔다면 지금은 막연하지만 무언가 인생에 결핍을 느끼고 스스로 찾아갔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낙차는 작은데 영향이 큰 낙차를 만드는 작가'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둘'을 처음 읽을 때는 율리아누스와 EF의 연결에 집중했었는데, 결말 뒤에 보니 닐의 시선에 더 눈길이 갑니다. '오만한 태도' '자기 정당화' 같은 말이나 사디스트에 대한 농담 등, 애정을 가졌던 EF에 대한 평가에 비하면 가차없는 모습에 좀 웃음도 나고...자신 안의 EF를 되살리려 글을 썼지만, 그녀가 바랐을 만한 일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도 무게가 더 느껴지네요.
처음에 닐은 EF를 이상화하고, EF가 죽은 후 유산을 물려 받아 율리아누스에 대한 EF의 작업을 이어가는데요, 그 과정을 통해 EF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EF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닐의 성장이겠죠.
화제로 지정된 대화
EF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던 1부와 달리 2부에서는 EF의 문서를 물려 받은 닐이 쓴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역사적 전기와 지식, 그리고 여러 작가들의 말들을 활용해 이야기를 엮어가는 반스의 특기가 유감없이 펼쳐지는 장인데요, 현대 문명에 대한 은은한 비판과 율리아누스의 삶을 통해 그와 EF의 접점을 찾고자 하는 닐의 노력이 눈에 띕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파격적인 구성인데요, 그럼에도 읽는 재미를 준다는 게 반스의 저력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네요!
접점에 대해 말씀하시니 엘리자베스 핀치와 율리아누스 두 사람의 외형을 묘사한 부분(각각 P13, P143)이 눈에 띕니다(지금 143쪽을 읽는 중이었거든요). 빈티지를 연상케 하는 EF와 의도적으로 허영심을 없앤 율리아누스. 어쩐지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나 두 사람의 접점을 언급한 글을 읽고나니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이 많아지네요.
오, 이렇게 생각해보진 못했는데 흥미롭네요! 저도 재독 시에는 둘의 접점을 찾으며 읽어봐야겠어요.
두 번째 읽는 중인데요, 저도 그냥 무심코 지나치며 읽었다가 다시 읽으니 눈에 들어온 부분이었습니다. :)
율리아누스의 외형 묘사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초반 EF 외모 묘사와 겹쳐볼 수도 있겠네요!
'둘'까지 읽었습니다. 율리아누스의 행적을 여러 철학자 작가들의 기록을 통해 따라가는 걸 읽다 보니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생각나네요. EF는 왜 율리아누스에게 꽂혔을까를 고민하며 '하나'로 다시 돌아가서 율리아누스가 언급된 부분을 읽어봤어요. 스윈번이 율리아누스의 패배를 '유럽사와 문명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매우 불행한 순간'으로 파악한 점과 '나라가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는 르낭의 말, 'mono'로 시작해서 좋은 말이 없다는 EF의 의견, 영국의 노예 소유와 민족적 위선을 꼬집는 것, '우리는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일과 마찬가지로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패가 성공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런 말들을 곱씹다 보니, 역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는 우연의 연속으로 볼 수 있지만, 때로 그 우연은 '주사위에 납이 박힌 것'이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해석은 승자의 입장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생각. 율리아누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고, 게오르기우스의 용을 야생의 어떤 극단적인 예로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고 이미 '정설'로 굳어진 관점에만 안주하는 것은 어쩌면 비도덕적인 태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어난 일만큼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그 이면에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는 EF의 지적이 매우 묵직하게 와닿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율리아누스의 영어식 표기가 'Julian'인 게 너무너무 신경 쓰이네요. 줄리언 반스는 이름에 꽂혀서 율리아누스를 파기 시작했나? 이런 망상이 막 들고 말이죠... 저만 그런가요? ㅎㅎㅎ
멋진 감상 감사합니다! 읽으며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와 우리가 딛고 있는 시간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인 것 같아요. 율리아누스의 영어 표기가 Julian이라서 줄리언 반스가 꽂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2부를 읽으면서 소설가는 세상 제일 가는 수집가!라며 감탄했어요. 율리아누스의 일생을 다른 목소리의 성우들에게 듣는데, 이질적이긴 커녕 "그래서, 그다음엔"하면서 성우를 향해 무릎을 닿으며 다음 이야기를 조르는 그런 감정이 일어나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EF는 억압적인 유대-기독교(p.138)에 유감을 내비치는 인물로서 율리아누스를 등판시켜 EF와 율리아누스라는 두 인물의 관계성을 생각해 보도록 하는, 반스의 솜씨가 좋았습니다.
소설가는 세상 제일 가는 수집가들이고, 그중에서도 줄리언 반스는 최고의 수집가들 중 한 사람이라고 덧붙이고 싶네요. 소설에 대한 호불호는 당연히 갈릴 수 있지만 반스의 솜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닐의 율리아누스 에세이가 너무 재미 없어서 얼른 끝나기를 바라며 책장을 넘겼는데 재밌었다고 하시니 겸허한 마음이 들어요. 역시 사람들은 같은 걸 봐도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하네요 말씀처럼 이 책은 화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보다도 EF나 줄리언 반스의 의도와 관점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저도 술술 읽히던 1부와 달리 2부에서 조금 텐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대신 3부가 정말 좋았거든요. 1,2,3부의 성격이 다 조금씩 다르다보니 읽으면서 다양한 읽기 경험을 하게 되는 느낌도 있네요 ㅎㅎ
헬레니즘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이 믿은 것, 즉 인생에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죽은 뒤의 어떤 터무니없는 디즈니회된 천국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라는 지상의 짧은 이 시간 동안 누리는 것이라는 믿음이 지적으로 승리했다고 상상해 보라.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161,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닐은 EF를 '로맨틱한 스토아주의자'라고 하지만, 저 대목에서만큼은 에피쿠로스주의가 뚜렷해서 스토아건 에피쿠로스건 삶은 다양한 것들의 변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같은 책을 함께 읽는 우리야말로 디오니소스의 춤을 추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함께 디오니소스의 춤을 추다니, 갑자기 제가 엄청 멋진 사람이 된 기분이네요…! 감사합니다 ☺️
더디게 읽고 있느라 그믐 모임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지만.. 좋은 소설이라는건 읽으며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손으로 적어보았어요. 지금 저에게 너무 필요한 이야기라 여러번 읽고 싶어서요.
저도 그 부분을 읽으며 지금 제게 딱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 내 것이 아닌 것에 집챡하면서 삶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읽으며 들었습니다.
아 이 부분, 저도요… 평정심을 잃어갈 때 되새기고 싶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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