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EF가 과거 강의에서 히틀러의 책을 참고도서로 삼은 것이 대해 항의 받자 자신이 유대인이고 나치에게 많은 가족들을 잃은듯한 암시를 했던 것이 실은 의도적인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지는데요. 그 사실을 알게 된 닐은 고민하죠. 왜 거짓말을? 학생의 코를 좀 눌러놓고 싶어서?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유대인인 척을 하고 있어서? 좀처럼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지 못한 닐은 이 문제를 보류해 놓기로 합니다. 그리고 소설에서 이 문제는 더는 언급되지 않아요. 대체 핀치는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걸까요??
소설 뒤부분에 가면 EF가 유대인이 맞고 크리스토퍼가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닐이 또 밝힙니다(227쪽). EF를 믿고 싶어하는 닐의 편형된 의견일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EF가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유대인인척 했다면 그 이유는 닐이 유추해본 두 가지 가능한 이유를 포함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EF가 늘 진실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즉, EF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EF가 크리스토퍼에게 아무도 아니라고 대답한 남자가 사실은 그녀의 연인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따지자면 EF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제프에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알고 보면 히틀러는 학생 가족보다 내 가족을 훨씬 더 많이 죽였을거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했을 뿐이지요. 그 대답을 듣고 제프가 EF를 유대인이라고 속단했을 뿐입니다.
헉 그렇네요! 제가 깜박하고 있었어요. 말씀대로 EF 역시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본인 이외에 남겨진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어쩌면 EF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측면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역시 지적해주신 것처럼 EF가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한 건 아니니,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EF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죠. 그렇다고 거짓말이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가족의 범주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EF의 말은 사실일 수도 있을테니까요.
저는 EF가 유대인이든 유대인이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원문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게 꼭 피를 나눠야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연대의 의미로 혹은 전쟁에 아빠가 죽은 것과 우리가 히틀러를 읽으며 배울 점은 배워야한다는 것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이네요. EF라면 그런 의도로 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연필로 적은 꺾쇠괄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들은 아마 죽었을 터인데, 그냥 이름에 줄을 긋는 것보다 다정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220,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은 사람에 대한 기록 방식이 닐의 말대로 다정해서 문장을 한참 들여다 보았습니다. EF는 과묵한 로맨티스트였음에 틀림없을 것 같아요.
과묵한 로맨티스트, 핀치에게 잘 어울리는 수식인 것 같아요.
나중에 -더 완벽한 사회에서- 나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다른 누군가가 틀림없이 나타나 자유롭게 행동하리라.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 206,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작품 속에 있는 이 시를 보고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부까지 읽고나니 영화 500일의 썸머가 생각났습니다. 닐이 멋들어진 척하지만 자신의 환상 속에 어떤 인물을 가둬놓고 그리던 찌질한 톰과 비슷하게 느껴졌다면 너무 혹평일까요? 여하간 저는 다 읽고나니 닐에 대해 안나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너는 행복한 바보 상태에 있어라 였나요..?비슷한 말을 안나가 했던거 같은데)
저도 영화 500일의 썸머가 생각이 나더곤요
[500일의 썸머]!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안나가 닐에게 하는 "닐, 영감을 주는 선생이란 위로를 주는 신화 같은 거야. 사춘기 애들한테는 통할 수 있어도 서른 살짜리들이 모인 집단에는 그렇지 않아. 그런데 너는 늘 너한테 뭐가 뭔지 말해줄 수 있는 여자들을 찾았지. 예를 들어 나 같은, 한동안은"이라는 말이 더 잘 와닿는데요. 자신의 환상 속에 어떤 인물을 가둬놓고 그렸다는 점에서(물론 톰은 환상이 틀어지자 혼자 배신감을 느끼며 치졸하게 굴었고 닐은 그렇지 않다는 작은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엇비슷한 남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500일의 썸머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날 것이라 믿는 순수청년 톰. 어느 날 사장의 새로운 비서로 나타난 썸머를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자신의 반쪽임을 직감한다. 이후 대책없이 썸머에게 빠져드는 톰.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도 남자친구도 눈꼽만큼도 믿지 않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썸머로 인해 그냥 친구 사이로 지내기로 하지만, 둘의 사이는 점점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녀를 천생연분이라 확신하는 톰. 이제 둘 관계의 변화를 위한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는데...
"그냥 관심이 생겨서 그런데...... 왜 알코올 없는 점심을 그냥 견뎠나요? 엘리자베스는 선생님이 술을 마셔도 상관하지 않았을 텐데."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거기서 어떤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죠. 점심 먹을 때 꼭 술을 마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마시는 쪽이 좋다는 것일 뿐. 그리고 내가 마시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리즈의 머릿속에는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냥 거기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곤 했죠. '너는 나보다 똑똑하고 나보다 젊고 나는 너를 누이로서 사랑하지만 너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니구나.' 그것 때문에, 웃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누이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이상한 거예요, 인생이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동의했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237-238,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아주 작고 사소한 순간, 어떻게 생각하면 서운할 수도 있는 무심함이 오히려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이상한 방식을 잘 포착한듯 느껴져서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가끔 전기 작가들이 어떻게 그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정황적이고 모순되고 이가 빠진 그 모든 증거에서 하나의 삶, 살아 있는 삶, 빛나는 삶, 일관된 삶을 만드는 것. 그들은 점쟁이들을 끌고 원정에 나선 율리아누스와 같은 기분일 것이 틀림없다. 에르투리아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철학자들은 저런 말을 한다. 신들은 말을 하고 신탁은 없거나 모호하다. 꿈들은 이런 식으로 경고하고 환상은 저런 식으로 몰아붙이는데 짐승 창자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하늘은 이렇게 말하고 먼지 폭풍과 조언하는 벼락은 다른 쪽을 고집한다. 진실은 어디 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디 있는가? 아니면 일관된 서사란 것은 대립하는 판단들을 화해시키려 하는 것이기에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216-217,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너도 그분이 어땠는지 알잖아." 안나가 입을 열었다. "완전한 솔직함과 갑작스러운 감춤이 섞여 있었지. 또 완전한 공감과 이따금 나타나는 거리감. 그분은 내 평생 이야기를 나누어본 다른 어떤 여자하고도 완전히 달랐어. 대부분의 여자는 '우리가 어떻게 만났나' 하는 이야기를 해"--그녀는 공중에 따옴표를 찍었다--"그리고 '뭐가 잘못됐나' 또 '어떻게 끝났나' 또 '내가 그 모든 것에서 뭘 배웠나.' 그걸 비난하는 게 아냐. 나도 그러니까. 내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지. 우리 모두 그래. 그런데 EF는 그런 식이 아니었어. 결론은 주지만 서사는 주지 않았어. 왜? 뻔하고 일반적인 이유는 프라이버시, 신중한 그런 이유겠지. 하지만 나는 어쩌면 이건 그보다 큰 걸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어. 인생은,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되기를 바라더라도, 서사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느낌--또는 우리가 이해하고 기대하는 서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 나는 나보다 똑똑하거나 명석한 여자들의 말을 듣는 걸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 때문에 안나와 내가 함께했던 그 해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이 순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268-269,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닐이 율리아누스를 다룬 문헌들을 깊게 파다가 결국 깨달은 것--"일관된 서사란 것은 대립하는 판단들을 화해시키려 하는 것이기에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을, 안나는 EF를 보면서 느끼고 있었는데 정작 닐은 안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캐치하지 못한다는 게 재미있어요. 바보 닐...
동감입니다. 마지막 챕터는 읽다가 '아 쫌!' 소리가 꽤 올라왔네요 흐흐...그래도, 한편으로 이런 면 때문에 EF가 안나나 동생이 아닌닐에게 노트를 물려주었는가 생각도 드네요. 진상은 반스님 마음속에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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