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해가 죽던 날』 함께 읽기

D-29
녠녠의 시선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동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그렇기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한여름 열대야에 잠 못 드는 어느 밤에 이 책을 읽었다면 또 다른 감상이 들었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어요.
저도 이 소설을 여름에 읽었으면 어땠을까,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실제 한여름 열대야에는 숙면이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사람이 좀 멍한 상태로 있게 된달까... 그런 상황에서 책 속에 진동하는 땀냄새와 탄냄새, 그리고 피냄새를 맡았다면 또 다른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문 앞은 공기가 부족한 것처럼 긴장되었습니다. 거리도 공기가 부족한 것처럼 긴장되었습니다. 제 손에 난 땀은 두 가닥 물줄기 같았습니다.
해가 죽던 날 p192,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저는 어느 젊은이가 이발소 창문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품 안에 안고 있거나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모조리 다양한 형태의 샴푸였습니다. 전기 이발기와 향비누, 세탁용 가루비누 등도 있었지요. 도 다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거리에 서서 머리를 위로 쳐들고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도둑이야-- 도둑 잡아라--" 그가 소리 지르는 사이에 또 다른 사람이 양고기 가게 문을 부쉈습니다. 별다른 건 훔치지 못하고 양고기를 삶는 커다란 솥 하나를 머리에 이고 나왔지요. 도둑은 소리 지르고 있는 사람 앞으로 가서 솥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소리 지르고 있는 사람의 뺨을 한 대 후려갈겼습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뜻밖에도 두 사람은 형제인 양 함께 큰 솥을 들고 가버렸습니다. 몹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이하고 이상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해가 죽던 날 p.181-182,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제 밤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몽유하는 사람들은 더욱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세상 또한 기이하고 이상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네요. "원래 나이 든 사람들의 몽유는 죽음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장년들의 몽유는 밀을 베러 가거나 타작하러 가는 것 아니면 도둑질하러 가는 것이었지요"(p.182)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이 밤의 몽유는 규모 면에서도 그렇지만 행태 면에서도 과거와 다른 것 같아요. 전자 제품을 파는 가게의 사장도 몽유를 하고, '신세계' 장례용품점을 운영하는 녠녠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짧은 몽유를 하지요. 그리고 녠녠은 자신도 몽유 속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밤의 한가운데에서, 혼돈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몽유는 해결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녠녠 가족과 소설을 쓰지 못하는 옌롄커와 몽유하는 마을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밀고를 하고 돌아와 황혼에 젖은 마을 길을 걸으면서 아버지는 길에 나와 저녁을 먹고 있던 마을 사람들을 보고는 애써 아무 일도 없는 척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 73,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이른바 몽유는 대낮에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이게 뼈에 새겨지며 골수에 사무치도록 생각하다가 잠들어서도 깨어 있을 때의 생각들을 이어가고 꿈속에서도 그런 상념에 빠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32,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처음엔 몽유가 단순히 이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알쏭달쏭해지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무척 고요했습니다. 죽은 것 같았습니다. 죽음처럼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막 황혼을 지나온 밤의 숨결에는 살진 돼지가 잠잘 때 내는 코고는 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후덥지근하고 더러운 소리였지요. 후덥지근하고 더러운 소리는 끈적끈적하기도 했습니다. 땀 냄새가 났습니다. 땀 냄새는 여러 문과 틈새로부터 새어나왔습니다. 거리에 여름밤의 냄새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53-54,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뒤로들 물러나세요. 뒤로 물러나라고요!"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 모두 도화선에서 멀리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거대한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지요. 산비탈이 흔들렸습니다. 땅이 흔들렸습니다. 사람들 마음도 흔들렸지요. 이내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해가 죽던 날 p.76,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어디에 가져다 파느냐고? 어디든지 다 가서 판다네. 뤄양에도 가져다 팔고 정저우에도 가져다 팔지. 어느 도시든 공장마다 이 기름을 필요로 한다네. 그걸로 비누도 만들고 고무도 만들고 윤활유를 추출하기도 하지.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공업용 기름은 없다네. 식용으로 쓰면 어 좋을지도 모르지. 3년 대재양 때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것도 그리 희귀한 일은 아니지 않았나?"
해가 죽던 날 p.107,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제가 막 이 문장 올리려고 했는데~통했네요~~
우리 어머니의 시신 기름이 든 기름통을 화장장에서 운반해 나올 때도 꼭 몽유하는 것 같았지.
해가 죽던 날 p. 114,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대체 몽유란 뭘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또 하나의 문장이네요. 여기서의 몽유는 실제의 몽유보다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 같기도 하고요.
6권까지 읽었는데요. 읽을수록 아리송해지네요. 몽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몽유를 통해 사람들은 깨어있었더라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무의식중에 합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몽유 중에 있다는 것을 이용해 사람들이 몽유 중에 있지 않았더라면 할 짓들을 하죠.(도둑질 등등)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랬어." "정신없어서 실수로 그랬어."라는 변명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주인공이 나도 몽유를 하고 싶다는 언급(?)을 한것도 인상 깊었는데요. 현실을 보는 것이 끔찍해 몽유로 도피하려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해요. 죄책감을 갖고 사람들을 몽유로부터 깨우려고 하는 부자들의 행동도 내면의 갈등이나 딜레마를 표현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죽으면 이득을 보지만, 죄책감 혹은 양심에 의해 사람들을 깨우려고 하죠. 주인공의 아버지는 몽유에 빠져서 사실을 실토하기도 하구요. 전반적으로 복잡하네요. 뭔가 중국 사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냥 책을 읽어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을 것 같고 중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전제되어야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도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단지 중국 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 혹은 인간성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언급해주신 "몽유를 통해 사람들은 깨어있었더라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무의식중에" 하고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몽유 중에 있다는 것을 이용해 사람들이 몽유 중에 있지 않았더라면 할 짓들을 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핵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몽유는 우리 내면에 잠재워져 있는 욕망을 깨우는 방아쇠일 뿐, 몽유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요. 그리고 초반에 나오듯 인플레이션과 뱅크런과 기타 등등의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몽유가 촉발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듯, 몽유 사태를 부른 것도 결국 인간이니까요.
@금정연 저도 6권까지 읽었는데 무슨 얘긴지 헷갈리네요. 왜 사극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지...제가 잠시 쉬었다 읽는 탓일까요? ㅎㅎ 그건 그렇다치고, '상방'이란 단어가 나오던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처럼 얘기되어지던데...
6권에서 녠녠과 아버지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진정부(진은 중국의 행정구역이고 정부는 그 구역의 정부를 말합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군청 정도 될까요?)에 갑니다. 하지만 이미 진정부의 공무원들은 진장(대충 군수 정도라고 해두죠...) 이하 모두 집단 몽유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같은 꿈 속에서 몽유를 하고 있는데요, 그들은 최근 본 연극의 영향 탓인지 자신들이 명나라의 지도층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장은 자신이 황제라고 생각하고, 이하의 공무원들은 각각의 지위에 맞는 벼슬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마침 최근에 청사에서 연극 공연을 한 터라 창고에는 명나라 관복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입고 한바탕 연극(그중에서도 역사극)같은 집단 몽유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런 모습을 옌롄커는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고요. 상방上訪은 우리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인데요, "대중이 억울하거나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관공서 등 정부 기관을 찾아가 진정하는 행위"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민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뒤에 나오는 "진에서 전문적으로 상방으로 밥을 먹고 사는 가오빙천이라는 나이 일흔둘의 노인"은 말하자면 악성민원인인 거죠. 진정부 공무원들을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며 지원금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입니다!
아, 그게 그런 거었군요. 제가 순간 몽유를 잊고 있었네요. 상방도. 그렇지 않아도 사전을 찾아 보기도 했는데 낮선 단어라 문맥상으론 뭔가 안 좋은 거 같긴한데 정확히 모르겠더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
저도 책을 구하느라 좀 늦게 시작해서 이제 3장을 다읽었네요 사실 중국문학이 처음인데 굉장히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몽유가 굉장히 중요한 소재인 것 같은데 뭔가 위기감이나 큰 변화를 예감하는 상황에서 억압된 욕망이나 의무들을 풀 수가 없어 몽유로 나타나는 걸까요 화장을 하는 외삼촌과 장례사업을 하는 부모님이라는 구도도 특이한데 이날밤 무슨일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몽유가 시작되는지 너무 궁금하네요 그리고 동굴에 저장하는 사람기름은 녠녠 가족의 마지막 양심인지 탐욕인지 3장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시 돌아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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