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해가 죽던 날』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 소설에서 가장 복잡한 인물을 든다면 아무래도 아버지인 것 같아요. 벽돌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화장장에 몰래 매장한 사람들을 밀고해서 돈을 벌다가, 집행관들이 무덤을 폭파하고 시신을 욕보이는 것을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밀고를 그만둔 인물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외삼촌에게 시체 기름을 헐값에 사들여 저장하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이 밀고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머니의 시신을 홀로 업고 화장장을 향하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무언의 시위(녠녠의 표현에 따르면 '내기')를 벌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 아버지의 행동으로 인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몽유가 점차 진행될수록,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5권에서는 심지어 이렇게 서술되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진 밖에서 성인 같은 일을 헀습니다. 서쪽 하천 도랑에서 세례를 주는 것처럼 몽유하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씻어주었지요. 몽유하는 사람들을 전부 꿈에서 불러내 얼굴을 씻어줌으로써 몽유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입니다." (207쪽) (*스포일러) 하지만 거기에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업, 그 빚을 갚겠다는 계산속이 있습니다. 그러다 너무 지친 나머지 몽유에 빠지고, 몽유에 빠진 상태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상대 집안에 가서 고백하기도 하지요. 그러던 도중 몽유에서 깨자 자신이 한 게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인을 하는 한편,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몽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인물이에요. 인물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이 뭔가를 생각하면서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해가 죽던 날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몽유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과 사물뿐이거든요. 다른 경물과 세계는 더 이상 아저씨에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죽던 날 42쪽,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지금의 우리의 현실을 몽유의 상태로 비유한다면, 그 특징을 이 문장이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깨어있더라도 자신의 세계'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몽유 상태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여지네요. 자신의 세계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의 특징은 녠녠이 아버지를 묘사한 대목에서 드러나는데, "몸과 마음이 송두리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꿈속에 있는 사람이라 몽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송두리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209쪽,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몽유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이고 몽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깨어 있는 신이라고 할 수 있지. 깨어 있는 신들만이 떠돌아다니는 귀신을 도울 수 있어.
해가 죽던 날 188쪽,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몽유하든 깨어있든 사람들은 모두 '신'이라는 건데, 신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몽유의 뜻만이 아니라 깨어있다는 것은무엇일까 생각하게 되고요.
정말로 꿈에서 깨어 나온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꿈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요.
해가 죽던 날 242쪽,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세상은 선과 억의 경계가 불분명한데 소설에서 그 구분이 너무 뚜렷하면 어느 순간 흥미가 떨어졌어요 말씀하신 대로 6장 7장 까지 읽어보니 몽유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심지어 옆집 소설가 옌레커는 글을 쓰기 위해 몽유에서 깨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모두가 도와줍니다 몽유가 그에게 좋은 일일 수 있다고 아름다운 일일 수도 있다구요
녠녠이 자기도 몽유를 하고 싶고 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하는 부분도 생각나네요.
법이 몽유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법은 물 한통만도 못해서 몽유하는 사람 머리에 물을 끼얹지도 못한다고.
해가 죽던 날 p. 122,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느덧 7장과 8장을 읽을 차례네요. 글을 쓰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옌롄커 씨의 이야기와 외삼촌이 살고 있는 부유한 동네의 몽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몽유를 하는 다양한 면면들을 보여주는 장들인데요, (미처 언급하진 못했는데 6장에서는 진 정부의 관리들이 서로 황제가 되고 신하가 되어 마치 연극을 하듯 단체 몽유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죠) 개인적으로는 "글을 써내지 못하면 저는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요"라며 울부짖는 옌롄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더 깊은 혼란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비교적 짧고 흥미진진한 장입니다.
글을 써내지 못하다보니 사람이 갑자기 팍 늙었습니다. 머리가 하얘져 우리 진에 사는 거친 늙은이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외부 세계의 청결함과 정갈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입고 있는 옷도 깨끗하지 않고 신이 나서 얼굴에 가득하던 봄바람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늙었습니다. 글을 써내지 못하다보니 사람이 확 늙어버린 것이지요.
해가 죽던 날 p.278,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아버지, 제가 몽유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모습의 몽유를 하게 될 거야."
해가 죽던 날 p. 148,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연말 연초 정신이 좀 없어서 책은 조금씩 읽고 있는데 그믐에는 이제 들어왔습니다!! 앞(프롤로그)이 인상적이었는데, 두서가 없기는 했지만 바보라고 칭하면서도 참 똑똑한 아이구나 싶었고요. 옌롄커 작가님의 책을 전에 여러 권 읽었던 터라 옌롄커 작가님이 나오는 대목도 책 제목을 패러디 해서 나열하는 대목도 보면서 쓰윽 미소를 지었답니다.
반갑습니다! 연말연초 정말 정신없는데 시간 내서 소설 읽고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녠녠이 책도 많이 읽고 곳곳에 옌롄커의 긴 문장들을 떠올리는 걸 보며 ‘녠녠아... 너 바보 아냐...’ 말해주고 싶었어요.
진의 거리는 예전과 똑같았습니다. 세상도 예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대규모 몽유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몽유의 발걸음이 점점 우리 마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진에 들어섰지요. 대규모 몽유는 천지를 뒤덮을 정도로 조용하고 혼돈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은 대규모 몽유가 이미 구름처럼 재앙처럼 자신들 머리 위를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 위의 희미한 것이 밤의 구름이 깔린 것이라고 여겼지요.이런 여름밤이 여느 여름밤과 똑같다고 여겼습니다.
해가 죽던 날 _p.54_ 제 2권 이경 상 : 새들이 그곳을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_,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옌롄커 작가님 소설 오랜만에 읽는데 역시 묘사가 뛰어나고 사회와 시대가 숨기듯이 드러나서 집중이 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게다가 몽유라니!! 또 아이의 시선이어서 인지 강조를 위해서 인지 반복해서 나타나는 문장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입니다. 아!! 각 권이 시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느 부분은 딱 맞아 떨어지고 (1. 17:00~18:00 / 2.18:00~18:30 ...) 어느 부분은 일 분씩 차이가 나게 쓰여 있어서 (1. 23:00~23:41 / 2.23:42~24:00) 처음에는 오타인가? 했다가 읽으면서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차례를 다시 보면서 왜 그럴까 괜히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
그러게요, 저도 시간 구분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혹은 그냥 느낌대로 쓰신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근에 애플티비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세브란스: 단절]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요, 묘하게 <해가 죽던 날>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초반에 몽유가 낮에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밤에 자면서도 그 일을 하는 것처럼 묘사되잖아요. 이른바 워라밸의 붕괴... 그런데 [세브란스]는 워라밸을 완벽하게 맞춰주는 기술이 개발된 사회를 그립니다. 주인공은 루만이라는 회사에서 ‘매크로데이터 정제사’로 일하는데요, 이 업무는 너무 중요한 기밀이라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아를 둘로 나누는 시술을 받습니다. 평상시의 나와 회사에서 일하는 나. 그래서 평상시의 나가 출근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사무실로 내려가면 일하는 나가 깨어나고,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평상시의 나가 깨어나서 퇴근을 하는 거죠. 물론 둘의 기억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고요. 퇴근해서도 회사 일을 생각하느라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출근해서도 집안 일이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루만에서는 삶과 일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거죠. 문제는 분리가 되도 너무 분리가 되었다는 거예요. 일하는 자아는 개인적인 기억은 물론 자신에게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심지어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일만 합니다. 의식이 꺼진 시간은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 퇴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다시 출근하러 나오는 길이 되는 거죠. 완벽한 일의 노예, 아니 스스로의 노예라고 할까요? 주인공은 원래 역사 교수였는데, 사고로 아내를 잃고 괴로움을 극복하지 못해 일이 지원햐요. 물론 일하는 나는 그런 사정은 꿈에도 모르고 내가 왜 여기에 갇혀 있는 건지, 밖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여기에 넣었는지 궁금해하죠. 하지만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그래서 그냥 그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바깥의 나 역시 아내를 잃은 시름을 술로 달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요. 매크로데이터 정제 팀은 모두 네 명인데요, 각각의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이 유일한 친구였던 팀장이 갑작스럽게 사직처리 되고 주인공이 팀장이 돼요. 그리고 신입사원이 들어오는데,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현실에 적응해서 얌전히 회사의 룰에 따라(이 룰이라는 것도 기가 막힌데, 종교화된 거대 기업의 음모가 있고, 사이비 종교 교리 같은 사칙을 따라 회사가 운영됩니다. 좀더 깔끔하고 사무적인 오웰의 세걔라고 보면 될듯) 생활하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이곳을 턀출하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합니다. 그녀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지먼, 그녀의 영향을 받은 직원들이 서서히 변해가며 일졷의 쿠데타를 꿈꾸는, 그런 이야기에요. 어떤가요, 다른듯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요?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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