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해가 죽던 날』 함께 읽기

D-29
"오늘 밤은 하느님이 우리 리씨 집안에 복을 내리신 게 틀림없어. 진 전체가 몽유하고 있는데 우리 집 사람들만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야. 몽유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이고 몽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깨어 잇는 신이라고 할 수 있지. 깨어 있는 신들만이 떠돌아다니는 귀신을 도울 수 있어. 우리가 도와준다고 해서 그들이 뭔가 빚지는 건 아닐 거야. 그들이 몽유에서 깨어나면 나와 네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겠지만 말이야."
해가 죽던 날 p.188,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머릿속이 하얗고 어지러웠습니다. 겨울철 벌거숭이가 된 산비탈 같았습니다. 옌롄커의 소설에 나오는 연고자 없는 무덤이 마구 널려 있는 공동묘지 같았지요. 상황이 전부 꿈속에 있고 모두가 몽유하고 있는 것 같았습ㄴ디ㅏ. 저도 몽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알 수 업었습니다. 너무나 이상하고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미묘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자신도 몽유 속에 있기를 바랐습니다.
해가 죽던 날 p.205,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치례산 전투에서 소신은 몸 세군데에 화살을 맞았으나 화살이 박힌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 적을 맞아 싸웠습니다. 사흘 밤낮을 전투를 벌이면서 말에서 내린 적이 없었고 손에서 검을 내려놓은 적도 없었지요. 식사도 말 등에서 했고 잠도 말안장 위에서 잤습니다. 결국 적군을 물리치고 흉노를 120리 밖으로 몰아냈지요. 이 치롄산 전투 이후로 서북 지방의 전선에서 파죽지세로 적을 물리치면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251p,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별것 아닌데,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문장이라 옮겨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이성계가 요동 정벌에 나섰을 때 썼을 법한 말 아닌가 싶기도하고. ㅎㅎ 아무튼 천하에 다시 없는 옌롄커도 이런 친근한(?) 표현을 쓰는구나 했습니다. 실제로 말 등에서 저렇게 하는 장수는 없겠죠? 과장법이지만 그럴 듯 한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문장이라는 말씀이 정확한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치 일종의 연극처럼 집단 몽유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그중 한 명이 구구절절 음률에 맞는 말을 유창하게(다시 말해서, 다들 어떤 드라마나 사극 같은 데서 들어본 것 같은 말을 청산유수로) 내뱉으니 다들 깜짝 놀라고 자신을 황제라고 생각하는 진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죠.
중국도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런 표현은 일종의 나라와 국적을 떠나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괜히 호들갑 떨었다는 생각이 ... 😂
아무래도 같은 한자문화권이니 영향이 없을 수 없고, 번역 과정에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바로 와닿을 수 있는 방식으로 번역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요.
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게 이야기가 생겼어요.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이야기가 생겼다고요.” 크게 중얼거리는 혼잣말 사이사이에 가벼운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롄커야, 롄커야!” 큰 소리로 그를 불렀습니다. 그를 꿈속에서 끌어내려는 것 같았습니다. “표지가 검은색인 그 책 못 보셨어요? 표지에 그려진 그림이 캄캄한 밤 같다고 하셨던 그 책 말이에요?”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밀면서 말했습니다. “책을 쓰면 네가 죽게 된다는 생각은 안 하는구나.” “지금은 그럴 리 없어요.” 그가 어머니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습니다. “이제 쓸 이야기가 생겼어요.” 어머니가 다가가 그의 얼굴을 가볍게 때렸습니다. “빨리 깨지 않으면 너는 네 이야기 속에서 죽고 말 게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이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봤습니다. “어서 네 이야기 속에서 나와.” 그의 어머니의 외침과 소환은 천둥 같았습니다. “나오지 않으면 너는 네 이야기 속에서 죽고 말 거야.” 뺨에 또 한 대 무거운 가격이 가해졌습니다. 하지만 따귀를 맞아 흘러나온 눈물은 그의 얼굴에 그대로 걸려 있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286-287,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것 또한 의미심장한 장면인데요. 특히 저는 이런 부분들의 의미가 궁금하더라고요. 1. 옌롄커가 찾는 표지가 검은 색인 그 책 → 이건 무슨 책일까요? 어쩌면 <해가 죽던 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직 옌롄커는 책을 쓰지 못했지만, 몽유 속에서 이미 책을 쓴 시간을 살고 있는 거죠. 실제 원서 표지는 하얀색이지만요. 2. “책을 쓰면 네가 죽게 되나는 생각은 안 하는구나”라는 어머니의 말씀 → 녠녠에 의하면 옌롄커가 책을 써야 사람들도 살고 마을들도 살고 세계도 산다는데, 왜 어머니는 책을 쓰면 옌롄커가 죽게 된다는 걸까요? 책을 쓰는 일이 고되기 때문에? 옌롄커가 쓰려는 책이 체제 비판으로 탄압을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아니면 몽유 속에서 뭔가를 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3. “지금은 그럴 리 없어요”라는 옌롄커의 대답 → ‘지금은’ 그럴 리 없다니, 그건 또 왜일까요? 쓸 거리가 생겼고 쓰려는 의욕이 충만하기 때문에? 체제 비판으로 탄압 받을 소지가 있지만,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깨어나서 불합리한 탄압에 맞설 것이기 때문에? 아니면 몽유 중이라 사리분별이 안 돼서? 옌롄커와 비교할 순 없지만 저도 작가라서 그런지 자꾸 옌롄커 부분에 눈길이 멈추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무엇보다 지금 ‘데드라인’을 넘긴 책을 쓰고 있기도 하고요...
2. 몽유 속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현실에서 집착, 몰두 하던 상황이나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파국에 이르러서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의 이런 몽유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고 어머니도 이전의 몽유을 경험해서 위함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렇게 말하신게 아닐까 했는데요. 서평가님 말씀 읽으니까 중국에서 사상이나 체제에 대한 책은 위험하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아하 모먼트가 왔습니다!! ㅎㅎ 3. 글을 써내지 못하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얘기 했으니까 글을 쓰게 되는 지금의 시점에서 살아나게 될 거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요, 이 말을 하는 옌롄커가 어머니께 가볍게 지은 미소가 저는 굉장히 진중하게 진심으로 느껴지더지더라고요..!
옌롄커가 가볍게 지은 미소에 대해 말씀해주신 부분을 읽는데 갑자기 그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엄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왜 옌롄커가 조지 클루니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만약 이 소설이 많은 부분을 쳐내고 변형된 좀비물처럼 헐리우드에서 영화화 된다면 조지 클루니가 작가의 역할을 맡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드네요...
저도 옌렌커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몽유에서 빠져나와 결국은 글을 쓰지 않을 거라고 한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글을 쓰지 않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결국은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이 어쩌면 한국사람들이 가진 특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지금의 제 상황일지도 모르지요...
저는 그 부분을 보면서 작가는 다 똑같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건 지금의 제 상황이네요...
"내게 쓸 이야기가 생겼어요. 쓸 이야기가 생겼다고요." 영감이 꽃잎처럼 그의 머리와 몸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의 마디들이 밀 향기처럼 그를 향해 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잘 익은 과일이 그의 몸 위로 떨어져 부딪히는 것 같았습니다.그리하여 그는 쉴 새 없이 말하고 중얼거렸습니다.
해가 죽던 날 p.282,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그가 어머니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습니다. "이제 쓸 이야기가 생겼어요." 어머니가 다가가 그의 얼굴을 가볍게 때렸습니다. "빨리 깨지 않으면 너는 네 이야기 속에서 죽고 말 게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이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봤습니다. "어서 네 이야기 속에서 나와." 그의 어머니의 외침과 소환은 천둥 같았습니다. "나오지 않으면 너는 네 이야기 속에서 죽고 말 거야."
해가 죽던 날 p.286,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그를 꿈속에서 끌어내지 말아요. 꿈속에 멍하니 있게 놔두세요." 그의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 모두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나무 인형들이 나무 인형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녀석이 글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리거나 죽는다고 하니 그냥 쓰게 해주자고요. 쓰다가 죽어도 살아 있는 걸로 느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옌 아저씨 어머니의 얼굴에 눈물방울이 걸려 있었습니다. 메마른 황무지에 비가 내린 것 같았습니다.
해가 죽던 날 p.296,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알고 보니 몽유도 선물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늘에 계신 신계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저도 갑자기 몽유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처럼 몽유하면서 자신이 몽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는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의 일들을 보는 것과 같으니까요. 죽어서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으니까요.
해가 죽던 날 p.30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해가 죽던 날> 관련한 인터뷰를 찾아봤는데요, 아무래도 영미권 작가가 아니다보니 인터뷰를 찾기 쉽지 않네요. 그중 가디언과의 인터뷰가 있어 도움이 될 것 같은 부분을 여기 옮깁니다. (번역기로 돌려서 조금 어색합니다. 전문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Q: 소설의 아이디어는 무엇이었을까요? A: 저는 몽유병을 몇 번 경험했고, 다른 사람들이 몽유병을 겪는다는 보고를 휴대전화에서 계속 보았습니다. 소설의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내면 세계에 대해 쓰고 싶었고, 그들이 가장 깊고 가장 비밀스러운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Q: 왜 14세의 내레이터를 선택했나요? A: 이런 스토리는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매우 흥분한 어른이 스토리를 들려준다면 훨씬 믿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청소년이 스토리를 들려주면 사람들이 믿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매우 순진하고 순수한 목소리를 선택함으로써, 저는 중국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복잡한 이야기, 중국인들의 가장 깊은 마음을 논의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봄으로써 저는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종종 매우 어두운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한 그 모든 것과 정반대인 위대한 선함에 대한 가끔씩의 폭발을 강조할 수 있었습니다. Q: 소설 속 악몽의 일부는 당신 자신이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당신은 이야기에 자신을 넣었고, 그것은 작가로서의 당신의 가장 큰 두려움을 반영합니까? A: 저는 소설을 완성할 때 종종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다시는 책을 쓸 수 없을 거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항상 큰 두려움이고,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을까봐 항상 큰 불안감을 느낍니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8/sep/22/yan-lianke-writers-in-china-day-the-sun-died-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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