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해가 죽던 날』 함께 읽기

D-29
이때, 바로 이때, 뜻밖에도 집 안 어디선가 진에서는 한 번도 맛 본 적 없는 커피를 내왔습니다. 검정과 갈색이 섞인 것 같기도 하고 새빨간 주단 같기도 햇습니다. 둥그런 통을 열자 붉은 향기가 퍼져 나왔습니다. 끓는 물을 가져다 커피를 한 숫가락 탓습니다. 뜨거운 물에 퍼지는 커피는 불에 타는 비단 같았습니다. 식견이 있는 사람들,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백설탕과 우유 가루를 타요." "백설탕과 우유가루를 타야 한다고요." 이에 누군가 집에서 백설탕과 흑설탕을 가져왔습니다. 아기들이 먹는 분유도 가지고 나왔지요. 과연 커피는 아주 맛있었습니다. 쓴 향기와 맛이 잘 달인 감초맛과 비슷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276,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인스턴트 커피가루에 대한 묘사와 향기 맛에 대한 표현이 오래전 처음 가루커피를 맛봤던 그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왜 커피가 안나올까 싶었는데 드디어 커피가 나왔습니다. ☕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남겨주신 댓글 보고 저도 오래전 처음 가루커피를 맛봤던 때가 생각났어요. 어른들이 맨날 마시는 저게 뭐지? 하는 생각으로 몇 조각 집어서 혀에 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
멀리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이 꿈속에서 흔들리는 그림자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줄곧 낡은 탁자상판같은 그 사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엇습니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있는 썩은 호박씨 같은 그의 두 눈을 쳐다보고 있었지요. 아버지는 그가 몽유 상태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몽유하면서 이웃집을 위해 후사를 돌보는 것이었지요.
해가 죽던 날 p.155,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오늘 밤은 하느님이 우리 리씨 집안에 복을 내리신 게 틀림없어. 진 전체가 몽유하고 있는데 우리 집 사람들만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야. 몽유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이고 몽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깨어 잇는 신이라고 할 수 있지. 깨어 있는 신들만이 떠돌아다니는 귀신을 도울 수 있어. 우리가 도와준다고 해서 그들이 뭔가 빚지는 건 아닐 거야. 그들이 몽유에서 깨어나면 나와 네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겠지만 말이야."
해가 죽던 날 p.188,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머릿속이 하얗고 어지러웠습니다. 겨울철 벌거숭이가 된 산비탈 같았습니다. 옌롄커의 소설에 나오는 연고자 없는 무덤이 마구 널려 있는 공동묘지 같았지요. 상황이 전부 꿈속에 있고 모두가 몽유하고 있는 것 같았습ㄴ디ㅏ. 저도 몽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알 수 업었습니다. 너무나 이상하고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미묘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자신도 몽유 속에 있기를 바랐습니다.
해가 죽던 날 p.205,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치례산 전투에서 소신은 몸 세군데에 화살을 맞았으나 화살이 박힌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 적을 맞아 싸웠습니다. 사흘 밤낮을 전투를 벌이면서 말에서 내린 적이 없었고 손에서 검을 내려놓은 적도 없었지요. 식사도 말 등에서 했고 잠도 말안장 위에서 잤습니다. 결국 적군을 물리치고 흉노를 120리 밖으로 몰아냈지요. 이 치롄산 전투 이후로 서북 지방의 전선에서 파죽지세로 적을 물리치면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251p,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별것 아닌데,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문장이라 옮겨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이성계가 요동 정벌에 나섰을 때 썼을 법한 말 아닌가 싶기도하고. ㅎㅎ 아무튼 천하에 다시 없는 옌롄커도 이런 친근한(?) 표현을 쓰는구나 했습니다. 실제로 말 등에서 저렇게 하는 장수는 없겠죠? 과장법이지만 그럴 듯 한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문장이라는 말씀이 정확한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치 일종의 연극처럼 집단 몽유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그중 한 명이 구구절절 음률에 맞는 말을 유창하게(다시 말해서, 다들 어떤 드라마나 사극 같은 데서 들어본 것 같은 말을 청산유수로) 내뱉으니 다들 깜짝 놀라고 자신을 황제라고 생각하는 진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죠.
중국도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런 표현은 일종의 나라와 국적을 떠나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괜히 호들갑 떨었다는 생각이 ... 😂
아무래도 같은 한자문화권이니 영향이 없을 수 없고, 번역 과정에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바로 와닿을 수 있는 방식으로 번역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요.
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게 이야기가 생겼어요.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이야기가 생겼다고요.” 크게 중얼거리는 혼잣말 사이사이에 가벼운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롄커야, 롄커야!” 큰 소리로 그를 불렀습니다. 그를 꿈속에서 끌어내려는 것 같았습니다. “표지가 검은색인 그 책 못 보셨어요? 표지에 그려진 그림이 캄캄한 밤 같다고 하셨던 그 책 말이에요?”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밀면서 말했습니다. “책을 쓰면 네가 죽게 된다는 생각은 안 하는구나.” “지금은 그럴 리 없어요.” 그가 어머니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습니다. “이제 쓸 이야기가 생겼어요.” 어머니가 다가가 그의 얼굴을 가볍게 때렸습니다. “빨리 깨지 않으면 너는 네 이야기 속에서 죽고 말 게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이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봤습니다. “어서 네 이야기 속에서 나와.” 그의 어머니의 외침과 소환은 천둥 같았습니다. “나오지 않으면 너는 네 이야기 속에서 죽고 말 거야.” 뺨에 또 한 대 무거운 가격이 가해졌습니다. 하지만 따귀를 맞아 흘러나온 눈물은 그의 얼굴에 그대로 걸려 있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286-287,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것 또한 의미심장한 장면인데요. 특히 저는 이런 부분들의 의미가 궁금하더라고요. 1. 옌롄커가 찾는 표지가 검은 색인 그 책 → 이건 무슨 책일까요? 어쩌면 <해가 죽던 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직 옌롄커는 책을 쓰지 못했지만, 몽유 속에서 이미 책을 쓴 시간을 살고 있는 거죠. 실제 원서 표지는 하얀색이지만요. 2. “책을 쓰면 네가 죽게 되나는 생각은 안 하는구나”라는 어머니의 말씀 → 녠녠에 의하면 옌롄커가 책을 써야 사람들도 살고 마을들도 살고 세계도 산다는데, 왜 어머니는 책을 쓰면 옌롄커가 죽게 된다는 걸까요? 책을 쓰는 일이 고되기 때문에? 옌롄커가 쓰려는 책이 체제 비판으로 탄압을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아니면 몽유 속에서 뭔가를 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3. “지금은 그럴 리 없어요”라는 옌롄커의 대답 → ‘지금은’ 그럴 리 없다니, 그건 또 왜일까요? 쓸 거리가 생겼고 쓰려는 의욕이 충만하기 때문에? 체제 비판으로 탄압 받을 소지가 있지만,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깨어나서 불합리한 탄압에 맞설 것이기 때문에? 아니면 몽유 중이라 사리분별이 안 돼서? 옌롄커와 비교할 순 없지만 저도 작가라서 그런지 자꾸 옌롄커 부분에 눈길이 멈추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무엇보다 지금 ‘데드라인’을 넘긴 책을 쓰고 있기도 하고요...
2. 몽유 속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현실에서 집착, 몰두 하던 상황이나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파국에 이르러서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의 이런 몽유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고 어머니도 이전의 몽유을 경험해서 위함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렇게 말하신게 아닐까 했는데요. 서평가님 말씀 읽으니까 중국에서 사상이나 체제에 대한 책은 위험하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아하 모먼트가 왔습니다!! ㅎㅎ 3. 글을 써내지 못하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얘기 했으니까 글을 쓰게 되는 지금의 시점에서 살아나게 될 거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요, 이 말을 하는 옌롄커가 어머니께 가볍게 지은 미소가 저는 굉장히 진중하게 진심으로 느껴지더지더라고요..!
옌롄커가 가볍게 지은 미소에 대해 말씀해주신 부분을 읽는데 갑자기 그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엄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왜 옌롄커가 조지 클루니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만약 이 소설이 많은 부분을 쳐내고 변형된 좀비물처럼 헐리우드에서 영화화 된다면 조지 클루니가 작가의 역할을 맡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드네요...
저도 옌렌커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몽유에서 빠져나와 결국은 글을 쓰지 않을 거라고 한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글을 쓰지 않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결국은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이 어쩌면 한국사람들이 가진 특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지금의 제 상황일지도 모르지요...
저는 그 부분을 보면서 작가는 다 똑같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건 지금의 제 상황이네요...
"내게 쓸 이야기가 생겼어요. 쓸 이야기가 생겼다고요." 영감이 꽃잎처럼 그의 머리와 몸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의 마디들이 밀 향기처럼 그를 향해 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잘 익은 과일이 그의 몸 위로 떨어져 부딪히는 것 같았습니다.그리하여 그는 쉴 새 없이 말하고 중얼거렸습니다.
해가 죽던 날 p.282,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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