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경에서는 본격적인 몽유가 시작됩니다. 최가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한 원인이 있다기보단 마을 전체가 거대한 저주에 씌인 것 같은 느낌이지요. 좀비 같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건 이런 몽유가 처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대규모 몽유는 무척 드문 일이긴 하지만 몽유 자체는 종종 있어 왔고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겪는 일이라는 식으로 서술 되죠.
한 가지 중요한 건, 몽유는 분명 소설적이고 환상적인 사건이지만 뜬금없이 일어난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일경의 첫 번째 장 마지막 부분에 화자 특유의 어투로 그날 있었던 일을 서술하고 있지요.
“용포절인 이날 저녁 무렵 장사가 폭발적으로 잘되기 시작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장례용품이 전부 팔려나갔으니까요. 사람들은 물가가 하늘 높이 치솟는다면서 일제히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습니다. 사람들은 은행 금고가 텅 비도록 돈을 찾았습니다. 거리의 모든 상점의 물건이 남김없이 팔려나갔습니다.” (23쪽)
이건 명백한 인플레이션이고 뱅크런이고 사회 불안으로 인한 생필품 사재기이지요. 그렇다면 몽유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저녁 무렵 장례용품이 전부 팔려나간 이유는, 사람들이 몽유와 상관없는 다른 요인 때문에 죽어나갔다는 것이고, 그건 아무래도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화자는 어린아이이자 ‘바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서술이 소설에 더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가듯 언급되는 초반의 이런 서술을 생각한다면, 몽유에는 사회경제적인 이유가 있거나 혹은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발생한 무언가를 ‘몽유’라는 주술적인 명칭으로 서술하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도 있겠죠. 이런 부분들을 염두에 둔 채 소설을 읽는다면 감상이 더욱 풍부해질 것 같아요!
[이 계절의 소설_겨울] 『해가 죽던 날』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리키
장례용품점 이름이 '신세계'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ㅎㅎ
P.29의 사람들은 꿈을 믿으면서 현실은 믿지 않는다라는 문장.
그리고 죽은 것 같았다. 죽음처럼 ~~ 등, 죽음과 관련된 문장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생각해봅니다 ㅎㅎ
우리 삶 바로 옆에는 죽음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어있고 다만 사람들은 한순간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죠 ㅠㅠ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른바 몽유는 대낮에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이게 뼈에 새겨지며 골수에 사무치도록 생각하다가 잠들어서도 깨어 있을 때의 생각들을 이어가고 꿈속에서도 그런 상념에 빠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32
(몽유가 이런 것이라면 저도 몽유에 빠질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ㅠㅠ)
♧위에 독자님들의 주제 사라마구 작가님의 #눈먼자들의도시 떠오른다고 하셨는데 제게는 그 책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거의 제가 읽은 디스토피아 중에 고난이도 레벨이었던 재독할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는...
대규모 몽유가 시작되는 장면, 마치 팬데믹을 연상케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마냥 두렵다는 느낌보다는 신비로운 느낌도 있습니다 ㅎㅎ

금정연
책을 읽으며 제가 만약 몽유에 빠진다면 무엇을 할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고 이치에 닿지도 않는 글들을 끊임없이 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흔히 우리는 삶과 죽음을 단절의 형태로 이해하는데, 여기서는 그것이 이어져 있고 또 순환하는 것이기에(녠녠의 출생과 할머니의 죽음이 마치 교대 근무처럼 그려지는 등) 그렇게 많은 죽음이 언급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

stella15
그렇죠. 영화도 좀 음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끝에 가선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거 원 괜히 아는 척 하는 것 같습니다. ㅎ
근데 전 실제로 몽유병에 걸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과연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요. 말에 의하면 밤에 멀쩡히 할 거 다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이 뭘 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 이 책은 워낙 광범위하고 집단적이어서 환상문학을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지혜
저에게는 사람들의 죽음이 몽유가 아닌 그리고 도둑질과 강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 전부터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 무척 신선하네요.

금정연
녠녠은 전지적인 화자가 아니고 아직 어린 아이인만큼 그의 눈으로는 미처 보이지 않는, 혹은 다르게 보이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고, 거기에 대한 힌트를 작가가 초반에 주었다고 생각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주인공 가족이 “죽은 사람들에 의지해 생활”한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부분인 것 같아요. 장례용품점인 ‘신세계’를 운영하며 어머니는 장례에 쓰이는 종이꽃 등을 만드는 ‘전지의 대가’이죠. 외삼촌은 화장장을 운영하는데, 여기에는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매장이라는 풍속을 화장으로 바꿀 것을 강제하는 국가 권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외삼촌은 아버지에게 시신을 태우고 남은 사람기름을 넘기기도 하고요. 심지어 아버지는 과거 국가의 명령을 어기고 몰래 시신을 매장한 사람들을 밀고하는 일을 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집행자들이 몰래 매장된 시신을 무덤째로 폭파해서 태우는(천등형이라고 하네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밀고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 과정에서 화장장에서 생활하던 어머니와 결혼을 해서 주인공 이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어두운 비밀을 지닌 주인공 가족은 과연 몽유의 밤에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3장(실제 목차는 ‘제3권’이지만 그냥 장이라고 할게요) 이어집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중간중간 삽입되는 옌롄커 소설의 인용도 얼핏 보기엔 어린아이-바보 화자의 뜬금없는 의식의 흐름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34쪽에는 어떤 사람이 길에서 동전 하나를 주워서 그걸로 사탕을 사먹으려다가 돈이 모자라서 밀짚 모자를 팔았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돼지고기를 사먹고 싶었고 돈이 부족해서 옷을 팔았는데 이번에는 돈을 주고 ’아가씨‘와 자고 싶어져서 결국 아내를 팔아버린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인용되는데요.
“선물로 받은 우아한 붉은색 가운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 있노라니, 낡은 책상이 영 거슬렸다. 멋진 가운과 어울리지 않아서다. 책상을 새것으로 바꿨더니 이번엔 벽에 걸린 그림이 조화롭지 못했다. 다시 그림을 바꿨다. 그러다보니 그림이 방안 전체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 결국 다른 가구와 양탄자, 인테리어까지 바꿨다”는 드니 디드로의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결코 만족될 수 없는 욕망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결국 이 대규모의 몽유 역시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파요르
어떻게 욕망이 생겼나 생각하니 어쩌면 사소한 것부터 이미 시작했겠다 생각이 드네요. 탈곡기를 먼저 쓰겠다고 했던 부분도 욕망이 커지는 단계라고 보여졌어요. 결국 후반부에는 먼저 사용하는 게 아닌 가게들을 털고 다니니까요.

금정연
생각 못했던 부분인데 정말 그렇네요! 남들보다 먼저, 더 많이, 더 높이, 더 오래... 이런 욕망들이 사회 전체적으로 번져나간다면 정말 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stella15
솔직히 오늘(29일)까지의 분량은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일정이 좀 빡빡한 것 같아 따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ㅠ 그나마 비교적 잘 읽히는 것 같긴합니다. 중국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중국소설 안 읽히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프롤로그를 이렇게도 쓰는구나. 독특하기도하고 재미있는 시도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작가 본인을 끼워 넣는 시도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시도를 하는 작가가 과거에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딱히 기억나지는 않네요.
특히 바보 소년을 통에 옌렌커가 자신이 썼던 작품을 읊기도 하잖아요. 어떤 책은 몇번씩 거듭해서 읽었다고도 하고. 확실히 자신에게 매력적으로 읽혀지는 작가의 작품은 전작은 아니더라도 주요작은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 세 번 거듭해서 읽게되는 작품도 있고. 당장 기억 나는 책은 <데미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 대 중국 형벌중 '천등형'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전 이 책 보면서 주세마라사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얼핏 생각나던데 ......

금정연
모두 눈먼 도시에서 홀로 시력을 상실하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는 <눈먼 자들의 도시>와 모두(대부분) 몽유하는 마을에서 깨어 있는 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분명한 유사점이 있는 것 같아요. 둘 다 환상적인 설정을 통해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슬쩍 카메오처럼(여기서는 카메오 이상이지만) 소설... 분명 제법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오히려 영화에서는 히치콕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곧잘 등장한다거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에서 스 탠 리가 등장하는 경우만... 아무튼 여러모로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꼭 일정을 따라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상황에 맞게 읽으시면서 종종 생각난 것들, 인상 깊은 문장들 올려주세요!
리키
저도 이런 시도를 한 작가가 혹시 누가 더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소설을 작품에 끼워넣은 작가가 예전에 얼핏 읽은 것 같은데 지금 기억이 안 나네요 ㅠㅠ

금정연
밀란 쿤데라나 이탈로 칼비노 같은 작가들이 그런 시도를 했던 것 같은데 작품이 기억나질 않네요... 약간 예는 다르지만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속편에서, <돈키호테> 출간 이후 돈키호테가 유명해지고 해적판 아류 소설들이 넘치고 심지어 그를 사칭하는 기사까지 등장하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했던 예도 떠오르고요.

아린
그날 밤을 보내면서 그날 밤의 일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작가로서 자신이 이미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 14,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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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
원래 아침에 일찍일어나서 출근 전에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겨울이 되고 게으름이 생겨서.. 매일 늦게 일어나다가.. 이 책을 보고.. 아.. 다시 일찍일어나야겠다.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들고 다닐 수는 ?? 없을 책이네요.. 서문읽으면서.. 아.!! 재미있자나..?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께보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시작해도 남은 페이지가 아쉽게 느껴질 거라는 말을 알 것도 같아요.~

금정연
들고 다니긴 힘들지만, 밤이 긴 겨울에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푹 빠져 읽기 좋은 것 같아요. 서문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더 재밌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문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어린아이’이자 ‘바보’인 화자의 서술에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단순하다, 반복적이다, 감각적이다, 기타 등등... 그중에서도 저는 비유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쓰는 방식을 주목하고 싶어요. 정확히 말하면 화자가 비유를 하고, 여기까지는 그냥 비유였는데, 그 다음 문장에서는 방금 말한 비유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단단한 사실인 것처럼 이어가는 방식이요. 비유의 현실화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보죠.
“우리 아버지는 멀어져가는 외삼촌의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언제쯤 형님에게 화환을 만들어드릴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묻는 것 같기도 했지요.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습니다.” (p.64)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는 비유입니다. ‘묻는 것 같기도 했지요’ 역시 비유죠. 보통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습니다’라고요. 앞서 말한 비유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것의 목소리의 높낮이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또 다른 예를 들어보지요.
“아버지는 자기 어머니 시신을 등에 업고 그렇게 평범함 속을 헤치고 지나갔습니다. 뚫고 지나갔습니다. 천천히 걸어갔지요. 날은 몹시 추웠습니다. 쟁강 쟁그랑 쇳소리가 났습니다. 얼음 숲을 마구 두드리면서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얼음 숲의 나뭇가지를 전부 부러뜨려 죽이는 것 같았습니다.” (p.96)
‘같았습니다’-이것은 비유입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들을 보세요.
“그렇게 후려쳐 부러뜨렸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나무들을 전부 베어 쓰러뜨렸지요. 온 세상이 아버지가 후려쳐 부러뜨린 얼음 나뭇가지들이 내는 후드득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아버지가 후려쳐 부러뜨린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는 후드득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앞에서는 단순한 비유였던 것이 이제는 명확한 실체가 되어 ‘온 세상이 아버지가 후러쳐 부러뜨린 얼음 나뭇가지들이 내는 후드득 소리로 가득’해집니다. 이런 식의 서술이 소설 전체를 통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건, 녠녠에게 언어로 묘사된 현실과 ‘실제’ 현실의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서문에서 화자가 옌롄커가 소설을 쓸 수 있게 되기를-마치 그것이 자신의 마을과 사람들과 세계를 구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간청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4장(’제4권’)에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그(옌롄커)가 책을 쓰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그 책 속에서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집 장사는 사람들이 죽어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길은 다르지만 이르는 곳은 같았습니다. 같은 의미였지요.” (p.172)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글을 쓸 수 없게 된 옌롄커를 대신해서 녠녠이 이야기를 서술해야만 하는 이유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옌씨와 리씨 집안 모두 ‘길은 다르지만 이르는 곳은 같’으니까요. 와우... 제가 했지만 그럴 듯한 분석이네요...

stella15
아, 저도 172p의 그 구절 읽으면서 모든 작가가 이런 욕망이 다 있지 않나? 그러면서 뭔가 우아하면서도 작가는 눙치기 선수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ㅎ 중국문학이 또 좀 그런 면들이 있는 것 같고요. 특유의 능청스러움 뭐 그런 맛에 중국 소설을 읽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금정연
맞아요, 녠녠의 어린아이-바보다운 서술 아래로 능청 맞게 옌롄커의 소설이 언급되는 부분도 이 소설의 재미 포인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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