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해가 죽던 날』 함께 읽기

D-29
그런데 아버지는 왜 저 기름을 모아 두었을까요? 처음부터 불을 지르려 하진 않았겠죠? 해가 사라질거란 생각은 상상도 못했을 거니까요? 기름을 다른데 팔 수 있었지만 팔지 않았고 그저 저장만 해두었습니다. 사실 저는 저 기름을 불을 지를거라 생각은 했었습니다만 그건 결말을 예상했을 때 드는 생각이었고, 책을 읽는 중간, 정확히는 그 기름을 사 모으는 과정을 읽을 때 드는 생각은 아버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일말의 사죄, 보답의 한 방법의 실행이었다 생각합니다. 기름의 출처를 밝히기도 어려운 시절이라 말도 못하고 그저 그냥 매장해 두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불을 지를거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만 본인이 심지가 되어 그 해의 시작이 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본인의 운명이라고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다 써놓고 보니 위에 @금정연 님 의견과 결을 같이하는군요..^^
말씀하신 일말의 사죄, 보답의 한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이 한 일이 의도치 않게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상황에서, 사람 기름이라는 걸 몰랐으면 몰라도 그것이 비싼 값에 팔려나가 여기저기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기름이 다른 아무 기름과 똑같이 쓰인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 그냥 쌓아둘 수밖에 없었을 테고요. 나중에 해를 다시 만들 방법을 생각하면서 아... 내가 이래서 사람 기름을 모았구나... 깨닫지 않았을까요?
요즘 미세먼지로 숨쉬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어제 합정에서 당산으로 넘어가는 철교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아주 작은 해라도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 같이 폭력이 난무하는 시기에 <해가 죽던 날>을 읽으니 시의적절하게 딱 맞아떨어져서 신기합니다. 아침 풍경을 이 책의 배경이라고 상상하면 어떨까 해서 사진을 올려봅니다.
오, 정말 적절하네요.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덜한 것 같긴한데 그래도 주말이되야 동풍이 불면서 잦아들거라네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걱정이에요. ㅠ
정말 그렇네요. 사회의 상황도 날씨도 모두 묘하게 <해가 죽던 날>의 내용과 맞아떨어지는 듯한 요즘입니다.
저는 4장부터 글이 잘 읽히기 시작했는데요. 초반에 했던 몽유는 오직 자신의 말만 반복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만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몽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깨어나라고 말하면 그 말에 반박을 하고 건네는 손을 오히려 쳐내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몽유는 자신의 속에서만 보이는 걸 볼 수만 있다고 생각하며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몽유가 집단적으로 퍼지면서 볼 수 있는 영역 또한 넓어진 걸까요? 후반에는 몽유하는 사람과 몽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뒤섞여 오히려 누가 몽유를 하고 있는지도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이 저한테는 놀랐던 요소인 거 같아요.
뒤로 갈수록 점점 '액션'이 많아지고 사건이 커지면서 속도감이 붙는 것 같아요. 몽유가 집단적으로 퍼지면서 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정말 그런 걸 수도 있겠는데요? 보통 획일적으로 움직이는 대중들을 그리는 작품에는 실제 사람들은 안 그런다! 너무 작위적이다! 하는 비판이 붙게 마련인데, 옌롄커는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 비슷한 욕망에 휘둘리지만 누군가는 몽유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몽유를 하고 있지 않음에도 뒤섞여 구분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신선하고 놀라웠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우연히 펼쳐본 책에 소설을 읽는 방식에 관한 좋은 이야기가 있어서 여기에 옮깁니다. "<불확실한 봄이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이 문장 말고는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책이 1880년에 시작되었다는 것도(나중에 찾아보기 전까지는)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뭐, 그게 중요하다는 얘긴 아니다. 내가 읽은 소설들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던 건 어릴 적뿐이었다. 이제 나는 중요한 것이 책에 서술된 허구의 사건들보다는 독서 중의 체험, 책 속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정 상태,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들이라는 진실을 안다. 그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 줘야 하는데 안 가르쳐 준다. 그 대신 항상 책의 내용에 대한 기억에 방점이 찍힌다. 안 그러면 어떻게 비평을 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시험에 통과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문학 학위란 걸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읽은 후 기억에 남은 건 꿀병이 든 소풍 바구니에 대한 묘사뿐이었다고 고백한 소설가를 좋아한다." 제가 좋아하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그해 봄의 불확실성>이라는 소설의 도입부인데요, 이번 그믐방을 운영하며 제가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지만 역시 중요한 건 "독서 중의 체험, 책 속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정 상태,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들"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옌롄커의 <해가 죽던 날>은 녠녠의 해맑은 말투와 매캐한 탄내로 남는 소설이 될 것 같네요.
그해 봄의 불확실성『뉴욕 타임스』21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된 『구』 저자이자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신작 장편소설. 버지니아 울프를 인용하며 〈불확실한 봄이었다〉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감염병에 따른 봉쇄 조치로 인적이 뜸해진 뉴욕 맨해튼에서 우연히 지인의 반려 앵무새를 돌봐 주게 된 한 나이 든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저도 이 소설은 무엇을 남길지 갑자기 궁금해지면서.. 이전에 읽은 책들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잠들지 못하는 열대야의 한 여름밤만 강렬히 남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녠녠의 그 호기심 어린 사춘기 모습도 기억에 남네요.
지금 저는 거의 말미를 읽고 있는데 역시 저는 좀 지루하고 저조차쉽게 몽유에 빠져 길을 헤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ㅎㅎ 농담이고요,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저에게 무엇이 남나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전부터 살짝 느낀건데 정연님께선 베스트셀러보단 잘 안 알려진 책을 주로 읽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책도 제가 잘 모르는 책인데 잔잔하면서도 생각할게 많은 책 같습니다. 기억했다 나중에 함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요!
배스트셀러도 읽지만 아무래도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들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주로 읽는 분야의 특성도 있지만, 베스트셀러는 소수고 초판도 팔지 못하는 책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이 책은 저도 앞부분만 읽어서 추천드리기 조금 애매한데, 시그리드 누네즈 다른 책들도 국내에 번역되어 있으니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세요. 저는 <친구>를 추천합니다!
아, 근데 이제보니 따끈따끈한 신간이네요. ㅎㅎ
책 추천 감사합니다~~소개글을 보니 읽어 보고 싶은 책이예요~~.. 요즘 읽을것도 볼것도 체험할것도 넘처나는 세상에 살다보니.영화도 유튜브도 조금 보다가 아닌거 같으면 보다 말고 하는데.. 책도 그렇게 되더라고요..읽고 싶은 것도 넘쳐나는데..재미있는 거 읽기도 바쁜데.이러면서요. 그러다보니 입맛에 맛는 책과 영상만 선택하게 되고..그러다보니 생각도 점점 그렇게 되는 건 아닌가..그런 생각을 하면서 차분이 읽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한달간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번 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다면 손 번쩍들고 참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뭐가 너무 많은 세상이죠. 그래서 역으로 하나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해가 죽던 날>을 이렇게 꼼꼼히 읽진 않았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과 함께 읽으며 한 번 더 생각하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혼자 깨어 있다고 해서 그가 꿈을 꾸고 있는 만인의 머리와 눈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각성과 외침이 어지러운 숲과 무성한 잡초를 잘라내고 나무들이 곧게 자라도록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382,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곧 날이 밝겠죠?” 가게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엄마가 묻는 소리였습니다. “날이 밝지 않을 리가 있겠어?” 아버지가 문 앞에 널린 어수선한 핏자국을 내려다보면서 대답한 말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또 조용해졌습니다. 고요 속에 시신의 숨소리가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늘고 차가운 소리가 제 머릿속에서, 뼈마디 사이에서 울리고 있었습니다.
해가 죽던 날 p.432,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지금 보니 책 제목 바로 위에 '일식'이라고 써있네요. 일식은 생각 못했는데 시작부터 판타지 소설 같다는 느낌에 매몰됐었나봅니다. 처음엔 책이 두껍고 한 달이 길게 느껴져 엄두가 안났는데 순식간에 지나갔네요. 엄혹한 시절에 같이 이 책을 읽으며 견딜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혼자라면 못 읽었을 거예요. 이끌어주신 두 분 선생님과 함께 하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보통 일식을 이야기할 때 좀먹을 식蝕을 쓰는데 꺼질 식熄을 써서 혹시 중화권에서는 원래 일식을 이렇게 쓰나 검색해봤는데 옌롄커가 만들어낸 조어인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식과 음은 같고 뜻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훨씬 큰 의미를 갖게 되는 좋은 제목인 것 같아요. 만만치 않은 내용과 두께의 소설을 한 달 동안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느덧 모임 마무리 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저는 아직도 이 '새'에 대해 생각 중입니다. 나름 정리를 해 보았는데요.. 이 '새'가 가지는 의미는 새로운 '사상','의식','시대'라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묶어서 '사상'라고 한다면.. 이 새는 새로운 시대에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불어 넣습니다. 목차를 따라 간다면 그 새(사상)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크게 자라나 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됩니다. 이 새(사상)는 또다른 새(사상)를 낳고 자라게 됩니다. 새(사상)들의 충돌은 이런 사상의 충돌, 갈등이 있다고 해석해 보았고 그 후 한쪽 새(사상)이 소멸하고 남았지만 결국 그 살아남은 큰 새(사상)도 사라지고 없다... 그런 새(사상)도 어쩌면 의미가 없다? 내지는 또 다시 다른 새(사상)가 찾아올 것이다 라는 의미로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일단 그럴듯 해 보여서.. 대충 정리를 해 보았는데요.. 같이 읽으신 다른분들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너무 멋진 해석이네요! 이 새...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저는 좀처럼 정리할 수가 없더라고요. 모임의 마지막을 멋지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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