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결핍되거나 놀이에 흥미가 없는 아동이 사회적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어른이 되기는 힘들다.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p.251,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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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
한창 놀아야 할 초등학생들이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어깨에 메기엔 책이 너무 무거우니까)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옮겨다니는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애들이 다 가방을 끌고 다니기에 학교에서 수련회라도 다녀온 줄 알았지....
테사
한마디로, 어미가 곁에 있는 한 어린 새끼에게는 아무리 혐오적인 자극이라도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심지어 어미가 그 혐오적 자극의 근원일지라도.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p.237,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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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
냉담한 공격성은 성인기 소시오패스 성향을 예측하는 아동기의 또다른 지표, 즉 동물 학대와도 관련된다.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p.223,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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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
이마엽 겉질이 뇌에서 가장 늦게 성숙하는 영역이라는 것은 곧 이마엽 겉질이 뇌에서 유전자의 제약을 가장 적게 받고 경험에 의해 가장 많이 조각되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p.212,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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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
p.249 첫줄에 나온 표현 '이 책의 독자는(지은이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충분히 교육받은 신경증 환자들일텐데...' => 고개 끄덕끄덕 ㅎㅎ 사춘기 청소년 자녀를 둔 신경증환자 부모들을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문장인 듯;;
연해
“ 사실은 이 대목에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어야 했다. 친구들에게 캐럴리가 누구인지 알려줘야 했다. 하지만 캐럴리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생님이기 때문에, 마음 이론이 실패했다. 나중에 내가 딸에게 물었다. "있잖아, 아까 왜 친구들에게 캐럴리가 너희 선생님이란 걸 알려주지 않았니?" "아, 캐럴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어떻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7장. 요람으로, 자궁으로 돌아가기>,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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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개체가 어미와 또래에게서 배우는 것은 고정된 행동 양식을 몸으로 행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개체가 타고난다. 어미와 또래가 가르쳐주는 것은 그 행동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할 것인가다. 즉, 그 행동의 적절한 맥락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팔을 만지거나 방아쇠를 당기는 행동이 어떤 상황에서 최선의 행동이 되거나 최악의 행동이 되는가 하는 것을 엄마와 또래로부터 처음 배운다. ”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7장. 요람으로, 자궁으로 돌아가기>,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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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실은 6장과 7장은 부모로서도 마음 아픈 부분이 많았지만.. (Harlow의 실험 속 새끼원숭이가 인형엄마를 끌어안고 있는 사진은 정말.. 학생 때부터 볼 때마다 가슴아픈 사진이에요..ㅜㅜ
이런 어릴적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파트너에게도 학대받는(또는 학대하는) 부분이 참 소름끼치는데요.. 응급실에 있으면 어느새 사라진 미혼모가 두고 간 유기영아, 그리고 데이트폭행 또는 얼굴이 못 알아볼 정도로 맞았는데(그리고 몸은 더 심 하게;;) 치료받고 다시 그렇게 때린 남편의 곁으로 돌아가는 여성분들을 치료하고 신고하게 되는데 익숙해지는데요.. 처음에는 충격적이었고 분개했지만 차츰 익숙해지다보면 차분하게 처치하고 해바라기센터나 경찰 등 신고하는 데 익숙해지는 선생님들을 보면 empathy에 대한 작가의 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됩니다. 너무 심한 empathy는 오히려 고통에 등을 돌리고 눈을 감게 만든다고..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한 실제 행동을 하려면 그런 공감에 덜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런 신경학적 근거를 읽으니 뭔가 씁쓸하면서도 웬지 위로받는 느낌입니다.
연해
저는 미혼이고, 자녀가 없는데도 6장과 7장에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부분이 많았어요. 아동기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도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요. 하지만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서 참... 자라는 환경에 따라 아이가 받는 자극이 더 강화(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된다는 점도 씁쓸합니다.
폭력이 익숙해지는 과정도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처음에는 놀라고 도망쳐야겠다 생각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세뇌인 것 같더라고요. 저도 오래전에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성향을 띄는 남자친구를 만났던 적이 있는데요. 살면서 그렇게 큰소리를 내면서 누군가와 싸웠던 게 처음이었어요. 상대가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벽이나 테이블을 심하게 내리칠 때도 잦았는데, 다행히 저는 그 물건이 제가 되기 전에 안전하게(?) 이별했습니다. 물론 그 뒤로 한동안 정신과를 다녀야했지만요.
연해
근데 놀라운 건, 그 상황들이 서서히 익숙해져갑니다(이게 진짜 무서 운 거죠). 심지어 상대가 본인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게 다 저 때문이라고(니가 나를 화나게 했잖아!) 말하면서 온갖 심한 말을 했는데요. 거기서 처음에는 반발심이 생겼다가, 자꾸 벽으로 몰아붙이니까 수긍하게 돼요(아 내가 오빠를 화나게 했구나, 잘못했구나). 이렇게요. 이게 진짜 무서운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만날 당시에 주변 친구들이 다 헤어지라고 했는데(너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 되레 제가 그 사람을 변호하고 있더라고요. "오빠 그런 사람 아니야. 나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는 헛소리를 하면서.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모지리도 세상 그런 모지리가 없어요. 그 전에도 연애 경험이 몇 번 있었지만, 한 번도 상대를 무섭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거든요. 근데 그 사람을 만난 후로는 한동안 남자들이 너무 무서워서 연애를 쉬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남자보는 눈도 많이 바뀐 것 같고요(다정한 사람이 짱이야, 휴...). 다행히 지금은 다정한 분을 잘 만나고 있습니다.
borumis
벗어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폭력에 익숙해지는 게 폭력 자체보다도 더 위험한 것 같아요. 친구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가해자든 피해자든 자기합리화를 멈추는 게 제일 힘들죠..
dobedo
@연해 '안전이별'하셨다니 다행입니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죠. 상대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심리적 지배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자기 생각을 내게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가 쎄함이 시작되는 순간인 거 같은데 그때 도망쳐야 그나마 수월한 거 같더라고요.
연해
하, 정말 공감합니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고, 꼭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거절을 수용하지 못하는 자세 또한 폭력으로 발현될 수 있겠더라고요. 이를테면 일방적(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인 부모의 사랑도? "내가 널 사랑해서 주겠다는데, 왜 싫다는 거야! 왜!" 이런 거. 원치 않는 호의를 구분할 줄 아는 어른을 만나면 마음이 세상 평화롭더라고요(당신이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나를 사랑한다 생각하며 감정을 퍼붓고 있는 그대, 자아도취에 빠진 그대라는 걸 왜 모르는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타인에게 지나치게 강요하는 행동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 쎄함을 알면서도, 내밀한 관계 안에서는 '설마'라는 생각이 자꾸 치고 올라와서 참 괴롭습니다. 무 자르듯이 단칼에 쑹덩 자르고 싶다가도, 상대가 울면서 잡고 사과하면 또 흔들려요. 폭력(물리적, 언어적)을 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저 포함입니다)은 상대가 일방적으로 폭력만 가하지 않더라고요. 다음 날 지독할 정도로 불쌍하게 사과를 합니다. 정말 지독할 정도로요. '너는 착하니까, 이해해 줄 거지?'는 덤이지요. 이럴때면 제 외형이 아주아주 험상궂고 강한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봄솔
강요 또한 폭력이다 라고 볼수도 있는거 같아요.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만 봐도 그렇구요..
그런데 나의 자유가 어디까지 용인되 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라 .. 만약 아이가 고기를 전혀 안먹는다 . 대체식품도 안먹는다 하면 강요라도해서 먹여야 하는거 아닌가..
사랑에서 시작된 강요인가 아니면 나의 의지를 꺾고싶지 않고 성취하기 위한 강요인가 참 어려운 부분이에요.
dobedo
@연해 힘든 연애 하셨네요. 착하다는 말은... 가끔은 '만만하다'의 덜 듣기 거북한 버전이 되기도 하죠. 선을 넘을 때 내치기 힘들어하는 (저 같은) 만만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치들은 안테나가 있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처음엔 유난히 친절하기도 했고요.
연해
그러게요. 진실한 마음이 진실한 마음으로 잘 닿았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때로는 저의 편견 없음(에이, 그 사람이 설마 그런 짓을 할 리가...)이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는 것 같기도 해서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 패(?)를 더 숨기고 싶어져요.
어쩌면 9장에서 말하는 사회자본과도 닿아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이런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품어보기도 합니다. 만약 상대의 유전자가 문제인 것이라면(타고나길 사이코패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전자가 발현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으면(온건한 사회)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요.
다소 추상적인 말이지만, 저는 온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그 행복이라는 게 뭔가 엄청난 경제적 부를 누린다거나 명예, 높은 지위 등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순수한 자기 삶의 만족에 따른 행복을 말하는 것인데요(이 책에서도 가난한 것 그 자체보다 '내가' 가난하다는 느낌이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는 말처럼요). 그리고 제가 품는 이 마음(모두 행복해져랏!)은 타인에 대한 이타적인 마음, 거대한 담론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제 삶을 위해서예요. 단순한(천진한) 생각인데, 모두가 행복하면 서로 안 괴롭힐 것 같거든요.
dobedo
@연해 행복이란 말은 사랑이라는 말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제각각 다 다르게 정의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갈등 없는 상황이 행복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거 같아요. 우리는 다 다른 사람이고 다 저마다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니까 갈등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갈등을 회피하고 인지조차 하지 않으려고 할 때는 (자아가 흐릿해지는) 모호한 불안 속에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경계(선)는 '자아'와 '타자'가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에 필요한 거겠죠.
오뉴
전 부모님들이 자주 사용하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을 들으면 속에서 올라옵니다. 본인들이 본인들의 생각대로(좋은대로) 키위놓고선 마치 모든 것은 널 위한거였어라는 식으로 변명 또는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borumis
“ 청소년기가 되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불평등을 공리주의적 근거에서 더 잘 수용한다. 그리고 남녀 모두 불평등을 사회적 관행으로 묵인하기 시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세상이 그런 거니까" ”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7장,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