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resh] 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다시 읽어요.

D-29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보면, 말씀하신대로 영화 같은 영상매체에서는 시각과 청각적인 정보가 정제되어 제공되지만 소설에서는 그것조차도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있기 때문에,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영화는 감상하면서 상상하게 되지만, 소설은 상상하면서 읽어나가게 된다..
MZ들에게 텍스트힙이 유행이라는 뉴스들은 많이 접하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ㅠㅠ 슬프게도 독서가 다수의 대중보다는 좁고 깊은 매니아층이 즐기는 취미로 점점 변해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교보문고와 mbc14f 유튜브가 콜라보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을 콘텐츠로 다시 시작한다니 기대해 봐야겠어요.
소설가들이 해야 할 일은 각자의 시점으로 그 고유한 장소를하나라도 더 많이 찾아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주위에 많이 있을 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76,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오늘 부분의 글들 재밌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예루살렘상 수상문이 인상깊네요. 수상을 거절하는 게 편했을텐데, 수상문 안에 있는 벽을 치는 하나의 알이 되기를 선택했군요. 벽과 알을 시스템과 사람으로 은유했지만 예루살렘의 벽은 실재하는 것이어서 비유로 읽히지 않았어요. 소설가라는 특성을 이용해 비유인 것 같지만 사실은 현실인 이야기 할 수 있었네요.
오늘은 "음악에 관하여" 앞부분을 조금 읽어 보았습니다. 하루키가 한때 재즈 카페도 운영했었고, 음악에도 나름 조예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단편 몇 편에서도 음악이 소재까지는 아니어도 소소한 장치로 등장하고 했던 것 같네요) 이렇게 그의 음악의 뿌리와 철학을 알아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LP와 레코드로 음악을 접하는 것이 하루키의 세대였지만, 저희 세대는 유튜브나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접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익숙한 쪽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LP가 주는 안정감을 예찬하고, LP에 걸맞는 음악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스트리밍으로 처음 들어보고 멋진 앨범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꼈었지만, LP로 듣게 된다면 이런 느낌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저에게 기준이 되어버린 이상, 단지 색다른 느낌이라고만 와닿을지도 모르겠지만요. 한편, 음악과 비슷하게 독서도 기술의 흐름에 따라, 지금은 태블릿에서 전자책으로 책을 읽는 것이 대중화된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양한 전자책 플랫폼들이 있고, 대학에서는 전자책으로 교재를 읽는 경우가 흔합니다(저도 그랬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종이책을 고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유를 잘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루키가 말하는 'LP로 음악을 듣는 이유'와 같은 맥락일 것 같네요. 또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들어 봤었는데, 이렇게 책에서 직접 해명(?)을 접하게 되어 재밌었습니다. 케임브리지 사전에도 'wood'라는 단어에 '숲'이라는 정의가 실려있기는 하지만, 하루키가 소개한 존 레논의 인터뷰를 보니 역시 'wood'는 '가구'가 맞지 않았나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ㅎㅎ 어쨌든 노래 제목은 '노르웨이산 가구', 소설 제목은 '노르웨이의 숲'으로 받아들여도 문제가 될 건 없고, 아니면 그냥 경계상의 애매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감상자의 몫인 것이겠죠.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11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지금은 일단 유형화를 거부하려는 인간조차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시도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은 길은 '유형의 왕'이 되는 것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117,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결국 우리는 미국 경제에 '투자'함으로써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사회가 품고 있던 불평등까지 덤으로 받아들이고 말았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14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CD의 라이너노트에 이런 내용을 쓰는 건 조금 망설여지지만, 나는 옛날부터 한결같이 LP판을 좋아했다. LP의 모양새가 좋고 촉감이 좋고 냄새가 좋다. (중략) 콤팩트디스크야 손에 들고 아무리 바라본들 즐겁지 않다. (중략) CD는 취급이 매우 간편하고, 언제 어디서든 깨끗하고 정확한 소리를 내주지만 LP와 열성적인 청자 사이의 '마음의 교류'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186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잡문집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 하루키는 옆에 앉아있으면 한 대 찰싹 때리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하는, 하지만 악의 없는 삼촌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루키 문체의 매력이 바로 이런 맞는 말을 하지만 맞는 말만 해서 가끔 면박 주고 싶어지는 매력인걸까요? (그래서 웃기고 좋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 어른을 어찌감히...근데 하금님 말씀이 맞긴하죠.ㅎㅎ 오래 전, LP판을 나름 꽤 모은 적이있었죠. 근데 어느 날 이게 감쪽같이 사라졌죠. 이사하는 통에 오빠가 통째로 나가 판... 옛날 같으면 들이받고 싸웠을텐데 턴테이블이 없어졌으니 그게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그때가 막 CD가 보급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고. ㅠ 지금은 CD도 잘 안 사잖아요. 격세지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에 못지 않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그 음악의 훌륭함에 우리 자신의 마음이나 육체의 소중한 일부를 위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p.190-19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스페인 내전과 각자의 북극점을 안고, 각자의 먹구름과 각자의 빛을 끌어안고, 밤하늘을 향해 조용히 떠오르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0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그러나 늘 그렇듯이,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1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혹시 이 세상에 진정한 예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예언자는 나무 망치를 들고 나라 안에 있는 종이란 종은 다 치며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17,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본문과 아예 관련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중심에 있지도 않은 이런 표현들/문장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문장을 읽고 이미지가 생생히 그려지고, 그 이미지가 다음 문단까지 따라다니는 이 느낌이 너무 좋네요.
‘우리 사회에는 분명 몇 가지 결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 살고 있다. 어느 도시 어느 거리든 범죄를 만날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달성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제 그것은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2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진자는 방향을 바꾸었고 기득권층이 다시금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잔치가 끝난 후‘의 께느른한 고요함이었다. 일찍이 높이 세웠던 이상은 빛을 잃었고, 날카롭게 외쳐댔던 말은 힘을 잃었으며, 도전적이던 카운터컬처도 첨예함을 잃었다. (중략) ‘좋은 은 모두 이전 세대에게 엉망으로 침해당했다‘는 막연한 실망감에 휩싸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2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강력한 아우라를 가진 누군가가 시스템 밖에서 나타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불러들여, ‘개별적 차이니 뭐니 그런 성가신 것은 신경쓸 필요가 없다. 이리로 와서 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말을 건넷을 때 그들은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한 유혹에 대항할 만한 이상적인 지주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27,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잘 아시겠지만, 여러 갈래의 다른 이야기들을 경험해온 인간은 픽션과 실제 현실 사이의 선을 자연스레 찾아낸다. 또한 ‘이건 좋은 이야기다‘ ‘이건 그다지 좋은 이야기가 못 된다‘라고 판단해낸다. 그러나 옴진리교에 이끌린 사람들은 그 중요한 선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픽션이 본래적으로 발휘하는 작용에 대한 면역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3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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