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쓴 행복] 말 그대로,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글로 쓴 행복"에 부합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문학'과 '행복'과 '종교'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풀어내고 있습니다. 먼저 보르헤스는 글로써 행복을 묘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얘기를 꺼냅니다. 생각보다 현실에서 행복을 잘 묘사한 글은 보기 드뭅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작가가 행복을 대변하는 천국이나 유토피아를 묘사하려고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든 다들 실패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만 봐도 그러합니다. 도서관에서도 단테의 신곡 중 ⟪천국편⟫이 비교적 덜 대출된다고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보르헤스는 "행운이나 행복한 운명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천국이나 유토피아로 치닫지 않는 한에서의 행복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프라이 루이스를 논하면서 보르헤스는 그가 행복한 상태를 묘사하려고 했지만 왜 실패했는지를 짚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글로 쓴 행복"에 부합하는 사례를 찾아내는데요, 바로 아르날도스 백작의 로망세입니다. 보르헤스는 시의 유쾌함을 두고 이렇게 씁니다. “(추측컨대) 그 유쾌함은 시 초반부의 행복한 장면과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행복이 사랑이나 보물을 찾는 모험에 있지 않고 작은 배에서 일어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 데 있다. 인간이 어느 아침 노래하는 뱃사람과 돛대에 내려앉은 새를 보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던 시대와 시간들은 축복받은 것이다.” 글을 읽고 있으면, 지향하는 바나 풀어내는 과정은 좀 다르지만 조지 오웰이 떠오릅니다. 그는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는가?⟩에서 비슷하게 주장한 바 있습니다.

책 대 담배일용할 양식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마음의 양식'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독서란 기호에 불과할까, 기호라면 얼마나 값비싼 기호일 것인가? 조지 오웰은 이 같은 호기심을 지극히 형이하학적으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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