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에 쓰인 글귀들(Inscripciones en los Carros)]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차에 들어가는 글귀와 장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장식을 '필레테아도 포르테뇨(Filete porteño)'라고 부릅니다. 굳이 비슷한 것을 들자면, 오늘날 자동차의 본네트에 붙는 브랜드 엠블럼을 들 수 있을 텐데, 이 필레테아도는 그보다 좀더 화려하고 좀더 경구가 많이 들어갑니다. 사전적 설명에 따르면, 이 필레테아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상 예술 형식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상징이나 형상 외에도 독창적인 문구나 격언, 재미있고 철학적인 내용의 잠언이나 시구등이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지정됐을 정도로 특징적인지라, 오늘날에는 마차를 넘어서 버스나 유리창에도 보이는데요, 흔히들 텍스트 주변을 강렬한 색깔의 선으로 장식합니다.
본문에서는 왜 이 필레테아도가 아르헨티나의 문화 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는지가 흥미진진하게 묘사됩니다. 이 필레테아도의 고유함을 논하려면 '마차'라는 당시의 운송수단을 얘기해야 합니다. 재빠르게 도로를 주파하는 자동차와 달리, 마차는 느릿느릿합니다. 보르헤스는 오히려 자동차의 '빠름'와 대비되는 마차의 '느림'에서 필레테아도가 태동했다고 말합니다. "거리를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면 마치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치는 노예의 모습이 연상되는 반면 느릿느릿 걸어가는 마차는 (영원까지는 아닐지라도) 시간을 완전히 소유한 인상을 준다."(424쪽) 이와 연결지어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혹시 요즘 거리의 자동차들이 점점 커지고 화려해진다는 인상을 받지 않으셨나요? 실루엣은 과장되고, 라지에이터 그릴은 두꺼워지고, 독삼사의 엠블럼은 묘하게 커진 듯한 인상입니다. 그건 아마 더욱 좁은 공간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회적인 도로 상황 때문일 겁니다. 정체현상이 극심한 도시에서 자동차들은 달리지 못하고, 달리지 못하기 때문에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전광판 같은 면모로 바뀌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날 도회적 상황에서 자동차의 화려함은 보르헤스가 말하는 '마차의 금석학'과 완전히 상충됩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화려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차의 금석학이 시간을 소유한 자의 여유와 느긋함이라면, 오늘날 자동차의 과장되고 화려한 실루엣은 바쁨에 치여 과부화되고 정체화된 도회적 삶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시간에 묶여 있습니다. 바빠야만 한다고 느낄 뿐 아니라, 바쁨 속에서만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원하는 만큼 느릴 수 있다는 것은 마차의 대단한 특권입니다. 여기서 필레테아도의 텍스트와 화려한 장식의 조화, 그 웃김이 발생한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마치에 쓰인 글귀와 마차를 장식한 꽃은 '마차' 그 자체에 비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겁니다. 여기서 재차 문학의 쓸모와 무쓸모를 논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그 생크림케이크 위에 핏빛 체리에 해당하는 것이 없으면, 생크림케이크는 너무나 옹졸해 보일 거라고만 말하고 싶습니다. 엣지Copilot으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