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역사(Historia del Tango)] 2부에서 다룬 ⟨탱고의 기원⟩에 이은, 탱고에 관한 두번째 산문입니다. 먼저, 보르헤스는 이 글에서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탱고의 역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며, 그 유래도 불명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 ⟨탱고의 기원⟩에서도 한번 언급한 적 있지만, 보르헤스에게 초창기 탱고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역사와 문화의 정수가 담긴 또 하나의 텍스트이고, '문학'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 문학이 관심을 둘 법한 숱한 주제가 가사에 담겨져 있습니다. 글꼭지는 크게 다섯 가지이며, '탱고의 역사', '호전적인 탱고', '한 가지 남은 수수께끼', '가사', '결투 신청'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비단 탱고 뿐만이 아니라 탱고를 둘러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전반적인 문화를 향한 보르헤스의 애정이 글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예컨대 쇼펜하우어를 인용하면서 음악과 문학을 비교해보는 대목을 보시면, 보르헤스가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는 사실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다섯 개의 글꼭지가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특히 재밌게 본 글꼭지는 '결투 신청'이었습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들은 매력적인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합니다. 흥미롭게도 이야기 속의 웬세슬라오 수아레스는 아무런 사심이나 목적 없이도 결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이는 유럽의 결투(duel) 문화와도 다른 것이, 흔히들 아는 결투 문화에서는 타인의 당사자의 명예를 더렵혔거나 모욕을 주었다고 느꼈을 때 상대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소개하는 수아레스가 벌이는 결투는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 벌어지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나아가 결투 끝에 주어지는 '죽음'은 어떤 심판의 결과도, 순리의 결과도 아닙니다. 죽음은 마치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떠다닙니다. '아무런 사심이나 목적 없는' 결투가 이러한 죽음의 성격을 뒷받침하고 있고요. 마치 코맥 맥카시의 소설에 등장하는 죽음의 화신인 안톤 시거처럼(그가 지니고 다니는 상상의 '에어 샷건'에 들어가는 총알은 공기 그 자체이며,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죽음은 '이유 없이', '설명 없이' 그냥 옵니다.
이러한 '이유 없음'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듯, 웬세슬라오는 지나칠 정도로 정중한 면모를 지닌 인물로 묘사됩니다(“평소 가죽 끈 꼬는 모습, 어머니를 홀로 남겨 두지 않으려 하는 자상한 성격, 낯선 이와 주고받은 화려한 편지, 그와 점심을 먹으면서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화”). 여느 이야기에서처럼 결투로 인물 중 하나가 죽어야 할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되는 겁니다. 죽음을 병적으로 기피하면서부터 역설적으로 죽음(을 이용하는 여러 산업)에 예속되어 버린 현대인들과 비교하면, 이들에게 죽음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표현은 한갓 은유가 아닙니다. 보르헤스는 이러한 결투 문화를 두고 "언제든지 죽고 죽을 수 있는 용기와 사나이다움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무자비한 종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 외에도, "북아메리카나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과 달리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지 않는다"(461쪽)고 말한 대목도 곱씹어 볼 만한데, 그러러면 더 많은 글을 써야 해서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다만 보르헤스의 설명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이나 대의명분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를 한사코 거부한다고만 말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탱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0)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3부 같이 읽어요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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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음악은 세계 자체만큼이나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만약 세계가 없거나 언어에 의해 환기될 수 있는 우리의 공유 자산, 즉 기억이 없다면 문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반면 음악은 굳이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세계가 없어도 음악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의지이자 열정이다. 음악으로서 초기 탱고는 먼 옛날 그리스와 게르만 민족의 시인들이 언어로 표현하려고 했던 전쟁의 기쁨을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 의 언어』 45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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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적 측면에서 볼 때 탱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탱고의 유일한 중요성은 우리가 그것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 결론적으로 어떤 탱고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저녁과 밤 없이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으며, 탱고의 플라톤적 이데아, 다시 말해 탱고의 보편적 형식이 하늘나라에서 우리 아 르헨티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아무리 천박하다 해도 탱고는 이 세계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46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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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통의 편지] 앞서 쓴 ⟨탱고의 역사⟩가 기고된 잡지를 읽고서, 독자들이 보르헤스에게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보내준 편지입니다. 보르헤스는 그것을 (아마도) 가감없이 실었습니다. 이렇듯 외팔이 결투가 웬세슬라오의 이야기는 각자의 기억 속에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거치는 동안 조금씩 달라졌던 모양입니다. 제가 보기에 세부사항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외팔이 결투가에게서 어떤 "강고한 믿음", 그러니까 보르헤스가 말한 "신이 모든 사람에게 깃들어 있다는 깨달음"을 읽어냈다는 것입니다. 웬세슬라오 이야기는 그것을 알고 전하는 개개인들에게는 '아르헨티나성'을 보여주는 어떤 자긍심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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