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살짝 비꼬는 실망감을 가지고) 언어의 가장 쉬운 분류법이 문장을 능동태, 수동태, 현재 분사, 비인칭 등으로 나누는 기술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아르헨티 나 사람들의 언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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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푸에르테의 위치] 저도 처음에 알마푸에르테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아마 각주로 설명해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다른 인명은 각주가 있는데, 정작 중요한 인물에 대한 각주가 없는 것은 편집상 아쉬운 점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알마푸에르테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라플라타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입니다. 본문에도 나오듯 본명은 페드로 보니파시오 팔라시오스(Pedro Bonifacio Palacios)입니다. 청년기에는 화가로 활동했지만, 여러 이유로 유럽행이 좌절되자 진로를 바꿔 글쓰기와 교육에 전념했다고 알려집니다. 시인이자 교사였고, 기자로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보르헤스처럼 사서와 번역을 겸한 적도 있고요. 이른 시기부터 시를 썼던 것으로 보이나, 책들이 주로 출간된 시기는 20세기 초입니다. 그는 무수한 필명을 갖고 있었는데요, '알마푸에르테'는 그중 가장 유명한 이름입니다. ⟨나아가라!(¡Piú avanti!)⟩라는 시를 보면 대충 어떤 시를 쓰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Claude로 번역을 맡겨봤습니다.
포기하지 마라, 패배했더라도,
노예처럼 느끼지 마라, 노예일지라도;
네 자신을 용맹하다고 생각하라, 공포로 떨면서도,
맹렬히 돌진하라, 이미 깊이 다쳤어도.
지녀라, 녹슨 못의 그 끈기를
낡고 보잘것없어도, 다시금 못으로 되돌아가는;
안 된다, 공작새의 비겁한 대담함처럼
작은 소리에도 깃털이 움츠러들어서는.
나아가라, 신처럼 결코 울지 않는;
혹은 결코 기도하지 않는 루시퍼처럼;
혹은 위대함을 지닌 참나무 숲처럼
필요로 하나 구걸하지 않는 물을······
하여, 물어뜯고 외치게 하라, 복수하듯이,
먼지 속을 구르는, 너의 머리를!
산강처럼
알마푸에르테를 검색하니 알마 푸에르테라는 담배가 나오고 아래 내려가니 아르헨티나의 도시 이름이 나옵니다. 아무 래도 사람 이름 같은데 가상의 인물인지, 실제 인물인지 모르겠네요 알마푸에르테보다 분량이 훨씬 짧지만 그래도 읽기가 쉽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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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얘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보르헤스는 알마푸에르테가 당시 청년들에게 버림받고 있는 현실을 먼저 지적하면서, 그를 두고서 "다정한 관계는 어렵겠지만 존중은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글을 엽니다. 동시에 그가 그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시를 썼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읽어보셔서 알겠지만 이 글 전체가 알마푸에르테를 단순히 칭송하는 게 아니라 묘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당대의 청년들처럼 증오하는 식으로 단순 비판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존중하면서 비판하고 있다는 차이점은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이 과학적인 근거를 추적해서 이성적으로 논변한 것들을 우리 선조들은 몸소 겪어서 그 용무용을 따졌습니다. 약초의 효능이 그러하고, 쑥뜸과 침의 효능이 그러합니다. 개중에는 거짓으로 밝혀지거나 근거가 없다거나 위약 효과로 밝혀진 것도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무용함이 밝혀졌다고 해서 당대에도 그것이 무용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신념이 사실과 관계없이 그 나름의 효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당시 알마푸에르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니체의 모조품이라고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아르헨티나의 상황에서 그만의 목소리를 구축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고 난 뒤에, 그 한계를 나란히 펼쳐놓고 살피는 것입니다.
한편, 보르헤스가 알마푸에르테에게서 니체를 찾아내는 장면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보르헤스는 알마푸에르테가 니체의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사람들의 비판을 수용하고, 자신도 한때 그런 비판에 동조했다고 말하면서도, "지금은 괜찮아 보인다"고, 또 한 번 틀고 있습니다. 표절과 아류 시비를 우회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 돌파하는 식으로 알마푸에르테의 방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저에겐 읽힙니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로 미루어볼 때, 이 저변에 흐르는 사고방식은 보르헤스가 훗날 쓰게 될 ⟨돈키호테의 저자, 삐에르 메나르⟩를 예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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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 때문에 그리스어나 독일어 선생이 이미 생각한 것을 어떤 크로오요가 생각하면 안 된다 말인가? 왜 재규어가 호랑이의 모조품이며, 약초는 차의, 초원은 황무지의, 알마푸에르테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복사판이라고 추정하는가? 그러나 여기 그런 변론을 무력화할 수 있는 주장이 있다. 알마푸에르테가 그 독일인과 같은 순서로 시작해서 기독교적 도덕성의 소멸과 초인의 위기에 대한 동일한 결론에 다다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용어나 상징성까지 같은 것은 허용할 수 없다. ”